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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그곳은
가상화폐 해킹으로 외화벌이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2019년 09월호



북한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북제재로 인해 국제사회의 금융전산망 접근이 차단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상화폐 확보에 눈떠 이를 챙기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개혁·개방이나 비핵화를 통해 국제 금융시장에 뛰어들어 가상화폐 및 관련 첨단기술의 확보나 공유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북한의 활동은 해킹을 통한 불법적인 활동 쪽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8월 초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2017년 말 이후 시점부터 핵 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실험은 않고 있지만,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개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사이버 해킹이라는 게 대북제재위원회 측의 평가다. 해킹과 가상화폐의 탈취 및 현금화가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위한 새로운 주요 자금줄로 부상했다는 얘기다.
유엔 보고서는 북한이 점차 더 정교한 방법을 쓰고 활동 범위도 넓히면서 해킹 금액만 20억달러(약 2조4천억원)에 이르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적어도 17개 나라의 금융기관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겨냥해 35차례에 걸쳐 해킹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경제난에 시달려온 북한은 과거 위조 달러와 가짜 담배, 마약 등의 밀매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가상화폐 해킹으로 번진 북한의 불법적 움직임은 위기상황에 처한 북한경제의 현실을 말해준다. 한국은행이 7월 말 발표한 ‘2018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2018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4.1% 감소했다. 2017년(-3.5%)보다 낙폭을 키우며 2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북한이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인터넷망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극도로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볼 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가상화폐를 손쉽게 얻으려 가동한 수단이 세계 최강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는 사이버 해커부대인 것이다. 평양 미림대학 출신 등 전산전문가로 꾸려진 이 해커부대는 6천~7천명 규모인 것으로 한미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북한의 해커들이 입질을 하고 있다는 관측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건 지난 2017년 9월 사이버 보안업체인 파이어아이(FireEye) 측이 보고자료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해킹집단이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에 최소한 3번의 공격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졌지만 북한은 “감히 우리를 직접 걸고드는 망동을 벌이고 있다”며 발뺌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질서를 파괴하고 국제 금융시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북한의 이 같은 범법 행위가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란 점에서 우려와 함께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북압박이 커지고 경제적 어려움이 더할수록 해킹을 통한 손쉬운 외화벌이의 유혹은 김정은 위원장을 더 달콤하게 끌어들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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