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
가족해체에 맞선 아이들의 자세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9년 09월호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 부모님과 집이 절대적이라 믿었던 아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세계에 균열이 생기자 이에 대응하는 ‘꽃’ 같은 마음을 담은 영화가 바로 〈우리집〉이다.

“우리 가족 여행 가자”
12살 하나(김나연)에게 가족은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하나뿐인 인간의 별 지구와 맞닿은 가치다. 절대적이라는 얘기다. 그 가족이 UFO 군단의 침입에 맞먹는 아빠, 엄마의 잦은 부부 싸움의 결과로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하나는 태양을 향해라, 용기를 마셔라, 빛나는 가족의 앞날을 위해서 위기를 맞은 가족의 봉합에 나선다. 어떻게? 맞벌이로 힘든 엄마를 대신해 식사를 차리고, 가족 살피기에 너무 지친 아빠를 대리해 가족 여행을 제안한다.
아이고 이렇게 착한 우리 딸래미를 봤나, 흐뭇하게 정수리를 쓰다듬는 엄마와 아빠의 손길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건, 아빠 왈, “엄마는 바빠서 여행 힘들 걸”, 엄마 왈, “갑자기 뭔 여행 얘기야? 앞으로 꺼내지 마!”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가족해체에 봉착한 12살 아이의 반응이란 건 엄마, 아빠 싸우지 마! 엉엉~ 눈물로 호소한다든가, 이런 콩가루 집안, 이참에 비뚤어질 테다, 아악! 비행(非行)하는 게 보통이다.
〈우리집〉은 예상 가능한 가족해체의 수순을 따르는 대신 하나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다잡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의 성장이라는 건 자신을 둘러싼 어른의 우산 막이 제대로 비를 막지 못할 때, 그럼으로써 혼자 힘으로 이에 맞닥뜨려야 할 때의 반응으로 생기는 효용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지금 당장 엄마와 아빠가 될 수 없지만, 그와 비슷하게 보호자의 위치에 선다면? 그러니까, 불화하는 지금의 아빠와 엄마의 시선에서 가족해체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느끼는 바도, 대응하는 바도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

“우리 뭐 먹고 살아”
하나는 가족에게 차려줄 식사 재료를 구하러 갔다가 보호자 없이 마트를 헤매는 유미(김시아)와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난다. 엄마와 아빠가 지방에서 일을 하는 까닭에 집을 비워 제때 밥을 해먹지 못하는 자매를 위해 하나는 ‘밥은 먹고 다니냐?’의 심정으로 식사를 차려준다. 유미와 유진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하나를 친한 언니 겸 부모 대신으로 받아들인다.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 친구가 없는 자매를 위해 하나는 유미와 유진의 월셋집을 일부러 어질러 집을 보러 온 예비 세입자의 학을 떼게 한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호호호 깔깔깔 웃음을 유발하는 즐거운 소꿉놀이 같아도 에누리 없는 현실이 개입하면 이들을 위협하는 공격으로 바뀐다. 그래서 하나와 유미와 유진의 가족 관계는 종이로 세운 집처럼 조그마한 충격에도 무너지기 쉬운 구조다.
어른들의 공격, 그러니까, 집 보기를 방해하는 아이들에 맞서 집주인이 자매의 부모에게 연락, 집 계약을 마무리하려 하자 하나와 유미와 유진 사이에 단단해 보였던 달팽이집의 관계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진다. 어딨는지 모를 자매의 부모를 찾겠다며 하나가 유미와 유진을 데리고 엄마 찾아 삼만리 길을 나섰다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언니가 엄마 찾을 수 있다고 했잖아!” 버럭 화를 내는 유미가 하나는 괘씸하기만 하다. 
“우리 집은 진짜 왜 이렇지?”, “우리 집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놈의 집구석을 성토하는 마음으로 다시 관계를 회복한 아이들은 주인이 사라진 텐트 안에서 겨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이 텐트가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싱글벙글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위기 파악 못 한 유진은 꼬르륵 배고픈 소리로 시위하듯 말한다. “그럼 우리 뭐 먹고 살아?” 답변하지 못하는 하나의 표정에서 어른의 세계라는 건 쉽지 않다는 낭패감 22%의 반응이 감지된다.
그럼 나머지 78%는? 그걸 하나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유미와 유진과 함께하며 보호자의 역할이란 게 만만치 않다고 경험한 하나는 아~ 몰라 엄마, 아빠 이혼하거나 말거나의 자포자기 대신 이 정도면 견딜 수 있다는 배포 17%에, 다시 한 번 노력하면 가족 여행 갈 수 있겠다는 기대감 23%에 더해, 가족의 화합이 멀지 않았다는 38%의 화이팅이 정신적으로 부쩍 자란 하나의 성장을 추측하게 한다. “내가 지킬 거야, 우리 집. 너희 집도.”
물론 현실은 부부 싸움 하는 어른들의 속사정처럼 예측불허라 하나의 배포와 기대감과 화이팅의 결과대로 나오지는 않을 터다. 그것처럼 아이들 또한, 가족에 대해 느끼는 생각의 정도가 ‘아이’라고 발음하면 입술 새로 가볍게 새나가는 깃털 같은 바람처럼 가볍고 단순하지 않다는 걸 하나와 유미와 유진의 여정에서 알 수 있다. 가족이라는 생명에 찬 이 우주를 지키려는 아이들의 여정은 곧 성장하는 정신의 키 높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집〉은 가족해체로 너무 일찍 어른스러워지는 아이들에게서 여전히 순수로 남아 있는 꽃의 마음을 포착하는 것이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