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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품·장비, 위기를 기회로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2019년 10월호


산업은 이익 창출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 간 협력에도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이론이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론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이란 특정 산업이 발전하는 산업 공동체의 생명선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그 운영 방식은 세계적-국가적-지역적 차원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을 염두에 둘 때 최근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위기를 초래한 일본의 수출규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처방책을 마련해야 할까?
정부는 최근 국제 정세 변화의 위기관리 대응책의 일환으로 국내 산업구조를 재구성하고 핵심 원천기술 자립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안)’을 발표했다. 또한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 9조4,608억원 중 핵심 소재·부품·장비 산업 예산을 약 2배 수준으로 증액(7천억원→1조3천억원) 편성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수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여기에 몇 가지 보완적 의견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소재·부품·장비 산업 특성상 혁신기술 ‘축적의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만큼 기존과는 차별화된 산업 생태계 재편전략이 실현될 수 있도록 협력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건전하고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난 2001년 제정된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현재의 한시법에서 상시법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예측 가능한 정책만이 신뢰 기반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장기간의 투자를 유도해나갈 수 있다.
둘째, 지금부터라도 대·중소기업 간 상생형·개방형 혁신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기술 수준이 상당 부분 향상되긴 했지만 GVC의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핵심 기술과 품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략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연구개발(R&D) 단계에서부터 수요 기업과 납품 업체 간 긴밀한 협업에 기반한 전략적 R&D가 필요하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인프라와 플랫폼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은 이를 통해 개방형 R&D를 실현하고 그 성과를 공유해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은 시각을 국내에만 둘 것이 아니라 관련 산업의 GVC 편입과 패러다임 주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먼저,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타 국가의 기관과 전략적 공동 R&D의 형태로 글로벌 혁신 관점에서 기업의 역량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2018년 기준 정부 R&D 예산의 1.1%, 산업통상자원부 R&D 예산의 3.8%에 불과한 국제기술협력 R&D 사업의 예산을 확대해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개도국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우리 기업의 해외 신흥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산업기술 정부개발원조(ODA) 사업의 적극적인 추진도 필요하다.
현재의 위기는 눈앞의 공급망 차원의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보다 긴 호흡으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러 차례 산업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어김없이 발휘됐던 산업혁신 DNA가 또다시 역할을 해줘야 할 때다. 산·학·연·관이 합심해 글로벌 신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으로 그동안 편중된 수출입 구조를 개선해나가고, 나아가 경제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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