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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문장들
‘그 아이들’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에세이스트 2019년 10월호



몇 년 전 회식 때 팀 동료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중3인 아들이 특성화고에 진학하겠다고 고집하는데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팀장님과 몇몇 사람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왜 고민이냐고, 애매하게 문과에 진학해서 인문대생이 되거나 뜬금없이 예술대학 가겠다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아들의 선택을 적극 지지했다. “기술을 배워야 해. 기술이 최고야.” 애매한 문과 출신이자 뜬금없이 예술대학에 간 전적이 있는 나는 뜨끔한 마음으로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모두의 종착지는 결국 치킨집이라는 시대 아닌가. 주변에도 도저히 안 되겠어서 뒤늦게 새로운 기술을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나 역시 수요가 있는 확실한 기술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불안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일찌감치 기술을 익혀 정해진 진로대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같이 취업도, 정년 채운 은퇴도 힘든 시대에 대학교며 회사가 다 무슨 소용이라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졸업생들의 가슴 아픈 사망 소식이 자꾸 들려왔다. 2014년, 현장실습생이었던 김동준 군과 홍수연 양이 있었고,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숨진 김 군도 현장실습생이었으며, 같은 해 사망한 김동균 군은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특성화고 졸업생이었다. 2017년에는 제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인 이민호 군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세월을 더 거슬러 올라가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까지 헤아리면 굉장히 많은 청소년들이 죽거나 다쳤고 죽음 직전까지 몰렸다. 잇단 사건들을 통해 그들이 처한 현실을 알면 알수록 몇 년 전 회식자리에서 특성화고의 밝은 전망만을 바라봤던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얼마나 끔찍하게 나이브했는지 깨달았다. 그때 우리가 가장 즐겨 썼던 말, “요즘 같은 시대에”에 관해, 그리고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에 관해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 p.10

이 사회가 해결할 문제는 존엄한 노동조건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계층’의 아이들이 계속 노동현장에 유입되어 희생되는 부분, 즉 계급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 p.28

르포 작가 은유가 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김동준 군과 수많은 김동준 군들을 한 인간으로서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그들이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찬찬히 쫓아간다. 왜 특성화고 교사들은 안전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위험한 현장으로 학생들을 내몰게 된 건지, 왜 학생들은 현장실습제도를 묵묵히 받아들이게 된 건지, 기업들이 어떻게 그들의 죽음에 조직적으로 비정하게 대응하는지, 특성화고가 어떻게 이 사회에서 작동하는지 등에 관해 유가족들을 비롯해 노무사, 특성화고 교사, 재학생, 졸업생들의 목소리를 겹치고 겹쳐 생생하게 담아낸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 p.30

이 수많은 ‘왜’와 ‘어떻게’의 끝에 아직도 수많은 미래의 김동준 군들이 있다는 게 가장 암담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미래이기도 하기에, 더 이상 이 죽음들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놔둬서는 안 되기에, 은유 작가의 이 소중한 기록을 김동준이 김동준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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