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대한민국 인재를 말하다
편집의 힘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 2019년 10월호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에 따라 이제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굳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핸드폰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바로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으로 그 정의가 바뀌고 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저서 「에디톨로지」에서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편집(editing)이란 ‘일정한 계획 아래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만드는 일’ 또는 ‘영화 필름이나 녹음테이프 따위를 엮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 편집의 범위는 더 넓어진다. 단순한 텍스트부터 이미지의 편집, 나아가 지식, 시간과 공간의 편집까지. 텍스트나 이미지의 편집은 대체로 어떠한 것들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편집은 어떤가. 일본 츠타야 서점의 성공비결은 공간 편집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케 한다. 츠타야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은 상품의 진열 방식, 바로 편집에 있다. 기존의 서점들은 책의 카테고리에 따라 진열하는 반면, 츠타야 서점은 라이프스타일을 바탕으로 책을 진열한다. 예를 들어 요리와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책의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요리와 관련된 소설, 실용서적, 에세이, 시집 등이 한데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요리를 하는 데 필요한 식기와 식재료까지 함께 판매한다. 심지어 옆에 비치된 약식 조리대에서 준비된 재료와 양념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러한 공간 편집에 대한 개념은 지금 생겨난 것일까? 그건 아닌 듯하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공간 편집에 뛰어난 혜안(慧眼)을 갖고 있었다. 방에 서안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고, 소반을 가져오면 식당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됐다. 멍석을 깔면 그 자체로 무대가 됐고, 정자가 있는 곳이 경치가 좋은 곳이 아니라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를 세웠다. 이를 일컬어 차경(借景)이라 했다. 이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팔각정은 8면의 각이 기둥 사이에 여덟 장의 그림과 같은 풍경을 품고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 병풍 하나로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편집하기도 했다.
과거 국가 차원에서 시간을 편집한 사례도 있었다. 서머타임(summer time)제. 여름에는 해가 빨리 뜨고 늦게 지기 때문에 비교적 긴 낮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표준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1948∼1960년(1950∼1952년 제외)과 서울 올림픽(1987∼1988년)에 시행한 바 있다. 이처럼 딱히 정의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넓은 의미의 편집의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돼왔다. 그러나 누구나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온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자 정보는 흔하디 흔한 자원이 되고 말았다. 정보 자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편집력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필수적인 소양이 됐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어떻게 분류하고 어떻게 편집하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시대가 됐다.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생각으로 창조할 줄 아는 이가 인재로 평가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