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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
개혁·개방 가속화하는 중남미
정석수 KOTRA 중남미지역본부 차장 2019년 10월호


2017년 7월 말 멕시코에 처음 도착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우버(Uber)’ 서비스였다. 멕시코에서, 특히 스페인어가 서툰 외국인이 택시를 타려면 미터기로 운행하지 않으려는 택시기사와 항상 사전협상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택시를 타서 협상한 금액으로 요금을 지불하더라도 바가지를 된통 쓴 것 같은 씁쓸함 때문에 이동 자체가 스트레스였는데, 우버가 들어오면서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여간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멕시코에는 우버 외에도 중국의 디디추싱(Didi Chuxing), 스페인의 카비파이(Cabify), 브라질의 이지택시(Easy Taxi) 등 다양한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들이 진출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러한 차량공유 서비스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중남미 다른 국가에도 널리 확산돼 이제는 공항에서 택시기사와 요금을 놓고 실랑이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동안 중남미라고 하면 세계적인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고 항상 뒤처진, 개혁·개방보다는 폐쇄적인 성향이 강한 지역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여지없이 나의 선입견이 깨졌던 순간이었다.

회원국 간 국제로밍요금 폐지한 메르코수르
중남미가 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가운데 중남미 국가들은 오히려 개혁·개방을 가속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한국도 이러한 중남미 국가들의 변화 움직임의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어 바로 이 시점이 한국과 중남미 간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함께 구상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메르코수르(Mercosur)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2016년 12월 1일 이후 자격 정지 상태) 5개국으로 구성된 경제공동체로 남미 인구의 70%(2억9천만명), GDP의 72%(2조7천억달러)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다. 그럼에도 그동안은 폐쇄적인 통상정책을 유지해오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메르코수르의 기조는 분명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역내 비관세 장벽을 낮추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회원국 간 모바일 통화 및 데이터 사용에 대한 국제로밍요금을 폐지하기로 협의했다. 남미 인구의 70%가 단일 통신권역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역외 국가와의 FTA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지난 2000년에 개시됐으나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메르코수르-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거의 20년 만에 타결됐고, 후속 FTA 타결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한국-메르코수르 FTA 협상을 내년에 마무리하겠다는 언급도 있었다.
중남미 핵심경제권인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페루로 구성된 태평양동맹의 GDP 규모는 2조700억달러(전 세계 GDP의 3% 차지), 인구는 2억3천만명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블록이다. 한국과는 상호보완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태평양동맹 회원국 중 멕시코는 우리의 10대 수출국이지만 한국과는 FTA를 체결하지 않았고, 특히 WTO 정부조달청 미가입국으로 FTA 체결국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조달시장을 개방하고 있단 점이 우리 기업의 멕시코 진출 시 진입장벽으로 작용해왔다. 그동안 한국은 태평양동맹의 준회원국 가입을 통해 멕시코와 FTA를 체결한 효과를 누리려고 노력해왔는데, 한국의 준회원국 가입 절차가 앞당겨질 것 같다. 이전에는 기존에 준회원국 가입을 신청했던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캐나다와 협상을 마무리한 뒤 한국과 협상을 개시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기존 4개국과의 협상과 무관하게 올 하반기 협상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중남미 FTA 네트워크 확대…진출 전략 고민해야
이미 한국은 칠레, 페루, 콜롬비아와 FTA를 발효했고 파나마를 제외한 중미 5개국(파나마,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과의 FTA도 10월 1일부로 발효된다. 내년에 한-메르코수르 FTA가 마무리되고 태평양동맹 준회원국 가입이 완료되면 바야흐로 한국은 중남미 대륙 전체와 FTA 네트워크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중남미는 인구 6억4천만명, GDP 5조7천억달러의 거대 시장이다. 평균 연령 29세의 젊은 시장이라서 브랜드 관리를 잘하면 젊은 고객들이 평생 고객이 될 수 있다. 중산층도 비중이 계속 증가하면서 기존의 가격 위주에서 디자인과 품질 위주의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한류 동호회가 다른 권역보다 더 많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다. 광물 및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자 전 세계 식량의 주요 공급처이기도 하다. 브라질을 제외하면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고, 비즈니스 문화가 비슷해서 특정 국가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면 다른 국가로 진출을 확대하기에 용이한 점도 있다.
일본과 중국은 이미 중남미 진출을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공적개발원조를 적절히 활용해 자국 기업들의 중남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의 공세는 더 위협적이다. 초기에는 막강한 중국의 자본력을 무기로 자원, 에너지, 인프라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다가 최근에는 중남미 내수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서비스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고 중남미 기업을 활용한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사례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유행,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등의 외부 변수로 우리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중남미 역내 경제블록의 개혁·개방을 통한 국제무역질서로의 편입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게다가 중남미는 중남미대로 한국과의 협력을 희망하고, 한-중남미 FTA 네트워크가 확대되는 등 여건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중남미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공세가 한층 강화되는 이 시점에서 마냥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도 중남미 진출에 대한 진지한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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