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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의 신나는 시네
믿음과 의심으로 움푹 팬 사랑의 싱크홀
허남웅 영화평론가 2019년 10월호


요즘 한국 영화는 동물로 제목 짓는 게 유행인가? 〈벌새〉가 날갯짓으로 관객을 홀리더니 〈메기〉가 비늘을 휘날리며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곰이 들어 있지 않은 곰탕처럼 〈벌새〉에 벌새 출연(?)이 없는 것과 다르게 〈메기〉에는 메기가 직접 등장한다. 설마 메기 매운탕에 관한 이야기?

사랑의 메기
아니다. 〈메기〉는 믿음과 의심이 싱크홀로 내면을 파고드는 사랑에 관한 영화다. 메기가 사랑을 상징하는 민물고기였던가? 그럴 리 없잖아. 그러니까, 〈메기〉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의 영화라는 얘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옥섭 감독에게 ‘청년’을 키워드로 영화 제작을 의뢰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메기〉다. 청년과 메기는 또 무슨 관계?
윤영(이주영)은 간호사다.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엑스레이실을 알리는 표찰 앞부분에 누가 민망하게 소문자로 ‘se’를 낙서했다. ‘seX-레이실’ 아이 남사스러워, 민망해할 시간도 없이 섹스레이실, 어머! 엑스레이실에서, 어머나! 남녀가 관계하는 하복부의 적나라한 엑스레이 사진이 발견된다.
병원이 발칵 뒤집힐라? 걱정도 팔자야, 예상과 달리 잠잠하다. 의사와 간호사와 환자가 의심을 살까 결근하거나 퇴원해서다. 모두가 엑스레이실에서 몰래 관계를 가졌다는 얘기? 그래서 ‘사랑’병원? 남자친구 성원(구교환)과 정말 그런 적이 있는 윤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병원에 출근한다.
그럼 범인은 윤영과 성원? 병원의 다른 이들이 모습을 감춘 것과 다르게 윤영은 당당하다. 사랑하는데 관계할 수도 있지, 오히려 몰래 엑스레이 사진 찍은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이렇게 줄거리를 설명하다 보니 이 영화를 구성하는 청춘과 믿음과 의심과 사랑의 키워드가 모두 나왔다. 메기가 누락됐다고?
메기는 윤영이 집에서 키우는 메깃과에 속한 민물고기다. 횟집의 수족관이라면 모를까, 메기를 어항에 키우는 사람도 있나? 윤영이 그렇다. 윤영에게 메기는 반려 민물고기다. 메기도 윤영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말도 못하는 메기의 마음을 어떻게 아냐고? 〈메기〉는 메기가 내레이션하는 영화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메기입니다.”

의심의 메기
〈메기〉를 소개하는 동안 물음표(?)를 몇 개나 썼나 의심에 가득 차서 세어보니 무려 13개다. 이 글을 마칠 때까지 몇 개가 더 늘어날지 모르겠다. 아무튼 웬만해서는 제목으로 쓰지 않는 메기, 집에서도 잘 기르지 않는 메기, 청년과 믿음과 의심과 사랑이 도대체 메기와 뭔 관계가 있나? 메기를 향한 불신의 물음표들을 향해 당사자(?) 메기는 자기소개를 빙자해 자기 이름과 비슷하게 ‘메롱’ 하고 놀리는 것 같다.
쓸데없는 의심은 거둘지니, 〈메기〉의 영문 제목은 ‘catfish’가 아니라 ‘maggie’다. 영문으로 표기하니 외국 사람 이름 같다. 메기를 물고기로 보지 말고 하나의 인격체로 봐달라는 영화의 의도 같다. 인권이란 게 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갖는 기본적 권리이듯 인간이 아닌 존재 또한 비(非)인간권이 있다.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 설명하기 힘들지만,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떠나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평등하다.
“그것은 어쩌면 뱀장어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메기여야만 했던 이유는 낮에 웬만하면 물 위로 올라오는 법이 없고 오염에 민감하지도 않아 생명력도 질기고 지진까지 감지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윤영을 위로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딘 듯하면서도 엄청나게 예민한 메기가 어쩌면 윤영이를 포함한 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생각까지 했다.” 이옥섭 감독은 말한다.
지구를 구하는 것까지는 모르겠고, 최소한 윤영과 성원 사이에 균열을 감지해 경고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떻게? 윤영은 자신 커플의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엑스레이 사진에는 흔들리지 않지만, 성원이 전 여자친구에게 폭력을 썼다는 말에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라고 해도 용서할 수가 없다. 무딘 듯해도 예민한 메기의 촉수를 가진 윤영 앞에 나타난 성원 앞에서 갑자기 꺼지는 땅, 거대한 싱크홀.
움푹 팬 땅 밑으로 목격할 수 있는 건 사랑의 은유다. 실제 싱크홀이라면 사람이 빠져 목숨도 잃을 수 있는 문제겠지만, 이 영화는 주옥 같은 메기의 뻐끔뻐끔 한마디에 공감하게 되는 영화다. 싱크홀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얘기다. 그 싱크홀에는 연인 사이의 믿음이 헤엄치고 그에 균열을 가하려는 의심이 그물을 치고 그럼으로써 헤어졌다 재회하는 사랑의 관계가 깊이 파여 있다.
말하자면 사랑의 싱크홀. 꺼진 불도, 아니 땅으로 꺼진 싱크홀도 다시 보자! 사랑의 싱크홀에 빠지지 않고 유지하는 관계가 가장 좋겠지만, 혹시라도 빠지게 된다면 괜한 자존심에 그 안을 탐구하기보다 빠져나올 수 있을 때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의심에 허우적거리며 관계를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 〈메기〉가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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