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
지금의 계절과 동떨어진 옷을 챙길 때 여행의 희열은 곱절이 된다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19년 10월호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겹겹이 쌓인 시간을 가로지르며 걷는 일이다. 기를 쓰고 과거를 지워버리는 한국의 여느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풍스런 운치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근사한 도시란 최첨단 기반시설을 갖춘 곳보다는,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중첩돼 있는 곳이다. 다양한 시민들의 다채로운 삶을 담는 그릇이 도시 아니던가.
유럽에서는 도시의 여러 시설물들이 수십년, 수백년 돼 퇴락해도 조금씩 보수해가면서 그대로 놓아두는 경우가 많았다. 언뜻 봐선 너저분해 보이기도 하는 풍경에서 나는 되레 시간의 온기 같은 것이 느껴져 좋았고 도시 전체에 불균일한 생동감을 더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오래된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여행의 경험이 쌓여서인지 요즘 오래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 조금 불편해도 그럭저럭 감내하고 부품을 바꿔가며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최신 제품에 비해 성능은 떨어지겠지만 나와 긴 시간을 함께한 이력을 생각하면 그 소중함을 함부로 외면하기 어려워진다. 옷가지도 마찬가지다. 색이 바래고 낡을수록 기품을 더하는, 새 옷이 결코 품지 못할 세월의 멋이란 게 분명히 있다. 내 옷장엔 그만큼 오래된 옷이 없긴 하지만 지금 가진 옷들을 오래도록 입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곤 한다. 없던 가치관이 생긴 것이니 여행의 유산이라면 유산일 것이다.
여행이란 자기가 사는 곳을 벗어나 어딘가로 이동해 세상을 보고 듣고 만나는 일이다. 비행기나 기차 등의 교통수단으로 어딘가 이동하는 데서 여행은 시작하는데, 그 이동에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을 넘나드는 것이 포함된다. 영화의 세부 장르 중에 ‘타임슬립’이 있다. ‘우연한 계기 또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시간 여행’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진 장르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봐온 소재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특수한 상황에 처하지 않더라도 여행을 하다 보면 시간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내전 때문에 지금은 여행할 수 없게 됐지만, 오래전 예멘의 수도 사나를 여행하면서는 수백년 전의 시간으로 갑자기 뚝 떨어진 기분이었고, 사막 위에 세워진 두바이의 마천루를 바라볼 때는 SF 영화에 나올 법한 근미래를 앞질러 가본 느낌이었다.



또한 여행은 시간을 가로질러 계절을 만나고 오는 일이기도 했다. 한국의 사계절과는 상관없이 적도 부근의 동남아는 언제나 여름이었고, 남반구를 여행하게 되면 시간이 뒤집어져 한국과 반대의 계절을 만났다. 계절을 만나러 가는 시간 여행의 백미는 아마도 고도를 조금씩 올리면서 가야 하는 트래킹에 있을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위도상으로는 적도에 가까운 곳이어서 매우 덥지만 워낙 고도가 높아 산 정상 부근은 만년설로 덮여 있다. (고도 100미터가 높아지면 기온은 0.6도 떨어진다.) 그러니 히말라야를 트래킹하면 여름에서 시작하지만 산 위로 올라갈수록 배낭에서 옷을 꺼내 한 겹씩 더 입어야 한다. 그리고 정상 부근의 겨울에 이르면 두꺼운 패딩 재킷을 입고 트래킹을 마치게 된다. 꼭 히말라야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리산이나 한라산만 오르게 돼도 가벼운 옷을 입고 산자락에서 시작해 정상에 이르면 여지없이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산을 오르는 일이란 시간을 가로질러 계절을 먼저 만나고 오는 일이었다. 여행이나 출장을 위해 짐을 꾸리는 일이 그렇게 많았으면서도, 짐을 꾸리는 것은 여전히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짐을 꾸리면서 지금의 계절과 동떨어진 옷을 챙길 때 희열은 곱절이 된다. 시간을 가로지르고 지구를 휘젓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는 듯해서 우쭐해지기 때문이다.
행이란 어쩌면 애초에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을 다녀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2년 동안 아시아 전역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아시아 대륙은 넓고 다양했으며 대체로 가난했다. 티벳에서의 일이었다. 어느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갔는데 서울에서 부산 정도 되는 거리를 3~4일에 걸쳐서 간다는 것이었다. 언제 도착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수십년 된 버스는 낡아서 제대로 속도를 못 냈고 툭하면 고장 났다. 산간에 난 비포장도로가 하도 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버스가 언제 출발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사람이 웬만큼 다 차면 출발한다고 했다. 나는 아침마다 버스로 출근해 사람이 다 차기를 기다렸으나 오후 5시쯤 돼도 사람이 다 차지 않으면 다음 날 다시 모이기를 약속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그러기를 5일 동안 하고서야 버스는 출발할 수 있었다. 그 버스 말고는 그곳을 빠져나갈 다른 방법도 없는 외진 곳이었다.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기는 했지만, 아시아의 다른 곳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정시에 출발하는 교통편은 드물었고 수십시간씩 달려야 하니 정확한 도착 시간도 알기 어려웠다. 현지인들은 애초에 그런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긴 아시아 여행을 하고 귀국하던 날, 부모님을 뵈러 부산 본가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올라 기사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그는 이 시간에 출발하면 4시간 50분이 걸린다고 했다. 한국에 너무 오랜만에 와서 그랬을까, 5시간이 아닌 10분 단위를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게 들렸다. 그리고 버스가 정확히 4시간 50분 걸려 부산에 도착한 것은 더욱 어색한 일이었다. 그제서야 실감하게 됐다. 속도 경쟁 사회인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