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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영원한 채무자가 된 치과의사
강창용 치과의사, 「치과의 거짓말」 저자 2019년 11월호


의료인의 면허는 언제부터 진정한 효력이 있을까?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환자의 고충을 공감할 수 있을 때 ‘참’의료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려 박사는 그런 철학을 실천하고 헌신한 의료인 중 한 분이다.
대입을 준비하던 중 언론을 통해 장기려 박사의 청빈하고 봉사하는 삶을 처음 접했다. 아무 대가 없이 헌신하는 장기려 박사의 모습은 항상 차갑게만 느껴졌던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줬고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발견한 희망의 빛 같았다. 스물일곱 만학도에게 1년여의 수험생활은 고됐지만, 장기려 박사처럼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로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마주한 서울대 치과대학 입학 면접. 면접관은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다.
“합격한다면 장기려 박사님처럼 봉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 면접으로 평생 채무자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날의 약속은 마음속 빚이 됐고 나를 항상 질책하고 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치과 과잉치료를 피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환자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4년의 산고 끝에 과잉치료를 피하고 충치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치과의 거짓말」이란 책을 출판했다. 탈고하고 23년 동안 갚지 못한 이자를 상환했다는 기쁨에 밤잠을 설쳤다. 과잉치료 피해자인 환자의 고통에 공감해 시작한 이런 노력은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기회가 됐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장기려 박사의 “자기 눈앞에 나타난 불쌍히 여길 것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인술하는 사람이다”라는 생전 인터뷰를 우연히 접했고, 이는 마치 갚아야 할 채무가 많이 남았으니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잡으라는 질책처럼 들렸다. 그래서 ‘충치를 치료보단 예방’으로 접근하는 치료철학을 널리 알리자는 목표를 추가했다.
오래전부터 선진 치과의사들은 충치를 제거하고 때우는 치료를 마지막 방법으로 선택했다. 한국도 그런 치료철학이 보편화돼야 한다. 돈키호테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보여준 진정성과 헌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어우러진 특화된 전략으로 마지막 채무가 소멸되도록 ‘꿈 많은 사춘기 소년’처럼 그 목표를 이루고 싶다. 그래서 하찮은 삶에 자주 빗대는 ‘하루살이’처럼 살고 싶다. 누구라도 오늘 하루만 살아야 한다면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추진할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신념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겐 신념이 없다. 단지 잘못된 일에 분노했고 그저 옳다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신념이 없으니 포기할 일도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보니 특별한 이유보다는 ‘대학에서 배운 대로’ 실천할 뿐이고 ‘하루살이’로 살지 않으면 갚을 수 없는 무한 채무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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