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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축경제의 그림자
송준혁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 2019년 11월호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사상 최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으며 이러한 기록의 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청년실업률의 고공 행진은 일상이 됨에 따라 웬만큼 높은 수치가 나오지 않고서는 다들 그러려니 한다.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세계 교역 부진에 더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반도체 소재, 부품 및 장비 수입에 어려움이 예상됨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를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과거 5%에도 꿈적하지 않았던 자금들이 2%만 준다고 해도 고금리라고 몰리는 형국이다. 저금리·저성장이라는 과거의 비정상이 이제는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되고 있다.
한편 소비자물가는 지난 8월 통계청의 통계 작성 후 처음으로 음(-)의 상승률을 보인 이후 9월에 또다시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함에 따라 수요 부진에 따른 ‘디플레이션’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수요 측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생산 측면에서의 전반적인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GDP 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에 앞서 2018년 4분기부터 내리 3분기 연속 음(-)의 상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최근 생산 측면에서의 활기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거시경제 지표들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 경제에 수축경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상승하는 것은 부동산, 특히 서울의 주택가격이다. 최근 낮은 금리에 실망한 자금들이 보다 공격적인 금융상품인 DLS(파생결합증권), DLF(파생결합펀드) 등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게 될 개연성이 농후해짐에 따라 당분간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 수요는 주춤해지고 부동산에 대한 선호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의 다른 부분에서는 유동성이 감소하고 있는데 유독 부동산에만 유동성이 몰린다. 자산가격 상승과 경기 둔화의 조합으로 자산을 가진 자의 부는 늘어나거나, 최소한 떨어지더라도 가지지 않은 자들에 비해서는 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수축경제의 문제점은 경제가 더 이상 과거의 성장 신화를 재현하기 어렵다는 것도 있지만 이보다는 수축 과정에서 소득이 자산보다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빈부 격차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빈부 격차를 공정의 잣대로 보는 부류에서 보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수축경제의 그림자가 주는 메시지는 기존의 성장 모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혁신을 통한 새로운 성장 공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수축경제로의 전환을 막기 위해 포용적 성장과 혁신 성장이 필요하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너무 자주 들어 이젠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진다.
혁신의 유인은 대박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 대박이란 사후(ex-post)에 관찰되는 것으로 사전(ex-ante)에는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투자로 비춰지며 혁신을 말로만 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투자는 규제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혁신은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그 환경은 사회가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 혁신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그런 환경이 이미 정착돼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혁신 성장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신뢰받는 리더십과 민간 부문과의 수평적 소통 및 미시적 대응 능력을 강조하는 정책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신성장 모형에서는 거시적 정책 조율을 하는 관리형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책임지고 처리할 수 있는 미시적인 전문가 간의 협업이 보다 강조돼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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