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모바일 대메뉴명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칼럼

감탄고탄 맞춤법
돼지고기 너비 튀김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박태하 출판편집자, 작가 2019년 11월호


지난 호에 “현지어/원어의 발음을 따르는 걸 원칙으로 한다”라는 외래어 표기법의 대원칙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번 호에서는 기억해뒀다 써먹을 만한 요령들을 몇 개 살펴보자. 초입부터 곧장 설명으로 직진하다니 ‘얘 오늘따라 왜 이리 진지해’ 싶으시겠지만 한 페이지 안에 최대한 설명을 욱여넣으려면 하는 수 없으니 이해해주시길. 그래도 바득바득 떼를 써서 넣을 게 아닌 이상 ‘우겨넣다’가 아니라 ‘욱여넣다’가 맞는 표기라는 사실은 알아두시길!
첫째, ‘ㅈ, ㅊ, ㅉ’와 ‘ㅑ, ㅕ, ㅛ, ㅠ, ㅒ, ㅖ’ 등의 이중모음은 결합하지 않는다. 예컨대 ‘쥬’, ‘챠’ 같은 글자로 외래어를 표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만 기억해둬도 무심코 쓰는 잘못된 표기를 여럿 피할 수 있다. ‘나쵸’, ‘레져’, ‘스케쥴’, ‘쥬니어’, ‘쥬스’, ‘쵸코우유’, ‘캡쳐’, ‘텔레비젼’, ‘몽타쥬/오마쥬/콜라쥬’ 등에서는 ‘나초’, ‘레저’, ‘스케줄’ 등으로 모음의 획을 하나씩 살포시 빼주도록 하자.
둘째, 영어·독일어·프랑스어가 어원인 단어의 경우 글자 ‘쉬’나 ‘쉐’를 쓰지 않는다. 이 세 언어는 알파벳이 아닌 발음기호에 따라 한글 표기를 정하는데, 발음기호 ‘’의 표기가 ‘쉬’가 아닌 ‘시’이기 때문이다. ‘e’는 ‘쉬+에=쉐’가 아니라 ‘시+에=셰’고 말이다.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가 아니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고, ‘리더쉽/멤버쉽’이 아니라 ‘리더십/멤버십’이다. ‘밀크쉐이크’와 ‘포르쉐’는 쉬프트키, 아니 시프트키를 한 번 꾹 눌러서 ‘밀크셰이크’와 ‘포르셰’로 써야 한다(‘포르쉐’는 자기들이 ‘쉐’를 공식 표기로 정했으니 따라주자). 별생각 없이 ‘플래쉬’, ‘쉴드’, ‘대쉬’, ‘쉐프’처럼 잘못 쓰기 쉽상, 아니 십상이니 유의하자. 쉽상은 은근히 오타를 잘 내는 맞춤법이니 이것도 같이 유의하자. ‘’ 뒤에 자음이 오는 경우 ‘슈’가 된다는 것까지 알면 ‘슈림프’의 색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세 번째 요령, 서양어를 표기할 때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 편집 방침에 따라 표기를 허용하는 출판사도 있지만, 외래어 표기법의 차원에서 보자면 ‘까페’, ‘모짜렐라’, ‘데낄라’, ‘빠리’는 ‘카페’, ‘모차렐라’, ‘데킬라’, ‘파리’가 돼야 한다. 조금 어색하시겠지만 ‘바리캉’, ‘선글라스’, ‘카르보나라’, ‘카메오’, ‘콩트’, ‘토르티아’, ‘피에로’ 등이 바른 표기. 동양어의 경우에도 태국어와 베트남어를 제외하면 일본어에서 ‘쓰’를(‘つ/ツ’[tsu]를 ‘츠’가 아닌 ‘쓰’로 써야 한다), 중국어에서 ‘ㅆ’, ‘ㅉ’만 겨우 쓸 수 있는 정도다(‘쓰촨성’, ‘양쯔강’ 등). 외래어 표기에 된소리가 껴 있으면 일단 의심을 해봐도 좋을 터. ‘빵꾸똥꾸’가 외래어고 표기법을 따른다면 ‘팡쿠통쿠’로 써야 하겠군 하는 상상은 내가 봐도 좀 과할 터….
빵가루를 묻힌 돼지고기를 기름에 튀긴 대중적인 음식의 국립국어원 공식 명칭은 ‘돈가스’다. 관례적으로 많이 쓰이는 건 ‘돈까스’고 일본어 표기법을 따라도 ‘돈가쓰’ 내지는 ‘돈카쓰’가 돼야 할 것 같은데, 이미 한국화된 발음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런 것 같다. 왜 이 모양인가 싶다가도, ‘커틀릿’을 ‘カツレツ(katsuretsu)’로 쓰다가 그걸 줄이고 또 앞에 ‘돼지 돈’을 붙여 ‘돈카츠’에 이른 원어(일본어)의 사정이라고 크게 다르겠나 싶다. 언어는 국경을 넘나들고, 이국의 언어 속에서 새로운 맥락과 생명력을 얻는다.
안타까운 것은 국경을 넘나드는 외래 바이러스에 생명을 잃어가는 돼지들이다. 덜 고통스러운 방식을 골라주지 못하는 데 대한 미안함으로, 무력하게도 명복을 빌 뿐이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