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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
박스 하나가 작은 냉장고…신선식품을 맛있는 상태로 전 세계로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2019년 11월호



한국의 먹거리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 많은 나라에서 슈퍼마켓을 다녀봤지만 한국 슈퍼마켓만 한 곳이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한류의 영향으로 해외에서 한국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제는 불고기, 갈비, 김치 등 전통적인 한식을 넘어 한국식 라면, 떡볶이, 순대, 치맥, 막걸리, 짜장면 등까지 궁금해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신선식품을 수출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류, 육류, 청과물, 의약품을 생산지에서 최종소비지까지 저온을 유지하며 신선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배송할 수 있는 저온 유통시스템을 콜드체인이라고 하는데, 국내라면 이 콜드체인 유통망을 구축해 신선식품을 소비자에게 잘 배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켓컬리가 이 콜드체인 유통망을 이용한 새벽배송으로 급성장한 회사다. 그런데 국경을 넘는 크로스보더(cross border) 콜드체인 유통망을 만들기는 무척 어렵다. 신선식품을 해외 배송할 때는 스티로폼상자에 냉매와 함께 넣어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냉장차, 창고, 항공편, 통관 등의 반복되는 상하차 절차를 거쳐 운송하는 과정에서 온도 변화가 크게 발생하기 쉽고 그로 인해 제품이 상하거나 맛이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 먹거리의 수출은 대기업에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24시간 일정 온도 유지해주는 박스 개발
이런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 해결방법을 만들어낸 창업가가 있다. 신선식품 배송용 특수박스를 개발한 콜드체인 물류스타트업 에스랩의 이수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박스 하나가 작은 냉장고 역할을 합니다. 이것으로 전 세계 어디든지 신선식품을 보낼 수 있습니다.” 에스랩의 그리니박스(Greenie Box)는 얼핏 보면 단단한 아이스박스처럼 보인다. 따로 전원장치가 붙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박스를 이용하면 24시간 동안 일정 온도를 유지하며 신선식품을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크로스보더 물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법을 만들어냈을까.
이 대표는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일본 리츠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에 진학했다. 2009년 대학 졸업 후에는 귀국해 무역회사에 다니며 원단을 소싱하는 일을 4년간 했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대기업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작게라도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5년 에스랩을 창업했다. 사실 처음에 시도했던 창업 아이템은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웹툰 사업이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웹툰 콘텐츠를 교류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비스를 개발하고 플랫폼을 만드는지 경험이 없어 일 년 동안 헤맸습니다.”
결국 콘텐츠에서 이커머스로 사업방향을 바꿨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좋은 음식과 상품을 해외로 알리는 것에 대한 보람이 컸는데 동남아로 가보니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남아 현지 수요에 맞춰 한국 화장품을 역직구해서 보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화장품을 배송하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남아가 워낙 덥다 보니 배송한 화장품이 말라버리거나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죠.” 국경을 넘어 배송하는 일이라 유통의 전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다. 해당 국가의 창고에 에어컨이 안 들어와서 상품이 변질되는 일도 있었다.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현지에 상품이 도착하자마자 잘 보관할 수 있도록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에 직접 냉동창고를 확보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2016년부터 식품배송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신선식품을 어떻게 하면 최상의 상태로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신선식품 배송에는 보통 스티로폼상자를 이용하는데 보냉 상태가 6시간여밖에 지속되지 않아 크로스보더 물류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류의 모든 단계를 효율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타국에 상품이 도착하면 통관과 검역에 시간이 걸린다. 에스랩은 국가별로 수출입 관련 라이선스를 270개 이상 확보해 통관·검역을 자체적으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각 단계별 물류업체와의 시스템API 연동으로 빠르고 간편하게 물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스티로폼상자 대신 보냉봉투, 단열상자 등으로 다양한 포장을 시도하면서 더 나은 배송방법을 테스트해 나갔다.
이렇게 몇 년을 노력한 끝에 에스랩은 그리니박스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콜드체인박스를 개발했다. 상자 내부에 특수 원단으로 단열을 해서 외부 열기를 막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일전에 무역회사에서 원단 소싱을 담당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덕분에 따로 전기를 쓰지 않고도 일정 온도를 24시간 동안 지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티로폼상자보다 4배 이상 효과가 좋게 만든 것이다. 박스는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크로스보더 콜드체인 물류시스템 구축…4만건 이상 배송 완료
그리니박스는 스티로폼상자에 비해 두께가 얇아 비슷한 크기라도 1.8배를 더 담을 수 있다. 여러 단계의 온도관리가 불가능해 냉동차 하나에 다양한 종류의 신선식품을 한꺼번에 담을 수 없던 문제도 해결했다. 트럭 한 대에 냉동, 냉장, 저온 신선식품을 한꺼번에 실어 공간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그리니박스에 사물인터넷 장치를 달아 배송상자의 위치, 온도, 습도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 배송과정에서 제품이 변질되는 경우에도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 8월에는 그리니박스를 이용해 살아 있는 바지락, 동죽, 꼬막, 백합 등 한국산 어패류를 싱가포르까지 신선하게 배송하는 데 성공했다. 싱가포르에서 제주 감귤이 인기를 얻어 2,500건 이상 배송하기도 했다. 기존 배송방법보다 물류비를 30% 절감하고 수출량은 3배로 늘어났다. 한국 신선식품을 맛있는 상태로 전 세계로 보내기 위한 인프라를 깔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풀무원, 농협 등을 고객으로 4만건 이상의 크로스보더 콜드체인 배송을 완료했다.
그리니박스를 이용한 크로스보더 콜드체인 물류시스템을 구축한 에스랩은 이제 본격적으로 확장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이미 18억원 매출에 흑자를 달성했지만 사업 확장을 위해 TBT파트너스에서 10억원을 투자받았다. 에스랩은 크로스보더 일반 배송뿐 아니라 콜드체인 배송서비스와 그리니박스의 판매 및 대여, 그리고 콜드체인 실시간 관제서비스와 보험상품 연계를 통한 부가서비스 제공을 비즈니스 모델로 잡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의 사과, 배, 귤 등은 정말 맛있다”며 “한국 식품의 해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콜드체인 물류의 성장 전망이 무척 밝다”고 말했다. 앞으로 에스랩의 콜드체인 물류망을 타고 한국의 농가에서 생산하는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물론 전국 곳곳의 맛집에서 나오는 떡, 케이크 등 맛있는 먹거리들이 점점 더 많이 세계인의 밥상에 오르게 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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