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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
애초에 여행의 목적은 장소에 있지 않았다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19년 11월호

 

청년 시절의 나는 무척 가난했다. 일찍이 영화 촬영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학업을 통해 꿈을 이루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기에 영화 현장의 말단 스텝으로 들어가 생계를 해결하면서 촬영을 배워야 했다. 수년을 그렇게 했더니 어느 정도 직위가 올라갔고 통장에도 조금씩 잔고가 쌓이면서 당장 급한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럴 즈음 꿈을 위해서, 나의 삶을 위해서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늦은 나이였지만 공부를 마저 하기 위해 유학을 알아봤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이 세상물정 모르는 헛된 희망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유학 상담을 받으며 내 잔고와 처지를 얘기하면 하나같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학비는커녕 비자도 받지 못한다며. 청춘을 다 바쳐 모았으나 나에게만 거금인 알량한 잔고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국내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학업의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여행이었다. 유학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잔고였지만 아껴가며 여행하니 2년을 여행할 수 있었다. 당시 내게 여행이란 재미로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보고 듣고 배우는 데 목이 말라 전 재산을 들여 경력을 단절하면서까지 떠난 유학의 대체 행위였다. 그러므로 여행은 배움이어야만 했다. 여행지를 한국과 비교하며 다른 점을 발견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긴 여행 끝에 발견한 가장 큰 배움은 한국과의 차이점이 아니라 세계의 ‘보편성’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여태 여행을 하며 두 번 도둑을 맞았는데, 한 번은 방글라데시였고 또 한 번은 호주였다. 도둑이란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할 것 없이 세계 어디에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면부지의 현지인이 나를 도와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매한가지였다.
최첨단을 선도하는 도시부터 원초적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오지까지 많은 곳을 여행해봤는데,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같았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당연히 차이가 있었으나 조금만 더 유심히 살펴보고 깊게 생각해보면 근저에는 어김없이 보편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는 유수한 기업들의 주도로 ‘글로벌화’가 진행 중이다. 다양한 나라와 민족, 사회가 단일한 시스템으로 통합돼가는 것이다. 세계 시민들의 사유체계와 태도, 행동 등이 국경을 넘어 빠른 속도로 하나돼 가는 중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대형 마트가 있고 비슷하게 생겨먹은 쇼핑몰이 있다. 그리고 세계는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고 방송은 위성으로 동시에 전 세계로 전파된다. 사람들은 비슷한 쇼핑몰에서 비슷한 옷을 사 입고,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유럽 축구 중계를 본다. 문화의 고유성과 지역성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20세기에는 전혀 다른 사회를 여행하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의 사정이 그러하다 해도 애초에 인간이란 문화나 시대를 초월해 이미 똑같은 ‘인간 존엄성’을 가진 존재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의 면면을 살피고 싶었던 청년 시절 나의 욕망은 경력의 단절을 각오하고 전 재산을 써가며 여행하게 만들었고, 그 여행에서 만났던 저개발 국가의 청년들 또한 하나같이 나와 같은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다만 나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지만 그들은 여러 정치적·경제적 속박 때문에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여행 경험이 꽤 많이 쌓인 지금의 나는 휘황찬란한 명소보다 특별하지 않은 풍경에 더욱 끌린다. 도시의 후미진 뒷골목처럼 가만히 바라봤을 때 우리네 삶이 중첩돼 있는 풍경, 이름 붙일 수 없는 흔한 풍경 말이다. 그것이 세계의 실체에 더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평범한 풍경을 바라보며 까닭 없이 안도하곤 한다. 어쩌면 세계의 보편성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희미하게 품은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의 여행은 떠남 자체가 목적이고 내용이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보편성을 확인하고 안도하기 위한 여행이지 목적지를 가리진 않으니까. 며칠 전 여자친구가 물었다. “우리 또 여행갈 거지? 어디로 갈 거야?” 우리는 같은 촬영 일을 하는데 서로 다른 드라마 작품에 매진 중이고, 이번 겨울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함께 작업이 끝난다. “갈 데 많지. 북유럽도 아직 못 가봤고, 자동차 빌려서 미국 횡단여행을 해도 좋겠고, 파타고니아 트래킹도 괜찮고….” 한 달 남짓한 기간으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 몇 곳을 나열했지만 그 장소들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긴 어려웠다. 애초에 내 여행의 목적은 장소에 있지 않으므로. 소설가이자 탁월한 여행가인 김훈의 문장에 기대 내 여행의 목적을 들려주고, 다음 여행지의 선택권을 여자친구에게 줘야겠다.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그 느낌과 냄새와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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