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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내가 실시간 검색어 1위라고?”
오찬호 사회학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2019년 12월호


길거리에서 강연을 하는 독특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사회를 비판하는 딱딱한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지 걱정이 많았다. 강연 제목도 울적한 느낌을 가득 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헬조선'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랄 일이 생겼다. 방송 당일, 내 이름은 '수요미식회'를 제치고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여파는 몇 주간 이어졌다. 특히 "대단한 결심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게 좋은 사회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무수히 공유됐다. 나는 결심했다. 누가 뭐래도 사회의 모순을 따지는 글을 쓰는 걸 멈추지 않겠다고.
좋은 세상은 그릇된 현실을 외면하면서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긍정이란 말이 부유하면 나쁜 걸 나쁘다고 말해도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사람 취급을 받는다. 나도 힘들었다. 집필의 회의감이 일상을 지배하려는 찰나 그래도 공감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잡게 됐다. 이제는 불평등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을 거북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불평등의 크기를 '줄여'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하자는 말을 공허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주변에서 가끔 묻는다. 방송이라면, 그저 대중들이 듣기에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게 훨씬 이득인데 어찌 정공법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말할 용기가 있었냐고.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돈도 필요하고, 학교 다닐 시간도 필요해서 5년간 신문배달을 했는데, 이때 봤던 세상은 결코 낭만이란 고상한 단어로 포장될 수 없는 처절한 것이었다. 불평등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밀착시켜 경험한 시간은 내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새벽은 가난의 깊이가 언제나 사람의 상상을 넘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화려한 도심에서도 골목 몇 개만 돌면 여기에 과연 사람이 사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집들이 즐비하다. '그래서'인지 '그런데'인지 헷갈리지만, 그 남루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일찍 출근한다. 가난하니(그래서) 고단한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이들은, 열심히 살아도(그런데) 계속 가난하다. 첫차를 타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매일 마주한 나는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서 찾으려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지 잘 안다. '게으르니' 빈곤한 거 아니냐면서 죽을 때 가난한 건 자기 탓이라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행복은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웃긴 소리다. 새벽 3시에 일어나야만 했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배웠던 불평등이란 잔인한 덫을 나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외면하지 않았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때 낙관할 미래를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세상이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오늘 힘들어하는 사람을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배배 꼬였다고 누가 빈정거린들 나는 '읽으면 우울해지는' 글을 쓰는 걸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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