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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문장들
선물하기 좋은 만화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김혼비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저자, 에세이스트 2019년 12월호



그리 길지도 않은 출근길을 걸어오면서 ‘연말 세일!’, ‘연말 선물 대방출!’ 같은 문구를 쉴 새 없이 봤다. 온 세상이 모두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안달인 12월(정확히 말하면 온 세상이 모두에게 물건을 팔아치우고 싶어 안달인 12월이겠지만, 하나쯤 저렇게 넘어가자. 산타클로스가 가짜라는 것만으로 12월치 삭막함은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을 맞아 선물할 만한 책들에 관해 생각해봤다. 나도 ‘연말 선물 대방출!’ 같은 느낌으로 이번에는 서너 권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지면 분량상 1+1 이벤트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존재감으로는 서너 권을 훌쩍 뛰어넘는 책들이다.
올해 주변에 가장 많이 선물하고 다닌 책은 단연 미깡 작가의 「하면 좋습니까?」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부터 책은 안 봐도 만화는 보는 사람에게까지 두루 좋은 반응을 얻었다. 5년 차 동거커플이 결혼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과정을 그린 책인데 굉장히 현실적이고, 꼭 필요하지만 어디서 쉽게 들을 수만은 없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선물받은 사람들이 “이 책은 교과서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감할 수 있는 문제를 정확하면서도 사려 깊게 다뤘기 때문에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 이미 결혼을 한 사람,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도, 또 그런 자녀를 둔 장년층에게도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재미? 말할 필요도 없다. 미깡 작가 아닌가.

 
내 머리는 얽매이는 게 두렵고 자유롭길 바라지만 내 손끝은 온기에 바로 반응한다. 이 따뜻함을 잃고 싶지 않다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 - p.152

도다 세이지의 만화 「이 삶을 다시 한번」은 나와 꽤 신기한 인연을 가진 책이다. 몇 년 동안 전혀 다른 네 사람에게 네 번 선물받은 책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받은 건 바로 지난 주였다. 제주도에 있어 걸음하기 쉽지 않지만 무척 좋아하고 신뢰하는 서점 ‘책방 소리소문’이, 무농약 귤을 재배해서 판매하는 작은 기업과 콜라보로 귤 한 박스와 책 한 권을 묶은 상품을 내놓았다. 나는 당장 우리 집과 친구 집에 한 박스씩 주문했고 귤과 함께 도착한, 받을 때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어 못내 궁금했던 책이 바로 「이 삶을 다시 한번」이었다. 포장지 속에서 이 책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세상에, 또 너구나!” 외치며 책을 집어 드는데 이 네 번째 만남이 탱글탱글한 귤처럼 유쾌해서 큰 소리로 웃고 싶으면서도 어쩐지 코끝이 찡해왔다. 제주도에서 밀려온 난류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책에 실린 서른 편의 만화를 보면서 느끼게 될 기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들 이 책을 그렇게 선물하나 보다.
 
꽃을 못 피우게 하는 방법이 있어. 물이랑 영양분을 충분히 주는 거지. 그렇게 하면 식물이 안심해서 꽃을 안 피워. 꽃이 피게 하려면 그 반대로 해야 해. - p.67

‘독서의 문장들’에 글을 쓴 지 딱 일 년이 됐다. 생각해보면 매달 아주 작은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책이 좋을까 고민하고 읽고 고르고 건네는 과정이 마치 지면을 통한 일종의 책 선물 같았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읽어주는 것으로 선물을 받아주신 분들께 연말을 맞아 깊고 깊은 감사를 전한다. 내년에도 좋은 선물을 준비할 것을 다짐하며. 한 해를 살아내느라 우리 모두 정말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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