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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선의 브랜드텔링
파타고니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19년 12월호



열네 살의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산 페르난도 계곡(San Fernando Valley)의 팔콘 둥지가 있는 절벽을 향해 암벽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생과 사의 절묘한 경계를 넘나들 때마다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고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에도 심장은 두근거렸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조금씩 더 어려운 코스를 선택해서 도전했지만 어떤 코스는 연철 피톤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피톤은 암벽을 오르며 중간중간 갈라진 바위틈에 끼워 넣어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기능을 하는 장비지만 연철로 만들어진 피톤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했다.
1957년 열여덟 살이 된 이본은 고물상에서 화덕과 모루 등을 구해 크롬-몰리브덴으로 된 강한 소재의 피톤을 직접 제작해서 사용했다. 장비의 기능이 어느 정도 검증이 되자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이본이 만든 피톤을 찾는 이들은 점점 많아져 1965년 그는 항공 엔지니어였던 톰 프로스트와 장비 디자인을 새롭게 다듬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등반 장비 회사가 된다.
이본은 모든 것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엘 캐피탄(El Capitan) 봉우리의 노즈 루트가 형편없이 망가진 것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등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피톤을 바위에 박고 빼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암벽을 이루는 바위가 흉하게 망가져가고 있었다. 이본의 사업이 흥할수록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이본은 바위가 망가지기 전으로 기억을 더듬어갔다. 부드러운 연철 피톤은 적어도 바위를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결국 사업의 근간을 이루는 크롬-몰디브덴 피톤 생산을 중단하고 부드러운 알루미늄을 사용해 기능성을 높이면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을 제품을 생산한다. 


몇 세대가 물려 입는 최고의 제품
자연에 해를 주지 않고도 충분히 기능성이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이본은 1973년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론칭한다.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양국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빙하가 지나가며 만들어진 절경을 품고 있지만 바람이 거세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천혜의 지역이다. 마젤란과 원정대가 이곳을 발견했을 때 원주민인 장신의 테우엘체족을 보고 파타곤(patagon, 거인족)이라 말한 것이 지명이 됐다. 이본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진두지휘하며 자신의 신념을 브랜드에 심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의 사명은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로, 그것은 바로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된다. 몇 세대를 물려받아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면 자연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타고니아가 말하는 최고의 제품은 기능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쉽게 해지거나 망가지지 않고 오랜 세월 애용되는 제품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망가졌을 때 언제든 수선이 용이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면 자연에 끼치는 해를 최소화하는 것이고 이는 곧 지구를 살리는 길이 된다는 말이다.
옷을 만드는 소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주된 소재를 대상으로 이뤄진 환경평가에서 면을 재배하는 동안 사용되는 농약이 주는 환경오염이 심각함을 감지한 파타고니아는 1994년부터 18개월 동안 66개 제품을 예전 재배 방식의 유기농 목화로 모두 대체했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해 재배한 일반 목화로 생산할 때보다 비용은 증가했지만, 유기농 면으로 만든 티셔츠는 피부에 자극이 없고 촉감도 부드러우며 땀 냄새가 나지 않고 염분 자국이 남지 않아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의 아이템이 됐다.
브랜드가 가져야 하는 핵심 가치에서 가장 필수는 제품 혹은 서비스의 훌륭한 품질이다. 품질이 갖춰지지 않은 제품으로 브랜드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봐야 고객은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브랜드의 신념과 목적한 방향이 제품의 품질과 맞닿아 있다면 고객은 브랜드를 묵묵히 지켜보며 브랜드가 가진 생각에 동의하게 되고 이것은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 된다.

자연에 내는 세금
파타고니아는 소재 재활용을 통해 환경에 끼치는 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약 2,800만개의 플라스틱 공병을 재활용해 신칠라 스냅티를 만들어 판매했다. 이 외에도 고객들로부터 못 입게 된 옷을 받은 뒤 재생산을 통해 새로운 섬유로 만들어 6년여 동안 의류 34톤을 재생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지구의 자원에 대해 ‘우리 모두가 자연의 일부이며 지구 자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자체적으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한 파타고니아는 매년 매출의 1%와 이익의 10% 중 더 큰 금액을 환경보호 풀뿌리 단체들에 기부하고 함께 환경운동을 해나가고 있다.
산을 사랑하고 산에 미쳐 있던 이본 쉬나드가 이끄는 파타고니아는 여러 면에서 경쟁사들과는 차별화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첨단의 장비가 난무하는 아웃도어시장에서 엔진을 사용하지 않는 스포츠의 제품만 생산하고, 빠르고 다채롭게 변화하는 패션시장에서 세대를 건너 물려받을 수 있는 옷을 만들며, 화려하고 기능성 좋은 신소재를 강조하는 아웃도어 의류시장에서 플라스틱 공병과 입던 옷을 재활용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마흔일곱이 된 파타고니아는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며 일상의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와 교감하며 점점 더 젊은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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