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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그곳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끄는 여성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통일문화연구소장 2019년 12월호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 여성들이 달라졌다. 노동당과 내각의 핵심에 젊은 여성 인사들이 비중 있게 포진하는 건 물론이고 사회·경제 분야에서도 그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TV 방송 등에서도 메인 앵커와 기상캐스터 등을 맡아 역할이 커졌다. 무엇보다 북한경제를 움직이는 장마당에서 상당한 자본을 축적한 신흥 부유층인 이른바 ‘돈주’ 가운데서도 여성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김정은 일가를 일컫는 이른바 평양 로열패밀리 여성들의 움직임이다. 소위 백두혈통으로 불리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노동당 제1부부장)과 부인 이설주는 가장 주목받는 쌍두마차라 할 수 있다. 과거 은둔을 강요받던 북한 권력의 안방마님들이 베일을 벗고 양지로 걸어 나온 것이다.
이들은 김정은에 대한 보좌나 내조 역할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특사로 서울에 온 김여정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출신의 현송월이 북한 권력의 핵심으로 진입한 게 눈길을 끈다.
평양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삶이 달라지는 모습도 나타난다. 정치·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패션이나 주거, 쇼핑, 먹거리 등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에서 드러나는 변화는 방북 인사나 대북 관측통들의 관심거리다. 의상은 물론 핸드백과 구두 등에서 세련된 패션 감각을 드러내는 장면이 목격되고 TV나 화보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일부 특권층 여성의 경우 서울 강남지역 여성들의 패션스타일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수준이 높아졌다고 한다. 평양 중심가 고려호텔 앞에서 촬영된 한 그룹의 여성들은 최신 유행의 옷차림에 해외 명품가방과 구두·액세서리로 멋을 내 주목받았다. 평양에서도 최신형 스마트폰과 생수병을 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세련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이끌고 있는 건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 간부나 외교관, 해외 대표부 주재원 등의 부인이나 딸이라고 한다. 이들 계층은 각종 이권에 개입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해외 근무나 출장 기회를 통해 해외 명품과 패션스타일에 관심을 갖게 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뇌물을 통해 고가의 패션 아이템 구매가 가능하고 이런 물품들을 뇌물로 바치는 구조가 가동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여성들이 패션스타일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젊은 지도자 김 위원장의 경우 북한 주민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투블럭 스타일의 머리 모양새를 하고 등장해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평양화장품공장 생산라인을 방문한 김정은이 눈 화장에 쓰이는 마스카라를 살펴보다가 “하품만 해도 너구리 눈이 된다”고 지적한 것이 북한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물기에 약해 화장이 번지면 눈 주위가 검게 얼룩지는 문제를 ‘너구리’에 비유해 언급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인 이설주의 등장은 북한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염색한 짧은 머리에 세련된 옷차림, 하이힐에 최신 명품 클러치백을 든 모습은 유행을 이끌었다. 한 여성 탈북인사는 “살 만큼 산다 하는 여성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입으면 패션이 된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여성 패션스타일이 천편일률적이었던 과거와는 확 달라진 양상이다. 조금이라도 화려하고 사치스럽거나 색다른 옷차림은 ‘자본주의 부르주아 날라리 풍조’로 치부되던 것과 차이가 난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그리고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고 양성평등의 위상을 추구하는 데 눈떠가는 여성들을 막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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