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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선의 브랜드텔링
사람을 위한 빼기의 기술 다이슨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20년 07월호
 

1978년 영국 베드퍼드의 오래된 집. 온종일 집 안을 청소하던 제임스 다이슨은 한 손에 진공청소기를 쥔 채로 화가 나 있었다. 먼지봉투를 바꾸면 얼마간 힘을 발휘하던 진공청소기가 며칠만 지나면 이내 흡입력이 떨어져 청소하는 내내 답답했다. 산업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로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개발하고 디자인한 그로서는 흡입력이 떨어지면 먼지봉투를 바꾸라는 제조사의 답변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다이슨은 몇 번이고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고 비교하면서 먼지봉투로 들어온 먼지가 공기구멍을 막아 흡입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당시 진공청소기는 흡입력을 이용해 빨아들인 먼지가 먼지봉투에 쌓이고, 공기는 먼지봉투를 투과해 기계 외부로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다이슨은 진공청소기의 필수 구성품이자 제조사들의 추가 수입원이지만 소비자에게는 불편한 먼지봉투를 없앤 진공청소기를 만들기로 한다. 그때 그의 뇌리에 스친 단어는 ‘사이클론’이었다. 코팅공장에서 사용하는 원뿔 모양의 사이클론은 코팅에 사용되지 않은 에폭시 가루를 회오리바람으로 빨아들여 원뿔 끝에 모으는 기계다.
만들면 만들수록 사이클론은 오묘한 현상을 보였다. 회오리를 일으키는 원뿔형 용기에서 먼지부터 작은 쪼가리까지 원심력과 구심력에 의해 분리돼 바람은 원뿔형 넓은 쪽으로 빠져나왔고 먼지는 뾰족한 끝 쪽에 쌓였다. 모양과 깊이의 차이가 효율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러 종류의 재질로 만들어진 수천 개의 원뿔형이 만들어지고 해체됐다. 아주 작은 먼지까지도 모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실험은 3년간 계속됐다. 하지만 실험이 길어질수록 부채는 늘어만 갔고 다시 투자를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다이슨은 연구를 이어가는 대신 지금까지 진행한 기술에 대한 특허 사용권을 다른 회사에 팔기로 한다. 어느 정도 자금을 확보한 다이슨은 자신의 집 정원 옆 마구간에 연구소를 차리고 4명의 디자이너 겸 엔지니어와 세밀한 연구를 이어갔다.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의 탄생
1990년 두 개의 사이클론이 동작하는 ‘듀얼 사이클론(DC)’을 이용한 첫 번째 진공청소기가 탄생했다. 다이슨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지 12년, 만들어진 시제품만 5,127번째가 됐을 때 스스로 흡족할 만한 제품 ‘DC01’이 탄생한 것이다. 제품을 완성한 다이슨과 엔지니어들은 1993년 ‘Dyson’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1994년 DC01을 상용화해 제품으로 출시했다. 이후 출시된 DC02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판매된 진공청소기라는 명예를 얻었고, 무선청소기의 시대에도 변치 않는 흡입력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브랜드는 브랜드 창조자의 신념과 철학이 깃든 DNA를 갖게 된다. 만든 이가 치밀하고 꼼꼼하다면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도 치밀하고 꼼꼼하다. 반대로 엉성하면 제품이나 서비스도 엉성하다.
소비자로서 직접 경험한 청소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다이슨의 제품개발 관점을 사람으로 향하게 했고 사람을 향한 엄격한 기준이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인 그를 혁신으로 이끌어 다이슨 제품의 DNA로 자리 잡았다. 다이슨 제품의 사람을 향한 혁신은 이렇게 시작됐다.

선풍기에 날개가 없다고?
일관성 있는 다이슨의 행보 때문인지 영국인들에게 ‘Doing a Dyson’이란 말은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이란 의미로 통한다.    
세탁통 2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며 쥐어짜듯 작동하는 세탁기 ‘콘트라 로테이터’, 물기를 칼 같은 바람으로 건조해주는 손 건조기 ‘에어블레이드’ 등이 그것이다. 다이슨의 혁신적인 제품이 곧 시장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콘트라 로테이터는 고급 세탁기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혁신적인 핵심원리를 가진 콘트라 로테이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대에 부활할 것이라 믿고 있다.
에어블레이드의 칼바람은 100여년 동안 만들어져온 날개 달린 선풍기에 혁신의 바람을 선사했다. 다이슨의 엔지니어들은 에어블레이드의 핵심기술을 이용하면 날개가 없는 선풍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상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몸체에 설치된 작은 모터로 빠르게 빨아들인 공기가 동그란 고리를 지나면서 강한 공기 흐름이 만들어진다. 순간적으로 고리 안쪽 기압이 낮아지면서 주변 공기가 기압이 낮은 쪽으로 흐르며 강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날개는 없지만 시원함과 함께 편안함을 주는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로 다이슨은 혁신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더 써 내려갔다. 에어 멀티플라이어의 원리는 다이슨의 헤어드라이기 ‘슈퍼소닉’에 적용됐다. 동그란 고리에 정교한 히팅 시스템이 더해져 적정 온도의 편안한 바람으로 머릿결 손상 없이 말릴 수 있도록 한 슈퍼소닉은 또 하나의 다이슨 히트작 반열에 오른다.
다이슨은 기존에 없던 제품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품들을 과감히 없애는 시도를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다이슨은 스스로가 세운 높은 기준의 혁신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할 제품들을 선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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