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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의 신나는 시네
지금 우리 곁에 유령이 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2020년 07월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 해의 마무리로 자신이 본 영화의 베스트 리스트를 정리한다. 2019년의 영화 목록으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 등과 함께 언급된 작품이 <트랜짓>이다. <트랜짓>은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작품이다. 한국 관객에게 생소한 감독이다. 그런 감독의 작품이 <기생충>과 함께 오바마의 입에서 언급됐다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시간을 통과해 유령으로 부활하다
제목의 ‘트랜짓(transit)’은 통과, 운송, 연결을 의미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통과’할 수 없는 자의 애환을 그린 작품인가? 그렇다. 인간은 다 동등한데 누구는 상품 ‘운송’하듯 취급하는 불평등 사회를 향한 비판의 영화인가? 그렇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똑같은 처지에 놓인 주변과의 관계 ‘연결’로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을 다룬 사연인가? 그렇다.
주인공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는 독일에서 온 난민이다. 불법체류자를 검거하려는 파리 경찰의 경비가 삼엄한 가운데 카페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게오르그는 쫓기던 동료에게 부탁을 받는다. 어느 작가가 쓴 두 통의 편지를 마르세유에 있는 작가의 아내와 멕시코 영사관에 전달해 달라는 것. 돈이 필요했던 게오르그는 마르세유로 향하고 편지를 전달하는 대신 작가 신분으로 행세한다.
작가의 이름을 알아본 영사관의 직원 덕분에 비자를 받는 데 성공하지만, 게오르그는 자신이 떠나는 대신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비자를 양보한다. 그중에는 편지를 전달해야 하는 작가의 아내도 있었는데 이름은 마리(파울라 베어)다. 먼저 알아본 건 마리 쪽이다. 마리는 게오르그의 뒷모습을 보고는 남편인 줄로 착각하고 먼저 다가왔다. 하지만 남편이 아닌 걸 알고 마리는 마치 유령을 본 듯 게오르그에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트랜짓>의 원작소설은 2014년 국내에 출간된 『통과비자』다. 소설의 배경은 1940년,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 당시다. 독일군이 파리를 침공해 프랑스에 있던 유대인과 같은 난민들이 탈출을 위해 대거 남쪽으로 향했다.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던 곳이 바로 마르세유였다. 난민들은 떠나겠다고 멕시코의, 미국의 영사관에서 이제나저제나 비자 발급을 기다렸고, 이 비자를 두고 ‘통과비자’라고 불렀다.
『통과비자』의 2차 세계대전 배경을 현대로 ‘운송’한 <트랜짓>은 시대는 변했더라도 불법체류자로 몰린 난민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메시지와 ‘연결’한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역사물이 아니라, 가해의 주체는 바뀌었지만 그 피해는 나아지지 않은 상황을 현재 시점으로 바라본다. 과거에도 떠나려고 마르세유에 모여들었던 이들이 현재에도 떠나기 위해 마르세유에 모여들고 있다. 그때도 존재하고 지금도 존재하는 이들은 유령이 아닌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동과 서를 연결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공적인 역사 혹은 사적인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휘둘려 가장 큰 피해를 보았으면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사연에 관심이 많다.
지금 전 세계는 하나같이 코로나19를 극복하려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 전에 독일을 비롯해 유럽을 가장 시끄럽게 했던 건 난민 이슈였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강타한 새로운 민족주의, 즉 파시즘의 부활이었다.
과거의 역사는 지층에 묻히지 않은 채 나란한 형태로 현재의 역사 옆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를 목도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가 2차 세계대전 배경의 『통과비자』를 원작으로 가져오면서 역사 드라마로 만들지 않고 현재형의 사회 드라마로 연출한 이유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만약 오늘날 마르세유에 난민들이 존재하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는 페촐트 감독은 그게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수트를 입은 채 피난 보따리를 든 어떤 사람이 마르세유 항구를 걷다가 호텔에 들어가 ‘파시스트들이 와요, 여길 떠나야 해요!’라고 말하는 걸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어요. 순간 난민들의 상황, 공포, 트라우마, 한때 마르세유에 넘쳐났던 그들의 역사가 단번에 이해됐어요.” 피해자는 사라졌어도 그들의 시간은 역사를 ‘통과’해 현재형의 모습으로 되살아나 유럽 전역을 배회하고 있다. 그게 어디 그들만의 특수한 경우일까.
한국 또한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지만, 같은 재난 속에서도 계급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층이 더 큰 피해로 신음하고 있다. 이 계층은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에도 사회안전망 바깥에서 주목받지 못한 유령으로 존재했다. 사회안전망으로의 ‘통과비자’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어 예나 지금이나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오바마가 추천해서가 아니라 우리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트랜짓>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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