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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
내면과 겨루는 것이다,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20년 08월호

 
 
여행은 어딘가로 홀연히 떠나는 일이다. 정주지에서의 고민과 근심 따위를 잠시 내려두어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떠날 때 여행은 시작되고, 여행지의 감흥을 가득 품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 여행은 막이 내린다. 아마도 인간은 ‘이동’의 본능을 유전자에 품고 있을 것이다. 태고의 인류는 어디로든 끊임없이 이동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사냥감을 쫓아 이동하고 자연의 역경을 피해 이동하며 지구 곳곳에 인류가 퍼져 살게 된 것이 인류사 아니던가.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한곳에 정착하게 된 이후에도 이동은 생존을 위해 여전히 필요한 일이었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딘가로 더 멀리, 더 높이, 더 빨리 가기를 바랐다.
그러한 욕망이 수만 년 동안 겹겹이 쌓여 이동은 인간의 본능이 돼버렸다. 현대의 인류는 지구의 모든 극점에 발을 디딘 데 만족하지 않고 달에 착륙했고, 이제는 화성을 가지 못해 안달이다. 비행기는 진작 음속을 돌파했고, 이제는 음속을 돌파하는 기차를 만들기 위해 개발이 한창이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이동 수단을 필요로 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야 여행이 성립되니까. 원시적인 형태의 이동 수단에서 시작해 현대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이동 수단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행착오와 희생을 치르며 끊임없이 이동 수단을 만들어온 인류를 생각하면 고마움을 넘어 숙연한 마음마저 인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세상의 모든 이동 수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무동력 이동 수단에는 더욱 피가 당긴다. 카약, 스키, 자전거, 요트처럼 수백 년, 수천 년 전 발명 당시의 단순한 작동 원리가 여전히 유효한 이동 수단 말이다. 그것들을 타며 오래전 인류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카약을 탈 때는 이누이트 민족의 어느 가장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사흘 밤낮을 칼바람이 부는 바다 위에서 카약에 앉은 채로 끼니를 때우고 쪽잠을 자며 기어이 바다표범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다. 어른 두엇보다 무거운 바다표범을 선체에 걸치자 카약이 위태로울 정도로 휘청인다. 하지만 가족들을 먹일 생각을 하면 돌아가는 길은 가볍기만 하다.
스키를 탈 때는 폭설로 길이 막힌 알프스 산골 마을의 어느 어머니를 떠올려본다. 그녀는 아픈 딸을 위해 밤새 스키를 타고 국경 너머의 먼 마을에 가서 약을 구해오는 중이다. 온몸이 땀에 젖어서 시리고 다리도 너무 아프지만, 앓고 있을 딸을 생각하면 잠시도 쉬어갈 수 없다. 덕분에 그녀의 딸은 생명을 부지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 자라서 똑같은 이유로 밤새 스키를 타게 될 것이다. 이처럼 원시적인 형태의 무동력 이동 수단은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데 쓰인 것들이었다. 물론 요즘에는 최첨단 소재와 기술로 개량돼 여행이나 탐험, 혹은 레저의 영역에서 명맥을 겨우 이어갈 뿐이지만.

 

 
무동력 이동 수단은 동력을 쓰지 않는 만큼 자신의 힘과 기술로 나아가야 한다. 성실하게 몸을 써야만 움직일 수 있는 정직한 이동 수단이라는 점이 매혹적이다. 바람이나 물살 등의 자연환경을 활용해야 하고 눈앞에 놓인 난관을 피해가야 하니, 자연을 면밀하게 살피게 된다는 점 또한 매혹적이다. 그러니 무동력 이동 수단은 우리를 목적지로 옮겨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모든 순간을 찬란한 여행의 시간으로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등 온갖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을 떠나 침묵만이 흐르는 자연 속에서 무동력 이동 수단으로 나아갈 때면 헉헉대는 내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은 한 발 내딛고 팔 한 번 뻗는 것조차도 힘들어한다. 자칫 잘못하면 땅에 꺼꾸러질지도 모르고 바다에 빠질지도 모르니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잡념이 저절로 사라지고, 고통을 위시해 온몸의 감각이 깨어난다. 마치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된 것만 같다. 비로소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아와 만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땀을 흘리며 노력한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이동 수단은 속도를 경쟁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하지만 여행만큼은 경쟁할 필요가 없다. 이미 숱한 경쟁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데 무엇 하러 여행까지 경쟁한단 말인가. 무동력 이동 수단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몸밖에 없으니, 경쟁상대는 자기 자신이면 충분하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내면과 겨루는 것이다. 더욱 건강해지고,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익숙한 정주지를 떠나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탐험심에 기인한다. 그러니 모든 여행은 이미 일종의 탐험이다. 무동력 이동 수단으로 여행하는 것은 더욱 탐험을 닮았다. 나는 평균 정도의 체형을 가졌고 딱히 운동 신경이 좋지도 않지만 카약, 스키, 자전거, 요트 등의 무동력 이동 수단으로 탐험하는 것을 즐긴다. 때로는 운 좋게 전문가들 틈에 끼어 고도의 탐험에 동참하기도 하고, 때로는 초보자 눈높이에 맞춘 낮은 목표에조차 도달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탐험과 도전이 나에겐 작은 성취다. 성공한 탐험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때로는 실패했기 때문에 더 유의미해지기도 한다. 탐험이 전문가들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모든 여행이 일종의 탐험이니, 여행하는 우리 모두 탐험가가 될 자격이 있다.
무동력 이동 수단으로 탐험에 나서면 그렇게 가슴이 뛴다. 그럴 때면 역설적으로 평소의 삶에서 가슴 뛰는 일이 정말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슴 뛰는 것이 멈추면 사람은 죽는 것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탐험에 나선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오래전에 말했다. “때로는 진지한 숙고보다 횡격막의 발작이 우리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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