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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선의 브랜드텔링
모든 답은 고객에게 있다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20년 08월호


누구에게나 기다려지는 우편물이 있다. 수시로 우체통을 확인하고 기다리다 도착하면 신이 나서 서둘러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우편물. 미국의 우체부들은 우편물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 집어 드는 이런 우편물을 앵커 메일(anchor mail)이라 부른다.
1999년부터 우체부들에게 앵커 메일로 불린 것은 넷플릭스(Netflix)의 DVD가 담긴 빨간 봉투였다. 1997년 설립된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사업에서 후발주자였다. 넷플릭스는 인터넷을 뜻하는 ‘net’과 영화를 뜻하는 속어 ‘flicks(flix)’를 더해 만든 이름으로 사업 영역을 확실하게 담고 있다.
설립 당시엔 업계 1위 ‘블록버스터’를 필두로 쟁쟁한 비디오 대여회사들이 버티고 있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저장 매체가 비디오에서 DVD로 바뀌면서 넷플릭스에 기회가 생겼다. 가볍고 얇지만, 영화가 담길 만큼 대용량을 가진 DVD의 특성을 활용해 틈새를 파고들었다. 이미 비디오 대여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경쟁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1999년부터 ‘우편 배송 및 반납’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기존에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대형  비디오 대여체인 ‘블록버스터’를 포함한 다른 경쟁사들과 비로소 경쟁할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의 우편 서비스는 고객들이 웹사이트에서 영화 리스트를 선택하면 가장 첫 번째 영화 DVD와 반송 봉투를 함께 배송하고 고객들이 영화를 다 보고 반송하면 리스트의 다음 영화를 배송하는 방식이었다. 모든 서비스는 월 정액제로 아무리 늦게 반납해도 연체료는 없었고 콘텐츠에 붙은 광고도 없었다.
넷플릭스가 한 일은 단 하나. 사람들이 그동안 비디오를 대여하면서 불편하고 탐탁지 않았던 점부터 바꿔나간 일이다. 이용한 고객들의 만족스러운 후일담이 퍼지자 고객 수도 늘어났다.

브랜드 개성을 넘어선 인격화
빨간 봉투가 도착하면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빨리 영화를 봤고, 보자마자 반송했다. 연체료는 없었지만 넷플릭스 고객들의 반송은 빨랐다. 그래야 다음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담긴 빨간 봉투가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정액제와 우편 서비스로 브랜드와 고객을 효율적으로 연결한 넷플릭스가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영화 보기를 즐기는 ‘개인’이었다. 2000년부터 고객이 영화를 감상하고 평가한 별점을 통해 다른 고객에게 자동으로 추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네매치(Cinematch)’라 불리는 이 시스템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다른 사람들이 우수하게 평가하는 영화를 자신의 리스트에 올리는 사람이 늘어갔다. 넷플릭스는 개발자 알고리즘 대회 인 ‘넷플릭스 프라이즈(Netflix Prize)’를 열기도 했다. 이 대회를 통해 ‘시네매치’의 정확도는 더욱 높아졌다. 평점 높은 영화를 추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슷한 선호도를 갖는 고객끼리 교차 추천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더욱 ‘개인’의 취향에 맞는 정확한 추천이 이뤄졌다. 경쟁사에선 베스트 영화나 광고가 붙은 영화를 열거해서 보여줬지만 넷플릭스는 고객 개인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해주는 스마트함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나’를 알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알아주는 친구와 같은 느낌을 줬다.
브랜드가 변하지 않는 신념과 명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행동하면 사람들은 마치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사람처럼 느끼기도 하는데 이를 브랜드 개성이라 한다. 넷플릭스의 정책과 시스템은 사업 초기부터 고객을 향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영화를 즐기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만을 들어주고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는 친구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알고리즘에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을 추가하면서 추천 시스템에 인격마저 부여하고 있다. 또 다른 진화의 시작인 셈이다.

무한 고객주의에 의한 혁신
넷플릭스는 2007년 인터넷 시청 방식을 도입해 우편 배송과 통합해서 운용하다가 2010년에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를 완전히 전환하면서 ‘N스크린 시대’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N스크린이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마저도 넷플릭스는 고객을 기준으로 바꿨다. 누구나 다 개발할 수 있도록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공개하고, 볼 수 있는 매체를 TV나 PC, 핸드폰에 국한하지 않고 엑스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 스마트TV로도 확대하는 등 고객이 가장 편한 방식으로 넷플릭스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넷플릭스가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으로 승승장구하자 동종의 경쟁사만 위기의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제공하는 회사들마저 긴장했다. 이런 이유로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느낀 넷플릭스는 고객의 취향을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넷플릭스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분석 결과를 토대로 2012년에 선보인 드라마 <릴리해머>를 필두로 다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제작·방영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사들이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Netflixed(넷플릭스 당하다)’란 신조어가 있다고 한다.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될 때 사용하는 단어다. 브랜드가 고객을 향할수록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위태로워지거나 붕괴된다는 것은 진작에 바뀌어야 할 것들이 좋은 브랜드에 의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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