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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무장정파 레바논 ‘헤즈볼라’, 주류 세력화 잰걸음
이승수 KOTRA 레바논지원단 부장 2020년 08월호


헤즈볼라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연결하는 시아파 벨트의 소국 레바논에서 1982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계기로 탄생한 무장투쟁조직이다. 시아파 근본주의 혁명을 주창하는 단체 이슬람 아말을 결성한 무사위가 이란 혁명지도자 호메이니의 후원을 받아 설립했다. 공식 명칭은 ‘레바논 이슬람 저항을 위한 신의 정당’으로 이스라엘 등 외세 침략에서 이슬람 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이 투쟁 목표다. 여전히 낯설지만 어느덧 주류 제도권 세력으로 부상한 헤즈볼라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이스라엘 등을 상대로 테러·납치 등을 수행해온 헤즈볼라는 혈맹 관계인 이란, 시리아의 지원으로 군사력을 증강해 2006년 여름 중동 최강 이스라엘군과 맞붙은 34일간의 교전에서 예상 외 선전을 펼쳤다. 비밀 지하거점에서 수백 발의 로켓을 발사해 이스라엘 방공망을 뚫고 16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이다. 4차에 걸친 중동전쟁의 열패감에 시달리던 아랍권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18개 종교·종파로 어우러진 모자이크국 레바논 국민들도 헤즈볼라의 결사 항전을 지지했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도 헤즈볼라의 정예 전사 수천 명이 참전해 패망에 몰렸던 아사드 정권이 전세를 역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파괴된 병원, 관청 등의 복구까지 지원했다. 시리아 군부에서 출세하려면 헤즈볼라에 줄을 서야 한다는 소문마저 퍼졌을 만큼 아사드 정권·군부와 한층 밀착됐다.

이스라엘과의 전쟁 선전, 저가임대 등으로 국내 지지기반 다져
레바논에서는 공식 인구조사가 1932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됐는데, 인구 105만명 중 기독교가 58.7%, 이슬람 수니파가 22.4%, 시아파가 19.6%였다. 그러나 2019년 비공식 인구조사 결과 국민 550만명 중 시아파·수니파 비율이 각 31.6%, 기독교는 30.6%였다. 국가를 구성하는 인구 중심축이 기독교에서 점차 이슬람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헤즈볼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슈라는 최고위원 7인으로 구성된다. 원칙상 합의로 결정되며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최고위원은 3년마다 개최되는 총회에서 선출되며, 집행총괄위, 정무위, 성전위, 사법위, 의회조정위, 연구조사위, 지방자치위 등 주요 7개 위원회가 슈라의 결정을 이행한다. 헤즈볼라의 핵심 추종세력은 7만여명에 이른다.
미국 국무부는 헤즈볼라의 한 해 예산을 약 10억달러(1조2천억원)로 추산한다. 시아파 벨트의 맏형답게 이란은 매년 약 7억달러(8,400억원)의 자금을 헤즈볼라에 지원한다. 나머지 약 3억달러는 개인, 상점, 협회, 은행 등 시아파의 자발적 기부나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마트, 주유소, 호텔 등의 수익으로 충당된다. 일부 현지 금융기관은 배후에서 돈세탁을 통해 은밀히 지원하기도 한다.
활동 예산은 시아파의 밀집 거주지역인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 베이루트 남쪽 다히예, 동부 베카, 북부 헤르멜의 금융, 주거, 교육, 복지, 의료에 주로 투입되고 있다. 시아파의 절대 신뢰와 지지를 기반으로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실례로 시아파 저소득층 대상의 이자 없는 ‘착한 대부사업’에 추산 누적액 약 3억달러(3,600억원)가 지출됐다. 또한 헤즈볼라가 발급해주는 복지카드로 시장가 대비 저렴하게 식품, 의류, 가구, 전자제품 등 생필품 구매가 가능하며, 의약품비와 병원비도 할인받을 수 있다. 특히 헤즈볼라는 매입한 토지에 저비용 임차주택을 건설해 장기 임대하는 ‘와드(아랍어로 약속이라는 뜻)’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호평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계 기업은 현지 건설, 부동산, 무역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유럽 등 해외로 이주해 활동하는 시아파 디아스포라(diaspora)와의 협력형 해외진출 비즈니스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유능한 20~30대의 차세대 디아스포라에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기존 관광·숙박업, 요식업에 이어 금융업, 식품 수입·가공·유통업, 귀금속 중개업 등 수익성이 높은 사업 분야로 적극 확장하고 있다. 이같이 헤즈볼라는 지난 40여년 동안 시아파 중심 자립형 경제기반의 중요성과 경제성장의 파급 효과를 절감했다.
미디어 분야에서도 헤즈볼라는 독자적으로 다양한 미디어 네트워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위성TV 알마나르, 라디오 알누르를 송출하고 신문·잡지 알인티콰드도 온·오프라인으로 발행해 시아파의 단합과 결속을 다지면서 레바논과 아랍권을 넘어 전 세계로 시아파 근본주의 혁명의식이 담긴 결연한 메시지를 상시 전파한다.

고질적 정정불안·부패로 국가경제 파탄…코로나19 더해져 국민 불만 분출
헤즈볼라는 1992년 의회선거 참여를 계기로 제도권 정치에 도전을 시작했고 2005년 정부 내각 인사를 배출했다. 2011년 헤즈볼라 주도의 야당 연합세력이 내각을 과점했고, 2018년 5월 총선에서 헤즈볼라와 아말 등 동맹정당이 전체 128석 중 과반을 넘는 67석을 차지하면서 위풍당당히 합법적인 최대 다수파 지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10월 통신앱 왓츠앱에 대한 과세로 폭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수니파 하리리 총리가 책임론에 휩싸여 퇴진했다. 올해 1월 디아브가 새 총리에 지명되면서 헤즈볼라는 내각 권력까지 장악했다. 헤즈볼라는 기독교계 아운 대통령이 신임 총리를 회유해 입지를 강화하려 하자 무력 사용 카드로 압박해 헤즈볼라계 인사로 내각을 구성했다는 후문이다.
컴퓨터공학자 출신인 신임 총리를 수반으로 한 내각의 재무장관은 경제학자이며 경제장관은 금융계 인사다. 종파 간 뿌리 깊은 나눠 먹기식 분파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기술관료로 내각을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고질적 정정불안과 부패로 GDP 대비 국가부채가 170% 수준에 이르면서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을 거듭하고 국가경제는 파탄으로 치닫고 있다. 3월 초 대외채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데 이어 5월에는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면서 누적된 국민 불만이 폭력시위로 분출되고 있다. 국가 디폴트 임박설이 거론될 정도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레바논의 자금줄인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 산유국들은 최근 급박한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 폭락의 영향으로 자금지원을 선뜻 결정할 수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1997년 국제 테러조직으로 지정된 헤즈볼라에 대해 근래 영국, 독일 등 친미 국가들과 공조해 제재 고삐를 죄고 있는 미국은 2018년 10월 「헤즈볼라 국제금융방지법」을 개정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현지 헤즈볼라계 은행 자말트러스트를 특별제재대상으로 지정하는 등 더욱 압박을 강화할 태세다. 올해 1월 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이자 헤즈볼라의 그림자 실세인 솔레이마니와 헤즈볼라의 창립 멤버인 무한디스에 대한 미군의 폭살에 격분한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는 추모집회에서 코란의 형벌 법칙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부르짖으며 ‘숭고한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헤즈볼라는 위태한 중동 정세 속에서 역대 최악의 경제위기와 그에 동반한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 비주류 무장세력에서 주류 제도권 세력으로 성큼 발돋움할 것인지 아니면 혼란과 분쟁의 시대로 다시 뒷걸음할 것인지, 실로 중대한 운명의 갈림길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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