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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선의 브랜드텔링
바다에서 태어나 상징이 되다
염승선 『애플은 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텔링에 집중했을까?』 저자 2020년 10월호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역에선 중세시대부터 어부들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옷이 있다. 어부가 바다에 빠졌을 때 망망대해와 구별해 알아볼 수 있도록 푸른색과 흰색 줄무늬 패턴으로 만들어진 이 옷은 지역명을 따 ‘브레통 셔츠(Breton Shirts)’라 불렸다. 1858년 3월 프랑스 해군이 해군복 마리니에르(Marinière)로 브레통 셔츠를 공식 채택했는데, 이때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한 횟수를 의미하는 하얀색 21줄과 푸른색 20줄 혹은 21줄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규정과 함께 재탄생했다. 
해군에 마리니에르를 납품하던 업체 중 브르타뉴 지역 인근 몽생미셸에 세인트 제임스라는 코뮌(프랑스 중세의 주민지자체)이 있었다. 11세기에 정복왕 윌리엄 1세가 만든 세인트 제임스 코뮌은 소금 습지에 자생하는 풀을 먹고 자란 양의 털에서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실을 뽑아 타래를 만들거나 손뜨개로 속옷과 양말 등을 짜왔다. 당시 코뮌은 자원과 재산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였으며 이것은 그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1850년 코뮌의 시장 뤼가르(Rugare)와 그 일가는 이 사업을 직접 운영하며 사업체 형태로 만들어 소매상에 공급했다. 소매상에 공급된 세인트 제임스 코뮌의 옷은 방수성이 약간 있는 데다가 물에 젖었을 때 입은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체온을 유지해주는 특이성을 갖고 있어 ‘제2의 피부’라 불리면서 해군뿐 아니라 어부와 선원들까지도 애용했다. 
세인트 제임스 코뮌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1889년에는 코뮌의 이름 그대로 ‘세인트 제임스 방직공장’이란 공식적인 사업체가 된다. ‘바다에서 태어난(Né de la mer)’ 세인트 제임스의 시작이다.

바다의 상징
해군복 마리니에르를 모티브로 1917년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은 선원들이 입던 리조트룩과 밀짚 모자 등을 조합한 노티컬 컬렉션(Nautical Collection)을 발표한다. 브레통 어부들이 입었던 줄무늬 옷을 재해석해 패션계에 선보인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인트 제임스는 전문 선원들을 위해 속옷과 양말 등을 제작해 특별 매장에서만 판매했다.
세인트 제임스의 제품이 대중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56년이다. 프랑스 국가 정책에 따라 2주간의 유급휴가를 3주로 바꾸는 정책이 시행된 해다. 휴가 기간이 늘어나면서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그로 인해 해양 레저의 인기도 급부상했다. 
해군 장교 출신이자 프랑스 요트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릭 타바를리(Eric Tabarly)가 요트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거머쥐며 인기를 구가했고 자연스럽게 그가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입던 노르망디 바다색 줄무늬 옷에 관심이 쏟아졌다. 어느새 3주간의 바캉스를 바닷가에서 즐기길 원하는 휴가객들의 가방 속엔 스트라이프 셔츠와 스웨터, 선원 모자 등이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선원과 어부를 위해 만들어온 세월의 가치를 인정받은 세인트 제임스는 우수한 품질로 ‘마린룩’의 대명사가 됐다. 
브랜드가 어떤 것의 상징이 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볼 때마다 브랜드를 연상하게 되기 때문에 많은 브랜드가 상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브랜드가 상징이 되려면 보고, 인지하고, 공감하고, 기억하는 단계가 필요한데 이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게다가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으면 상징은 쉽게 깨지기 때문에 브랜드는 상징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세인트 제임스는 11세기 전통 방식 그대로 한 세기 동안 바다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한편 공식적인 마리니에르에 ‘해군(Naval)’이란 이름을 붙이거나 또 다른 디자인의 셔츠에는 ‘Wesson Ouessant(웨쌍)’, ‘Piriac(피리악)’ 등 노르망디 근처 섬의 이름을 붙이며 바다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의 매장 인테리어엔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줄무늬를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오래전부터 해양 레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바다에서 태어난 세인트 제임스는 바다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됐다.

아이템에서 아이콘으로
1917년 가브리엘 샤넬의 발표 이후 줄무늬 패션은 당대 주목받던 셀럽들이 입으며 해상 복장에서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패션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세인트 제임스는 1960년대부터 1년에 한 번 남성, 여성과 키즈 라인의 컬렉션을 만들고 카탈로그로 제작해 선보이며 줄무늬 패션을 일상으로 끌어들였다. 
새로운 CEO 베르나르 봉트(Bernard Bonte)가 취임하면서 순수한 양모만 사용된 ‘진짜 브레통 마린 스웨터(Vrai Chandail Marin Breton)’ 등의 의류만을 만들기 위해 다른 제품의 생산은 모두 중단했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수한 품질의 스웨터와 카디건 등을 만들었고,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프랑스 패션계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봄·여름과 가을·겨울 시즌으로 나눠 연 2회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로써 프랑스에선 독특한 프렌치 스트라이프 패션이 주류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세인트 제임스는 해양 관련 아이템을 만들던 회사에서 스트라이프 패션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브랜드가 어떤 것의 상징이 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브랜드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의 흐름과 관점의 변화를 읽어내야만 한다. 131년이 된 세인트 제임스는 여전히 훌륭한 재료와 스트라이프 디자인과 같은 핵심적인 가치는 간직한 채, 인정받는 패션 디자인 브랜드 혹은 작가 등 크리에이터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며 프렌치 스트라이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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