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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카메라 로드
책상 위의 여행, 길 위의 독서
박 로드리고 세희 촬영감독 2020년 10월호





요즘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과 함께 살아간다. 하루에 이름과 연락처를 몇 번이나 적었고 체온을 몇 번이나 쟀는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세상 곳곳에 알코올 손 소독제가 비치돼 있어 수시로 손을 닦고 또 닦는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하도 답답해서 잠시 벗고 있더라도 근처에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너도 나도 마스크 매무새를 단정히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가 하지 않던 행동들인데 요즘은 이웃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상식이 돼버렸다. 코로나19로 인해 맞이하게 된 이른바 ‘뉴노멀’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우리에게서 여행을 빼앗아갔다. 여행을 꿈꾸고 계획하던 사람들은 실망이, 여행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절망이 클 것이다. 틈만 나면 여행을 가곤 하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일종의 금단현상처럼 좀이 쑤시고 우울한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여행이 생업인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철없는 생각을 추스른다.
여행을 못 가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요즘 나는 여행책을 읽으며 지낸다. 신간도 몇 권 읽고, 오래전에 사놓고 여태 읽지 못했던 책도 보지만, 읽은 지 10년, 20년이 지난 여행책을 다시 꺼내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나를 여행하는 사람으로 이끌어준 고마운 책들인데, 출간한 지 오래됐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품은 여행 문학의 고전이 될 만한 것들이다. 딱 다섯 권만 꼽자면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로 전국 산천을 누빈 여정을 기록한 『자전거여행』, 재일조선인 인문학자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소설가 김형경의 심리학적 여행 에세이 『사람풍경』, 일본의 전설적인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청춘을 산에 걸고』, 세계에서 가장 재밌는 여행작가라 불리는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들고 싶다. 독서는 책상 위의 여행이고, 여행은 길 위의 독서라 한다. 새로운 지식을 만나 새로운 삶의 태도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여행과 독서는 무척이나 닮았다. 그러니 몸은 여행을 떠나지 못하지만 마음과 머리로 여행을 다니며 그럭저럭 팬데믹의 시절을 견뎌낸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몸으로 탐구하며 경험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다. 휴가를 보내거나 재미를 추구하는 관광과는 사뭇 다르다. 여행과 관광이 엇비슷하면서도 분명한 다른 것은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에 있다. 현대적인 여행의 근간은 17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그랜드 투어’다. 그랜드 투어란 상류층 자제들이 가정교사를 대동하고 몇 년에 걸쳐 유럽 전역을 다니며 교육을 받는 것이었다. 증기 기관차가 발명되기 이전이었으니 마차에 짐을 싣고 다녀야 했다. 당시에는 여행을 나서는 것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상류층 사이에서 그랜드 투어가 크게 유행했던 것은 여행이 추구하는 가치가 지식과 교양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의 교육을 위한 투자를 세상의 어느 부모가 아까워한단 말인가. 그랜드 투어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어 여행자는 지식과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여행은 독서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나는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 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일 뿐이다.” -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중.
유시민 작가의 신간 여행서를 읽으며 무릎을 쳤던 대목이다. 유시민 작가는 한 도시의 역사와 구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도시를 이루는 공간과 구조물, 분위기는 시간을 두고 켜켜이 쌓여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도시 구성원들의 생각과 감정, 욕망과 처지가 누적돼 있다. 그것들을 탐구하며 들추어보려 하지 않는 여행자에게 도시는 껍데기만을 보여줄 뿐,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유시민 작가는 도시 자체가 텍스트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구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텍스트는 이미지와 달리 즉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읽어야만 이해된다. 그리고 하나의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텍스트를 함께 찾아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의 경험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독서 또한 게을리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도시에 대한 글을 쓸 때, 정보나 지식에 관한 부분은 3분의 1은 알고 있는 것을, 3분의 1은 대충 아는 것이어서 자료를 참고해야만 쓸 수 있는 것, 3분의 1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다.” -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중.
올해 초만 해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시절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항공사와 여행사가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여행산업이 과거와 같은 수준이 되려면 백신이 개발된 이후에도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행의 방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여행 국면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는 것밖에 없는 듯하다. 나는 요즘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코로나 이후의 여행을 차분한 마음으로 준비하며 소양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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