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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20년 만에 찾아온 행복
김민철 카피라이터 2020년 10월호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무조건 잘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고3 내내 가고 싶었던 바로 그 대학의 교수들이 빙 둘러앉아서 던진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정신적 행복’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교수 중 한 명이 “옆에서 먹을 게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때도 정신적으로 행복하면 괜찮나”라고 되물었다.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서 얼른 “물질적 행복도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럼 처음 대답과 안 맞지 않느냐”는 지적을 들었고, 머릿속은 엉망이 됐다. 결국 그 대학에 똑 떨어지고 말았다. 실패로 끝나고 만 이야기가 ‘결정적 순간’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다.
내가 쓴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은 한 교수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혹시 우리 학교에 와서 행복에 대해 강연해줄 수 있으신가요?”
“네, 그럼요. 저야 영광이지요.”
『모든 요일의 기록』엔 행복을 찾아가는 나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대 후반,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여행을 가겠다는 꿈을 품었다. 여행만 가면 행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에 가득 차 프랑스 관련 책이라면 무턱대고 읽었다. 결국 남프랑스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행복은 내가 사는 지금 바로 이곳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16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는 중이다.
이 모든 행복을 찾는 여정을 1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처음 해보는 행복에 관한 강의였지만 직접 경험하고 느낀 만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후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가득 찬 대학생들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강의를 한 학교는 바로 20년 전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그 학교였다. 행복에 대해 대답을 못 한 바로 그 학생이 20년 후 바로 그 학교에서 행복에 대해 강의한 것이었다.
완전히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실패’라는 딱지만 덕지덕지 붙어 있어 굳이 꺼내지 않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에 오늘의 사건이 더해지니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는 것 같았다. 뭐랄까. 현재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해주기 위해 준비된 과거의 좌절이랄까. 평범한 강의의 기억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과거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마치 하나의 신화가 된 느낌이었다. 그때 느꼈다. 성급하게 과거를 낙인찍을 필요가 없다는 걸.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걸.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시간도 아직 넉넉하다는 걸. 정해지지 않은 건 미래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과거도 충분히 바뀔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성급하게 실패를 ‘실패’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실패일지 성공일지는 결국 시간이 알려주는 것이다. 실패의 기억을 성공의 기억으로 바꾸기 위해서 지금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20년 전에는 그토록 멀어 보였던 ‘행복’이 어느새 내 손 안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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