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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우리도 홍콩처럼 할 수 있을까?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KDI 겸임연구위원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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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가보면 좋겠습니다.”
2018년 1월 30일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밤, 홍대 부근에서 KBS 〈명견만리〉 제작팀과 다시 만났을 때 필자는 홍콩을 취재지 중 하나로 추천했다. 격차 사회의 교육 문제와 그 해법을 다루는 기획에서 홍콩을 고려하는 것이 아주 근거 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홍콩은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전 과목 평균점수가 최상위권임은 물론 학생들 간의 점수 편차도 매우 낮다. 한국도 평균점수가 상위권이지만 학생들 간 편차가 2012~2015년에 증가한 반면 홍콩은 감소했다. 홍콩은 과목별 최하등급 학생 비중도 2000년 이후 대부분 10% 미만으로 조사대상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홍콩에서는 학생의 가정배경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낮은 편이고, 최하위 25% 가정배경에서 국제적으로 최상위 25%의 성적을 거둔 역경극복학생(resilient students)의 비율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0년 새로운 학제 도입해 고교부터 각자의 적성과 진로계획에 맞춘 수업 진행
그러나 OECD PISA의 설문조사에서 홍콩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와 학교에서의 행복감(소속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낮은 편이다. 2017년 1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홍콩의 학교는 교도소와 같다는 교육수장의 언급과 함께 2013년 이후 71명의 학생이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2017년 5월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도 홍콩의 학생 자살 사건을 접하고 부정적 측면의 교육현실을 취재한 바 있다. 당시 담당 프로듀서들과 홍콩 얘기를 나누면서 필자는 홍콩 교육의 현황에 대한 착잡함과 함께 궁금증이 커졌다.
그보다 앞선 2015년 1월 필자가 KDI 동료(박윤수 박사)와 함께 간 홍콩 출장에서 받은 홍콩 교육의 인상은 교육개혁을 고민하는 연구자에게 고무적이었다. 이 출장은 교육 분야의 해외 석학들이 초청된 워크숍에서 홍콩의 교육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돼왔다는 평가를 듣고 궁금하던 차에 서울교육연구정보원의 정책연구를 맡게 돼 해외사례 연구차 방문한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북유럽의 교육선진국과 달리 한국과 사회문화적 배경이 비슷하면서도 일관된 교육개혁을 진행 중인 홍콩에 큰 관심이 갔다. 홍콩은 높은 교육열과 교육비 부담, PISA의 높은 순위, 치열한 입시경쟁, 사교육시장의 번성, 학생들의 낮은 행복감 등에서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홍콩의 인구는 700여만명인데 대학은 8개에 불과해 고교 졸업생 중 약 4분의 1만이 홍콩 소재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홍콩대나 홍콩과기대 등 주요 대학의 국제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홍콩의 교육개혁을 계속 추진해온 교육부 고위관료의 설명에 따르면 홍콩도 1990년대까지는 입시 위주의 주입식·암기식 교육에 치중했다. 그러나 2000년에 새로운 학제를 도입하고 이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고교 과정을 마치는 2012년까지 일관되게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신학제 아래에서 2009년에 도입된 새로운 고교 교육과정은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필수과목을 4개로 줄이며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해 교육과정을 개별화한 것이 특징이었다. 고교 과정(10~12학년) 전까지는 모든 과목을 배우도록 하지만 고교 과정부터는 각자의 적성과 진로계획에 맞춘 수업을 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또한 모든 학생이 대학에 가기 어려운 현실에서 교육과정의 다양화로 성공경로를 다양화하는 것을 목표로 직업교육과정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고교 과정은 가령 오전에 4대 핵심과목인 중국어, 영어, 수학, 자유교양[(Liberal Studies; 정해진 교과서 없이 세상을 이해하는 통식(通識) 과목)] 수업을 했다면, 오후에는 20여개의 선택과목과 기타 외국어 및 직업교육 중에서 각자 2∼3개를 선택해 깊이 배우도록 했다. 예컨대 물리와 역사를 선택해 융합형 인재의 길로 들어설 수 있고, 특수목적고에 가지 않더라도 직업교육이나 외국어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필자가 방문한 중등학교(홍콩은 중·고교 과정이 통합된 6년제)에서는 금요일 오후를 교과수업 대신 인성교육, 체험 및 봉사활동, 진로교육에 할애하고 있었다.
고교 교육과정의 개별화는 선택과목 중심 교과과정과 연계된 대입제도 도입에 의해 뒷받침됐다.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홍콩 중등교육학위(DSE; Diploma of Secondary Education) 시험은 홍콩 학생들이 대입 전까지 쳐야 했던 기존 2회의 시험을 1회로 줄인 새로운 공인시험(public exam)이다. DSE는 필수과목 및 선택과목의 1~5등급(추가로 5+, 5++등급도 활용) 평가, 직업교육의 1~3등급 평가, 기타 외국어과목 A~E등급 평가로 구성되며, 학생들이 재학 중 선택해 수강한 모든 과목을 평가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2009년에 선택형 고교 교육과정이 도입된 후 2012년에 처음 실시된 DSE에서는 무려 1,129개의 선택과목 조합이 발생했다.
이렇게 다양한 과목들을 선택해 시험을 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을까? 과거에 홍콩 학생들이 보던 입시는 상대평가였지만, DSE는 절대평가로 전환했다. 또한 고교 과정을 통해 갖춘 역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며, 논·서술형 문제를 다량 포함해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탈피하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DSE 성적과 더불어 학교 수행평가(School-Based Assessment; 사회과목은 논문 작성, 과학과목은 실험·실습 등으로 평가) 결과, 자기소개서 등을 대학에 제출하고, 대학은 지필고사를 제외한 면접 등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했다.


반대자들에 대한 설득의 연속이었던 교육개혁 과정
필자의 2015년 홍콩 출장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진정한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을 주도한 대학생 시위에 대해 교육부 고위관료가 내렸던 쿨한 평가다. 그 사건은 교육개혁 1세대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과 자기주도성을 갖게 된 방증이라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홍콩 통치체제의 안정성이 그런 세대를 탄생시킨 교육개혁의 일관된 추진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콩의 교육개혁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고 반대자들에 대한 설득 작업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2006년에는 교육개혁으로 인해 과중해진 업무에 불만을 품은 교사 2명이 자살하자 교사들 수천 명이 자신들의 업무와 스트레스를 줄이고 개혁을 늦춰달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필자가 방문한 학교 교정에서는 졸업생 봉사자가 재학생에게 개인교습을 해주고 있었다(2018년에 얘기를 들으니 약간의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입전형 자료인 영문 자기소개서는 학생들이 쓴 것을 6년 가까이 그들을 지켜봐온 교장 선생님이 직접 교정해준다고 했다(한국에 한번 모셔 오고 싶었던 그 열정적인 여자 교장 선생님은 영어 교사 출신이라고 했다). 한국처럼 사교육이 번성했지만, 한국만큼 대입에서 사교육의 영향력이 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3년이 흘렀다. 2018년 2월 KBS 〈명견만리〉 제작진과 다시 홍콩을 찾았다. 필자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현시점에서 교육개혁의 결과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솔직한 평가였다. 그리고 바뀐 교육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고등학생들, 대학생들, 교원들, 그리고 입법부의 중진 의원을 만났다. 교원들이 뽑은 직능대표인 입법부 의원은 학생들이 시험점수는 높은데 학습에 흥미가 없고, 교과 공부와 입시 준비에만 치중해서 다른 능력을 계발할 기회가 없다는 진단에서 2000년에 교육개혁이 시작됐다고 했다. 홍콩의 젊은 세대가 21세기의 새로운 도전들 앞에서 기회를 잡을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배움에 흥미를 갖고, 소통 능력을 기르고, 책임감을 갖고,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용기를 내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선 학생들이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것을 직접 선택해 학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선택과목 조합은 매우 다양한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입법부 의원에 따르면 2~3과목을 선택하게 한 규정이 대부분 2과목 선택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학생들이 3과목을 듣도록 권고하지만, 교육현장에서는 각 과목이 너무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4대 필수과목을 듣고 나면 3과목까지 들을 여력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교육과정 개정이 학생들의 지식 기반을 오히려 과거보다 좁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고 했다. 입법부 의원은 이 부분을 곧 해결하려 한다고 전했다. 교육개혁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계속 발견되고 이를 교정해가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얘기에 따르면 고교 과정의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에 있어 제약은 역시 개별 학교에서 해당 과목을 가르칠 교원의 수급 사정이었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과정을 배우는 사립학교 학생들은 교육여건이 더 좋은 편이었지만, 가령 심리학이나 의상학에 관심이 있어도 교원이 없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반학교를 다녔던 대학생은 자기 학교에는 최소 10과목의 선택지가 있었고 대부분이 그중 3과목을 골랐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과목은 성적순으로 선택권을 줬다고 했다. 그리고 성적이 너무 부진한 학생은 학교에서 선택과목을 2개 또는 1개만 고르도록 권고한다고 했다. 또한 자기 학교 학생들의 경우 4대 필수과목 외에 최소 1개의 선택과목 시험을 보게 하는 DSE에서 대부분 1개의 선택과목만을 골라서 응시한다고 했다. 이 선택과목이 대학 지원 전공과 관련이 높을 경우 입학처에서 보너스 점수를 주며, 대부분의 대학들이 영어를 강조하고 있기에 영어 점수에 2배의 가중치를 주고 있다고 했다. 대학이 별도의 지필고사를 보지는 않되 DSE와 다른 전형자료를 자유롭게 활용해 자율적으로 선발하고 있다는 설명이 현실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였다.


홍콩과 닮은 점 많은 한국의 교육 문제···홍콩은 되고 한국은 안 된다?
수업방식과 비교과활동에 대해서도 물었다. DSE 시험으로 대학에 가지 않고 국내외 명문대학에 별도로 선발되는 IB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사립학교 재학생들의 경우에는 더 다양한 방식의 수업을 듣고 더 다채로운 예체능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반학교에서 DSE를 준비했던 대학생은 각 과목이 커리큘럼대로 다 하려면 내용이 너무 많아 시간이 모자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거의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을 한다고 했다. 필자는 싱가포르 교육개혁의 모토이기도 하고 최근 교수학습법 혁신의 대세가 되고 있는 ‘적게 가르치고 많이 배우도록(Teach Less, Learn More)’ 하는 교육철학이 홍콩의 향후 교육과정 개정에도 반영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학교 시험은 그해 DSE 시험에 나온 문제 유형을 베껴서 출제된다고 하니, 어느 곳이든 대입 공인시험이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 셈이다.
한편 홍콩의 학교 유형을 살펴보면 일반학교(Aided School; 등록금 없이 정부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학교로 정원의 30%를 학교가 자율 선발하고 70%는 학생 선호를 반영해 교육청에서 배정) 외에 국제학교, 사립학교, DSS(Direct Subsidy School; 등록금 수준, 학생 선발, 학교 운영 등에서 자율성을 갖고 입학생 수에 따라 정부 재정지원도 추가로 받는 반사립학교)가 있다. 입법부 의원에 따르면, 학교 내 교육과정의 개별화로 선택과목에서는 수업 내 학력 차이 문제가 완화됐지만, 학교 간 계층 격차는 2002년 이후 인기 있는 공립학교들이 DSS로 전환하면서 커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가정환경이 어려워도 성적이 우수하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등록금이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을 위해 등록금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해외여행을 다니는 부유한 동료들 사이에서 느끼게 되는 위화감이 존재한다고 했다. 입법부 의원은 홍콩 교육부에서 학교 혁신을 장려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DSS가 계층 간 교육 격차를 키워왔다고 평가하면서 공립학교에 더 투자해서 그 수준을 DSS 정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물론 홍콩은 이미 2010년에도 전체 예산의 4분의 1을 교육에 투입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개혁을 추진한다고 보도된 바 있다.
필자가 2018년에 보고 온 홍콩 교육은 개혁이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학생들의 경쟁 스트레스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부모들의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아이돌급 일타강사들이 누비는 사교육시장도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학생들, 교원들, 교육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그들의 개혁이 적어도 옳은 방향이라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었다. 시대에 맞게 교육과정을 변화시키고 평가제도를 그에 일치시키는 개혁의 방향이 틀리지 않기에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홍콩을 다시 가보고 싶었던 것은 지금 우리의 교육현실 때문이었다. 한국의 교육 문제가 홍콩과 닮은 점이 많을뿐더러 지금 우리 정부가 개혁하려고 하지만 사회적 합의도 실행도 쉽지 않은 과제들에서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 고교 과정과 유사한 고교학점제 도입, 홍콩 DSE 시험과 유사한 논·서술형의 절대평가 수능 도입, 홍콩 DSS와 유사한 자사고 문제에 대한 대응….
그런데 한국과 무엇이 달라서 홍콩은 2000년 이후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부작용을 보완할 계획을 세우면서 지금까지 일관된 방향의 개혁을 추진해올 수 있었을까? (적어도 홍콩과 비교하며 우리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안 된다고는 하지 말자.) 사회적 신뢰가 높아서일까? (불특정 타인을 신뢰하는 국민의 비율은 2010년대 중반 기준 홍콩이 48%, 한국이 27%다.) 개혁의 긴 호흡과 개혁 리더십의 안정성 때문일까? (정권과 정파를 초월한 장기적이고 일관된 교육개혁이 추진되려면 국가교육위원회든 뭐든 필요할 수 있는데, 일단 국가교육회의부터 잘돼야 할 것이다.) 또 궁금증이 차오를 때 홍콩에 가야겠다.

첨부파일 인적자본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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