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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랑 연구만 안 하면 교수도 좋은 직업?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KDI 겸임연구위원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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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교수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학생들 얘기, 수업 얘기를 했고, 그때는 맥줏집에서도 교육 얘기를 했습니다.”
며칠 전 필자가 속한 학부의 교수회의에서 한 선배 교수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꺼낸 말이었다. 2010년에 학사과정을 신설해 학과 구분 없이 입학생 100명을 뽑아 가르치던 시절에는 소수정예 융합교육을 통해 미래형 인재를 기르겠다는 열정이 교원들에게 있었다고 한다. 미국 칼텍(Caltech·캘리포니아공과대)에 버금가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꿈도 허황된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고 한다.
10년간 KDI에 재직하면서 한 번도 이직을 생각하지 않았던 필자가 2016년 이 대학에 오게 된 것도 그 선배 교수의 PR이 많이 작용했다. 이곳에 개설된 인문·사회과학 강의는 입문 수준의 개론 과목이 별로 없고, 교양과 전공 사이의 수준으로 독특한 주제를 다루는 이색적인 수업들이 많았다. 이런 작은 규모의 혁신적인 학교에 오면 필자가 하고 싶었던 교육 실험, 특히 교수학습법 혁신 실험을 맘껏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창의성, 인성, 긍정성을 갖춘 과학기술인재를 길러내는 데 동참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연구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교육을 할 수 없다?
여섯 학기째를 보내고 있는 지금, 필자는 그때의 선택에 만족하면서도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실감하고 있다. 기관 전체 차원에서는 학사과정 학생들을 혁신적인 융합교육으로 미래형 인재로 길러내고자 하는 이상도 있었지만, 전공교육에 집중해 연구 프로젝트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대학원생을 공급받고자 하는 현실적 요구도 있었다. 학사과정 학생들(이제 한 학년이 200명으로 늘어 총 800명)은 대학의 발전방향으로 후자보다 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는 융합교육의 내실과 교수학습법의 혁신이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
한편 교수 사회에서는 학사과정 설치 후 임용된 교수들이 시간이 흘러 재임용이나 승진 등 인사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교육업적보다 연구실적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연구실적이 결정적인 인사심의에 몰리면 명품 수업을 만들기보다 생계형 논문을 쓰는 데 몰두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존본능이다.
예전에 대학에 오래 있었던 선배가 “강의랑 연구만 안 하면 교수도 참 좋은 직업인데”라는 농담을 했다. 이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자아내는 것처럼, 교육과 연구는 교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지식인으로서 사회봉사를 추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둘 중 무엇이 ‘학생’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교수’에게 더 중요한 사명인지 묻는다면, 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교육’이다.
물론 연구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고, 필자도 이에 매우 동의한다. 특히 학문후속세대를 길러내는 대학원 과정의 교수는 그 스스로가 왕성한 연구자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좋은 교육이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할 때, 연구에 쏟는 시간이 그다지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시간만큼 수업의 질을 높일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면, 연구실적은 교육의 질과 상충관계에 놓인다. 



학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동료 교수는 학생들이 제출한 글에 꼼꼼히 첨삭지도를 해서 돌려준다. 이와 같은 개별 학생에 대한 교수자의 피드백은 학습 성과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이 입증돼 있다. 〈그림 1〉은 교육경제학의 수많은 실증연구결과들을 집계(메타분석)해 어떤 교육전략이 ‘비용 대비 효과성’이 높은지를 정리한 것인데, 여기서도 학생에 대한 피드백이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의 비용은 재정 투입을 의미하지 교수자의 노력 투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정성스런 개별적 피드백의 제공은 교수자의 시간을 빨아먹는 스펀지 같아서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여러 번 하려고 하면 논문을 쓸 시간은 물론 쉴 시간도 상당히 반납해야 한다.


일방향 강의, 24시간 후 기억의 잔존량 5%에 불과
개별 첨삭과 같은 피드백 외에도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한 교수자의 노력은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일단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은 학생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므로, 미래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과 실력을 길러줄 수 있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다. 관행적으로 오래 해왔던 방식의 수업이라도 그것이 앞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식이나 기술(스마트폰으로도 금방 검색 가능한 정보)의 습득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나 시험을 본 후에 금방 사라질 기억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교수자 스스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림 1〉에서 비용 대비 효과성이 역시 높은 것으로 제시된 급우들 간의 학습 지도(peer tutoring), 협력적 그룹 학습 등은 학생들 간의 수평적 상호작용이 강조된 수업이다. 경쟁력 측면에서 협력적 문제해결능력과 집단 창의력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수평적 수업을 잘 설계해 진행하는 것은 학생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성공 역량을 기르는 데 당연히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수평적 수업이 사회자본 함양에 미치는 효과가 실증적으로 확인된 바 있듯이(김희삼,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방향」, KDI 연구보고서, 2017), 우리 사회에서 쇠락해온 신뢰와 협동심, 공공심을 제고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물론 수업은 강의식으로 하고 조별로 숙제로 내줘 학생들 간의 협업을 종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업 중에 수평적 상호작용이 이뤄지면 조별 과제도 억지로 맡겨진 불편한 과제(인간관계의 피로감과 무임승차자에 대한 분노 때문)가 아니라 수업 중 협업의 자연스러운 연장이 된다.
수평적 수업 도입에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수업 중에 학생들 간의 모둠별 협업을 도입하려고 해도 학생 수가 너무 많아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학령인구의 급감에 따라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수평적 학습이 가능한 교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또한 이미 소규모 수업이고 수평적 학습이 적합한 과목인데도 일방향의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새로운 교수학습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늘 좋은 핑계가 되기는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수평적 수업으로의 변화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일방향의 강의식 수업이 갖고 있는 효율성에 대한 믿음이다. 가르치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혹은 두꺼운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모두 전달하려니 학생들 간의 토론이나 협업에 할애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필자도 고민이 돼 교육경험이 풍부한 석좌교수님들께 가능한 한 많은 내용을 가르치는 것의 유용성에 대한 의견을 묻곤 했다. 그분들은 그동안 많은 내용을 가르쳐도 봤는데 별로 소용은 없는 것 같더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림 2〉의 학습 피라미드가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학습을 하고 24시간 후에 내용이 머릿속에 평균적으로 몇 퍼센트나 남아 있는지를 나타낸 것인데, 일방향의 강의(학생 입장에서는 듣기)는 5%에 불과하다. 수업시간에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학생들이 그걸 그대로 물어보는 시험에서도 다 틀리는 신기한(?) 비결이 여기 있는 것이다. 기억의 잔존량은 그룹 토론이 50%, 실습 및 체험 학습이 75%고, 다른 사람을 가르쳐보는 것은 무려 90%다. 따라서 급우들 간의 학습 지도는 가르쳐주는 학생도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고 또 자신의 허점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상호 유익하다.
교수자의 흔한 착각은 전달된 정보가 전달자와 피전달자에게 비슷한 정도로 간직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업처럼 시간이 길고 정보량이 많은 조건에서 전달자인 교수는 내용의 90% 이상을 기억하지만 피전달자인 학생의 기억에 남는 것은 평균 5%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교수자는 같은 수업을 매년 반복하면서 기억이 더 공고해지는 반면, 학생들은 시험 볼 때 애써 기억을 복구했다가 그 후 배웠다는 추억만 간직한 채 내용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린다.


“이 입문 수업이 어린 학생들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네”
사실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는 수업(최근에는 슬라이드를 이용한 강의가 많아 학생들은 필기도 잘 하지 않는다)에서 학생들의 뇌는 별로 활동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일상생활 중 교감신경의 활성화 정도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수업을 듣는 시간은 바보상자라 불리는 TV를 보는 시간처럼 교감신경이 매우 비활성화돼 있다. 한마디로 멍한 상태로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인데 TV처럼 재미있는 것도 아니니 졸린 것이 당연하다. 차라리 자고 있는 동안에는 꿈도 꾸면서 교감신경이 훨씬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보다 앉아서 듣고 있는 학생의 뇌가 실제로는 더 잠자고 있을 수 있다.
필자는 학생들 간의 조별 상호작용이나 전체 토론 등을 수업 중간 중간에 가미하는 방식으로 매회 수업을 설계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강의하는 부분이 조금 길어질 때면 일부 학생의 집중력이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때 얼른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면 그 학생도 집중력을 회복하고 생기를 찾는 것을 보게 된다.
필자의 동료 중에도 교수학습법 혁신가들이 있다. 한 교수는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 형태의 수업을 수년째 하고 있다. 필자도 수업을 참관해봤는데, 학생들이 조별로 예습한 결과를 문장으로 된 요약과 그림으로 구성한 요약으로 함께 정리하고 개인별로도 질문거리와 탐구과제를 만들어오는 것이 숙제였다. 수업은 발표와 토론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학생별 참여도를 조교가 기록하고 있었다.
또 다른 교수는 수업시간에 누가 강의할 것인지를 추첨으로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확률적으로는 교수가 아닌 학생 중 한 명이 가르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각 학생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준비를 해서 수업시간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예습을 하면서 가장 이해가 불명확한 부분(the muddiest point)이 무엇이었는지 각자 적어서 제출하게 하고(적어낸 부분은 해당 학생의 강의 내용에서 면제), 그 부분은 교수가 명확하게 해주고 있었다. 혼자서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혼자서 공부하게 하고, 교수는 그 나머지 부분을 온전히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강의자로 뽑혀 해당 부분을 가르친 학생은 아마 아주 오랫동안 그 내용을 기억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3년 동안 순수 강의식 수업, 거꾸로 학습이 가미된 프로젝트 수업, 토론식 수업 등 다양한 교수학습법을 시도하면서 교육적 성과를 관찰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미시경제학 수업을 라이브로 녹화해 온라인 동영상 강의 자료로 만들고 있다. 재작년에는 700쪽이 넘는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강의식으로 거의 다 가르쳐도 봤고, 지난해에는 그중 일부 내용을 덜어내고 조별 토론과 협동적 문제풀이를 수업 중에 도입해보기도 했다(기말고사 점수에 조별 평균점수를 반영). 지난해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과 개선의 필요성(수업 중 시간 부족)을 고려해 이번 학기에는 제대로 된 수평적 수업을 위한 동영상 강의 자료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제작하는 동영상 강의들은 향후 거꾸로 수업의 예습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고, 일반에게도 공개해 이런 방식의 수업을 확산할 생각이다.
하지만 제대로 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촬영을 위해 강의노트를 새로 만들고, 그래프들을 일일이 손보고, 강의 중에 던질 질문거리와 토론거리를 궁리하고, 매 수업 도입부의 흥미 유발용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업은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제작업체와 주고받는 대용량 메일이 매일 한두 차례 이상이고 그 사이마다 작업이 들어간다. 지난 여름방학을 거의 다 쏟아붓고 이번 학기 중에도 촬영교안 제작과 학생들의 수업 중 발표가 포함된 동영상 편집 작업을 매일 몇 시간씩 하고 있다. 
다른 일들도 쌓여 있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푸념이 고개를 들 때면 필자의 미국 유학시절 은사를 떠올린다. 명망 높은 학자로서 바쁨 순위로도 최상위권이었을 그분은 학부 1학년이 주로 듣는 경제학개론 수업 준비에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슬라이드를 계속 고치면서 궁리하는 모습이 지금의 나랑 비슷했을 듯하다. 그분의 RA를 오래 했던 필자는 왜 대학원 전공수업 이상으로 학부 교양수업을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시냐고 여쭤봤다. 그분의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는 이미 같은 길에 들어선 동료지만, 이 입문 수업은 어린 학생들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네.”
지금까지도 필자의 마음을 다잡기에 충분한 참스승의 한마디다. 

첨부파일 인적자본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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