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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과 불굴의 의지의 5060

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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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업의 태동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일화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거북선 화폐 얘기일 게다. 영국 바클레이은행에서 돈을 빌리려 내민 거북선이 새겨진 500원짜리 화폐 한 장이 중공업의 역사를 바꿨다는. 한국 경제발전의 신화를 언급할 때도 예외 없이 거론된다. 가난과 배짱, 불굴의 의지라는 수식어를 붙여서다.


한데 이런 성공신화 말고, 먹먹한 삶이 우리나라 선박산업과 함께 숨 쉰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은 부산 남향동으로 편입된 옛 부산 대평동은 ‘깡깡이 마을’로 불렸다. 배에 달라붙은 녹과 조개껍데기를 떼내려 내려친 망치소리는 삶의 몸부림이었다. ‘깡~깡~’ 울려 퍼지는 소리에 청력이 훼손되고, 녹가루에 폐가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선박을 고쳤다.


제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이렇다 할 기술 없이 맨몸으로 한국경제의 토대를 닦은 세대다. 그들의 자식이자 지금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 이들은 그들 덕에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조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농사를 가장 큰 밑천으로 알고 살았다. 두 세대에 걸쳐 자식은 노후 보험이자 가족경제를 잇고 건사할 든든한 후계자였던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처지가 달라졌다. 부모세대는 조부모를 모시는 걸 당연한 걸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자식에 기댈 염치가 없다. 오죽하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삼포세대’로 불리니 말이다. 자녀에게 노후를 의탁할 수 없으니 길은 하나뿐이다. 사그라지는 노동력을 부여잡고 일터를 전전할 수밖에.


이른바 베이비부머다. 그들은 낀 세대다. 부모를 부양하며 자식을 키웠지만 정작 자신은 부양기대를 접었다.


베이비부머는 이 나라 경제발전과 경제위기까지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냈다. 58년 개띠는 40세에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정리해고 1순위자로 전락했다. 외환위기 파고를 넘고 겨우 숨돌릴 만해지자 닷컴 버블이 덮치고, 세계 금융위기에 또 휘청거려야 했다. 자영업으로 눈을 돌렸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바람에 벌이는 신통찮았다. 그 와중에도 치솟는 학원비와 대학등록금 같은 교육비를 감당하며 자식을 키워냈다. 빚을 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7년 사상 처음 200조원을 넘더니 좀처럼 줄지 않고 늘어만 간다.


이런 5060세대가 지난해 1,340만명에 달했다. 생산가능인구의 30.9%다. 10년 뒤면 1,667만명으로 늘어난다. 5년 뒤인 2022년까지 베이비부머는 고용시장에서 줄줄이 퇴장한다. 노후대책은 꿈도 못 꾼 상황에서다. 그렇다고 국가의 안전망이 튼튼한 것도 아니다. 또다시 온몸으로 풍파를 견뎌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이들이 고용시장에서 실제 물러나는 나이는 72세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일거리에 매달린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힘 좋은 청년들의 실업률도 치솟는 상황이다. 그나마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OECD의 마크 키스 고용분석실장은 지난 9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포럼에서 “디지털 환경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55세 이상 한국인은 5%가 안 된다”고 말했다.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상황이 이러니 재취업은 고사하고 창업을 해도 성공하긴 어렵다.


하지만 낙담하기엔 그들의 역할이 아직도 우리에겐 너무 크게 남아 있다. 곰곰 생각하면 이들이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열어줄 사람일지 모른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낮아 생산가능인구가 주는 마당이다. 어쩌면 경제위기의 파고를 넘은 이들이 인구절벽의 파고를 넘는 희망일 수 있다. ‘중년’을 ‘중흥의 키를 가진 사람’으로 보면 안 될까. 그 옛날 한국경제를 일으키고 자식을 키워냈듯이 말이다. 이들에게 배짱과 불굴의 의지라는 수식어를 다시 붙일 방법을 찾을 때다.

첨부파일 이슈-김기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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