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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하면 대부분 은퇴···출산·육아는 라이벌보다 더 무서운 적

박소영 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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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딸을 출산한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미국)가 지난 3월, 6개월 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임신 전 세계 1위였던 윌리엄스는 그새 랭킹포인트가 소멸돼 491위로 추락했다. 랭킹에 따라 대회 참가 자격과 시드가 주어진다. 윌리엄스는 딸을 얻은 대신 세계 1위의 모든 권리를 뺏겼다. 도핑으로 15개월 출장정지를 받았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가 징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와 비슷한 처지다. 현 세계 1위 시모나 할레프(루마니아)가 출산에 따른 윌리엄스의 랭킹 하락을 문제 삼았다. 출산을 한 엄마 선수들이 ‘0’에서 경력을 다시 시작하는 건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제 모든 여자 선수들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결국 세계여자프로테니스협회(WTA)는 내년 시즌 전에 ‘불이익 없는 출산·육아 휴가 보장’에 대해 논의키로 했다. 
한국 스포츠계는 어떤가. ‘여자 운동선수의 출산·육아 휴가’는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여자 선수의 경우 임신을 하면 대부분 은퇴한다. 임신과 출산을 거친 뒤 원래의 몸 상태로 회복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다고 해도 길고 힘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0년 가까이 선수로, 지도자로 테니스 코트를 지켰던 신순호 명지대 감독은 “출산 후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 출산으로 팀 전력에 마이너스가 되면 다른 여자 선수들이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했다. 2014년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은 박미희 감독은 “아이를 키우면서 감독직을 수행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애들이 대학에 간 뒤에 감독을 맡았다”고 했다. 출산·육아를 직접 경험했던 여성 스포츠인에게도 ‘출산·육아=은퇴’란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무엇보다 여자 선수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다. 아니 낳아선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해도 임신을 미룬다. 1980년대 선수생활을 했던 신순호 감독은 운동을 위해 결혼을 포기했다.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 임영희 선수는 2012년 결혼했지만, 여전히 “선수로 뛰는 동안 임신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아이를 갖는 순간 20~30년간 쌓은 경력은 단번에 ‘회복 불능’ 상태가 된다. 임신·출산·육아는 라이벌보다 더 무서운 적이다. 
다행히 공공과 민간의 많은 영역에서 출산·육아 휴가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여자 운동선수들도 예외가 돼선 안 된다. 탁구선수 출신인 정현숙 한국여성스포츠회 전 회장은 “여자 선수들도 출산·육아로 인한 조기 은퇴 노이로제에 시달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미래 설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수들의 직장에 해당하는 소속팀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여자 프로배구 GS칼텍스는 2009년 정대영 선수에게 복귀를 보장하는
1년간의 출산·육아 휴가를 줬다. 프로배구 관계자는 “사실 프로선수는 개인사업자다. 팀에서 일괄적으로 출산·육아 휴가 제도를 도입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출산 이후에도 몸 관리를 잘해 이전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정대영처럼 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양궁·사격·펜싱·태권도·축구 등 22개 종목의 직장운동경기부를 산하에 둔 서울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90일의 출산휴가와 최대 1년 6개월의 육아휴직을 유급으로 보장한다. 이 제도를 이용해 출산과 육아로 7~8개월 쉬고 팀에 복귀한 사례가 꽤 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보장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더 많은 여자 선수가 선수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첨부파일 이슈-박소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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