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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실험자 성별에 따라 반응 달라···남녀가 함께 연구해야 연구 수월성 높아져”

백희영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젠더혁신연구센터장, 전 여성가족부 장관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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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은 과학기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론다 쉬빙어(Londa Schiebinger) 교수는 과학·공학의 새로운 연구 방식으로 ‘젠더혁신(Gendered Innovation)’을 주창한다. 우리나라는 2013년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를 시작으로 2016년 한국 젠더혁신연구센터가 출범하면서 젠더혁신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관심이 모아졌다. 백희영 젠더혁신연구센터장을 만나 성별과 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젠더혁신’이란 개념이 무척 생소하고 낯설다.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문화적인 젠더(gender)의 남녀 차이를 과학기술에 올바로 반영해 편견 없는 연구를 하자는 게 젠더혁신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혁신기술을 개발한다. 성과 젠더는 분석적 목적으로 분류된 것이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생물학적 특성을 갖고 태어나 사회에서 살아가므로 성과 젠더는 함께 작용해 개인의 종합적 특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연구 주제의 내용에 맞게 성·젠더 분석을 활용하면 과학기술연구의 수월성을 높이고 남녀 모두에게 맞는 제품과 치료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러한 젠더혁신을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표준이 실제로는 남성에 국한된 것이어서 인구의 절반인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적 연구에선 일관성과 재현성(reproducibility; 개개의 측정치가 일치하는 성질 또는 정도)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생리주기, 임신, 출산 등의 생물학적 가변성이 큰 여성(암컷)보다는 남성(수컷)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 많은 분야에서 당연시됐다. 그러나 이를 기반으로 생산된 약품이나 안전기준 등은 여성에게 부작용과 의도치 않았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공산품에서도 규격화된 제품의 표준으로 남성의 신체가 많이 사용됐다.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이제까지 남녀의 특성과 필요가 골고루 고려돼왔는지 재검토하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기존 과학기술과 서비스가 어떤 젠더이슈를 발생시켰나?
과학기술연구는 주로 남성에 의해, 남성을 기준으로 수행됐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97~2000년 미국에서 판매가 중지된 10개 약품 중 8개가 여성에게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었다. 원인을 살펴보니 그동안 세포실험, 동물실험, 임상시험을 남성(수컷) 위주로 진행해 여성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면밀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 유명한 사례는 자동차 충돌실험을 할 때 남성의 인체모형만을 사용해 실제 추돌사고 시 여성 경추환자 발생 비율이 남성에 비해 2배 더 높았다는 거다. 최근에는 여성, 아동, 임산부 등 여러 기준의 인체모형이 개발돼 충돌실험에 사용되고 있다.


젠더혁신으로 여성이 많은 수혜를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 젠더혁신은 남녀 모두가 수혜자다. 흔히 폐경기 여성의 질병이라고 알려진 골다공증의 경우 환자의 3분의 1은 남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가 여성에게 집중되다 보니 진단기준과 치료법이 여성 중심이어서 남성 환자의 경우는 심각한 골절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사전 진단이 힘들었다. 젠더혁신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최근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WEF가 발표한 성격차지수(GGI)에서 2016년 한국은 144개국 중 116위를 기록했다. 과학기술 분야는 어떤가?
2016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에서 발간한 여성과학기술인력 현황을 보면 재직여성 비율은 19.3%다. 자연·공학계열 전공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타 전공계열 여성보다 낮은 수준이다. 특히 여성 보직자 규모와 비율은 10% 이하다. 리더급 여성의 진출이 저조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낮을 경우 나타나는 문제는?
처음에는 대상이 수컷에 치중된 것만이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최근 신경과학(neuroscience) 분야나 통증에 대한 연구에서 연구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 실험동물들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더라. 동물이 실험자 성별에 따라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 ‘연구자 성별 효과’로 실험에 남녀 연구자가 모두 참여해야 정확한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여성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참여가 여성의 활동을 높일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발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여성의 참여율을 높이는 것은 우리나라 연구개발의 효과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을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오랫동안 남성들이 연구를 수행해오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과정이 남성 위주로 진행됐다. 문제는 그 연구에서 나온 제품들을 여성들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의도치 않았던 차별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젠더관점을 연구개발의 전 단계에서부터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차근차근 기초부터 점검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가는 단계적 노력이 필요하다.


성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재난 대응시스템으로 여성이 더 피해를 본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됐다.
정부에서 마련한 각종 위기관리·안전교육 매뉴얼 등을 살펴보니 재난관리의 모든 단계에서 여성을 고려한 세부적인 행동요령이 제시되지 못해 여성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구 지하철 사고, 세월호 침몰과 같은 각종 대형 사회재난이나 홍수·산사태·지진 등 자연재난이 발생할 때 여성 사상자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14년 발간한 보고서 「재난피해여성에 대한 복구 및 지원방안」 에서는 재난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에 더 심한 피해를 입히며, 특히 여성의 경우 재난 취약성이 높고 위기대처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2014년 국립재난연구원에서 도심지 침수 대피능력을 실험한 결과에서도 여성의 대피속도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느리고, 일정 수준 이상 물이 차면 여성은 전혀 대피가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유승희 더불어민주당의원 대표발의)을 제안했다.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바란다.


성별격차가 발생하는 원인과 해결책은?
재난 대응시스템에 적용되는 대부분이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여성은 취약계층인 어린이, 노인 등에 대한 대응방안에서 이들을 돌보는 사람으로 고려되나, 본인의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 동반자를 돌볼 수 있으므로 남성과 신체적 특성이 다른 여성의 재난 대응책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현재 국제연합(UN)은 젠더관점을 반영한 재난관리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젠더-인지적 위험평가(Gender-Sensitive Risk Assessment)를 실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개정안을 통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안전취약계층에 여성을 포함해 하위 계획과 매뉴얼에 여성을 고려하는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여성의 사회적 재난 대응능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2018년 젠더혁신연구센터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올해는 연구사업의 3차 연도로 그동안의 성과를 알리고 제도를 확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때마침 5월에 2회의 공개포럼을 계획하고 있다. 1차는 5월 10일 ‘남녀 모두를 위한 기술혁신’, 2차는 5월 23일 ‘남녀 모두를 위한 의생명 분야 연구혁신’이라는 주제로 서울 프레스센터(오후 3시~7시, 19층 매화홀)에서 열린다. 지면을 통해 『나라경제』 독자분들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최근 남녀 연구자가 함께 연구해야 동물의 반응을 모두 관찰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결국 관점뿐 아니라 실제 과학적 연구의 수월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인간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는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권기대 나라경제 기자

첨부파일 이슈-인터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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