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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만들도록 고안된 시스템을 다시 생각한다

고금숙 「망원동 에코하우스」 저자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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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이런 원고를 쓸 때 좀 찔린다. 누군가 터질 듯한 10리터 종량제 봉투를 내놓는 나를 발견할까 봐. 물론 치실만 빼면 모든 1회용품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하해와 같다. 텀블러, 손수건, 젓가락, 스테인리스 빨대, 대나무 칫솔을 싸들고 다니고, 15년간 면생리대와 생리컵을 사용해왔다. 세면대에서 쓴 물을 변기에서 재사용하는 장치를 설치했고, 음식물 쓰레기는 화단에서 퇴비로 만든다.
그럼에도 내가 버린 쓰레기를 보면 소용없다는 자괴감뿐. 여자 셋이 사는 우리 집은 10리터 종량제 봉투를 두 달에 한 번꼴로 버리지만, 재활용품은 셀 수조차 없이 많이 버린다. 특히 플라스틱 포장재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도 연간 3억톤의 어마어마한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된다고 한다. 3억톤은 전 세계 연간 육류 소비량보다 1,500만톤이 많은 양이다. 육류는 소화되지만, 플라스틱은 끊임없이 쌓인다. 플라스틱이 나온 지 100년이 안 됐지만 분해에는 300년 이상 걸린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생을 다한 플라스틱은 없는 셈이다.
이토록 플라스틱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그만큼 물성이 뛰어난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물질이 섬유, 건축자재, 포장재, 담배필터, 태양광 패널, 인공장기 등이 될 수 있을까. 플라스틱은 수요자가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꾼다. 게다가 놀랍도록 싸고 가볍고 단단하다. 대부분의 1회용품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쓰레기 대란’의 와중에 폴리에틸렌을 소화시키는 애벌레라든가, 바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오션 클린업’ 등이 기사로 뜬다. 기술은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 많은 플라스틱을 애벌레가 먹으려면 공장식 농장과 애벌레 ‘대학살’이 발생할 테고, 바다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은 결국 소각하거나 매립해야 한다.
이쯤 되면 “어쩌라고?” 묻게 된다. 요는 ‘쓰레기 대란’은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쓰레기를 만들도록 고안된 망가진 시스템을 함께 봐야 한다는 거다. 쓰고 버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문화에서 개인의 노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페트병에 색을 입히거나 글씨를 직접 인쇄하면 재활용이 힘들다. 요구르트 병에 플라스틱이 아닌 알루미늄 뚜껑을 붙이거나, 유리병에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 라벨을 붙여도 그렇다. 질소 충전만으로 충분한데 받침접시를 사용한 과자는 어떤가. 택배상자는 상품보다 훨씬 크고, ‘뽁뽁이’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며칠 전 한 스위스인이 바나나 한 개가 비닐로 포장된 것을 보며 내게 물었다. “이게 뭐야? 바나나는 이미 껍질로 싸여 있잖아.” 생전 처음으로 한국 편의점에서 봤다고 한다.
생산과 유통 단계부터 불필요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만들고, 1회용품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물질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생산돼야 한다. 유통업체는 입점업체에 포장재 저감 기준을 제시하고 준수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미국 월마트는 포장용기를 5% 줄이겠다며 기준을 제시했고, 영국 슈퍼마켓 체인인 아이슬란드는 2023년까지 ‘플라스틱 없는’ 매대를 만든단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세계, 멋지지 않은가.
이를 위해서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종량제 봉투 가격 인상, 1회용컵과 페트병 보증금제, 예외 없는 비닐봉지 무상제공 금지, 재활용 등급제 공개와 그에 따른 부담금 부과 등이 필요하다. 독일, 덴마크에서 포장재가 거의 100% 수거되고, 스웨덴에서 페트병의 80%가 재활용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다. 높은 보증금제, 탄소세, 분리수거 교육 등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한발 앞서 영국에서는 플라스틱 빨대와 면봉, 물티슈를 금지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삶을 돌보지 못하고 식사, 빨래, 육아 등을 1회용품에 의지하게 만드는 장시간 노동 관행을 바꿔야 한다. 퇴근 후 씻을 시간도 없고 휴일에는 오로지 잠만 자고 싶은 노동 중심의 삶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들 없이는 지탱될 수 없다.
미국 버클리에서는 생수병을 들고 다니는 것이 모피코트를 입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운 일로 여겨진다고 한다. 버클리도 아닌 망원동에서 쓰레기 봉투를 버리며 이토록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 나의 삶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졌다.


첨부파일 이슈-고금숙.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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