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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도 노점상도 “현금 안 받아요”

정경화 조선일보 헬싱키 특파원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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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달아 스웨덴 스톡홀름과 말뫼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지난해 새로 발행됐다는 20크로나짜리 지폐를 구경할 수 있겠다 싶었다. 동화 ‘말괄량이 삐삐’를 좋아하는데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새 지폐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작과는 달리 20크로나 지폐는커녕 동전 한 닢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스웨덴에서는 현금을 인출하거나 환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카드 한 장이면 ‘만사 오케이’였다. 오히려 현금 쓰기가 불편했다. 버스·지하철 표 발매기에는 동전이나 지폐를 집어넣을 구멍이 없었다. 시내 곳곳 상점에 ‘현금 없는 가게(kontantfri butik)’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꽃을 파는 노점상 주인도 휴대용 카드 결제기를 내밀었고 사진 박물관 ‘포토그라피스카’조차 입장료를 현금으로 받지 않는다고 써 붙였다.


스웨덴은 1661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폐를 발행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현금을 안 쓰는 나라가 됐다. 스웨덴 정부는 3년 뒤면 시민들의 현금 사용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톡홀름에서는 2007년부터 버스·지하철 요금을 현금으로 낼 수 없도록 했다. 미리 충전한 교통카드만 사용할 수 있다. 예테보리, 말뫼 등 대도시들이 이를 따르기 시작했다. 식당이나 소매점에서 지불 수단을 카드로 한정하고 손님이 현금을 내밀면 거절할 수 있도록 법도 개정했다. 교회 헌금도 오래전부터 카드 결제기를 이용하는 추세다. 스웨덴 은행들은 한 달 결제금액을 제한한 어린이 대상 직불카드를 발급하는 등 카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덕분에 스웨덴의 2015년 현금 결제비율은 20%로 5년 전(39%)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자연히 금융서비스와 IT 기술을 결합하는 핀테크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특히 기존 카드 결제방식을 보다 간편하게 바꾸는 모바일 지급 결제 분야나 모든 디지털 화폐의 거래내역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는 ‘블록체인’ 기술개발이 활발하다. 스웨덴에서는 모바일 카드 결제 애플리케이션 ‘아이제틀(iZettle)’의 매출액이 지난해에만 30%나 늘었다. 스마트폰과 소형 카드 리더기를 연결하면 어디서나 카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계산대를 갖추기 어려운 소규모 점포나 노점상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스톡홀름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는 “기술 친화적(tech-friendly)인 사회 분위기 덕분에 보다 빨리 ‘현금 없는 사회’로 옮겨가고 있다”며 “스웨덴에 오면 ‘현금 없는 미래’를 미리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현금 없는 사회에 성큼 다가서는 중이다. 노르웨이 최대 은행 DNB는 “전체 인구의 6%만이 일상생활에서 현금을 사용한다”며 “대부분의 은행 지점이 현금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덴마크는 올해 1월 1일부터 화폐 생산을 중단했고 장기적으로는 전자화폐 도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월엔 노숙자도 모바일 결제로 기부를 받을 수 있도록 단스케뱅크와 노숙자연합이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핀란드에서도 현금 사용이 줄면서 현금인출기 숫자가 20년 전 2,500개에서 1,500개로 줄었다. 하지만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 등 새로운 기술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개인의 결제내역이 전자 시스템에 낱낱이 기록되는 것이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부감도 아직 모두 해소되지 않았다. 북유럽 각국 정부는 현금 없는 사회로 완전히 이행하기 위해선 기술개발보다는 정부와 국민 간의 충분한 신뢰를 쌓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첨부파일 NOW-정경화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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