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잡 쇼크 시대 우리는 모두 잠재적 실업자다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2017년 03월호

인쇄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 상용화 이루겠다고 밝힌 정부, 이제 택시 운전은 30년 베테랑 운전기사보다는 정보기술에 밝은 사람의 몫
잡 쇼크 시대, 충격에 잘 버티는 데 그치지 않고 되레 강해질 수 있도록 경제구조와 기업체질, 교육체제 혁명적으로 바꿔야



필자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 「퓨리티(Purity)」에는 남자들이 맥주 한잔하며 농담처럼 지껄이지만 결코 농담으로만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면 결국에는 노동자들의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다. 그 논리는 이렇다.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자본가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지만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지고 소비자들 주머니도 비게 된다. 그러면 자본가들은 더 이상 물건을 팔 수 없게 된다. 계속해서 돈을 벌고 싶으면 백수들에게 돈을 뿌려서라도 물건을 사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제조업 일자리가 마르면 되레 부의 분배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언제 로봇에 일자리를 넘겨줘야 할지 모를 잠재적 실업자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사라지는 일자리
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실업자다. 이렇게 말하면 펄쩍 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공식 통계로 우리나라의 만 15세 이상 인구 4,360만명 중 실업자는 100만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통계는 수입을 얻으려 일주일에 한 시간만 일해도 다 취업자로 본다. 지금도 일을 하지만 더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이들(51만명),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당장은 할 수 없는 이들(4만명), 그리고 한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니지 않았지만 실은 일을 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는 이들(174만명)은 모두 실업자 숫자에서 빠져있다. 따라서 지금 일자리에 목말라하는 이들은 줄잡아 331만명에 이른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일을 하고 있으면서 더 많이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취업자 2,517만명은 안심해도 좋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은 그 누구든 언제든지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잡 쇼크(job shock) 시대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충격은 크게 세 방향에서 한꺼번에 밀어닥친다. 기술, 세계화, 정책이 그것이다.


첫째,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기술이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현실이 되는 시대에는 어떤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 7년 전 구글이 운전자 없이 달리는 자동차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가까운 장래에 실제로 자율주행차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심각하게 걱정한 이는 없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전후좌우를 훤히 내다보며 돌발상황에 대한 반응 시간이 0에 가까운 차, 절대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을 하지 않고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하지도 않는 차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도로를 차지할 것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트럭과 택시를 모는 일은 30년 베테랑 운전기사보다는 정보기술에 밝은 사람의 몫으로 바뀔 것이다.


첨단기술산업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일자리 해갈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산업이자 한 해 600억달러 넘게 수출하는 효자 산업인 반도체는 올해 상반기 인력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고작 1천명(0.8%) 늘리는 데 그칠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래의 스마트공장에는 종업원이 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개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 한 명과 그가 함부로 기계를 만지지 못하도록 지키는 개 한 마리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때가 당장 눈앞에 닥치지는 않더라도 우리나라 제조업 일자리 440만개 중 상당 부분은 급격한 기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온갖 지대(rent) 추구 용인하는 정책·제도가 일자리 창출 가로막아
둘째, 세계화의 급류는 그 물결을 잘 타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파괴하기 쉽다. 지난 30년 동안 세계화의 절정기에 가장 큰 혜택을 본 이들은 중국의 공장 노동자와 같은 글로벌 신흥중산층이었다. 이에 비해 선진국의 중하위 계층은 신흥국의 젊고 값싼 노동력에 밀려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압축성장을 이룬 우리는 이제 선진국 문턱에 와있다. 이는 곧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경쟁 압력을 가장 많이 받는 위치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조선산업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올해 상반기에 조선업 근로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만7천명(15%)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의 군소 조선소 노동자들은 따개비 같은 것들이 배에 들러붙지 않도록 하는 방오페인트를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칠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촌의 온갖 장벽이 무너진 시대에 이와 같은 저부가가치 일자리를 지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피즘(미국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의 시대에도 세계화의 본질적인 경쟁 압력은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셋째, 온갖 지대(rent) 추구를 용인하거나 강화하는 정책과 제도는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를 더욱 말라붙게 한다.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불평등하고 경직적인 노동시장,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붕어빵 인재만 양산하는 공장식 교육체제, 부가가치가 높은 혁신적 서비스를 가로막는 온갖 규제 장벽들이 그것이다.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일자리 창출을 막는 장벽들을 무너뜨리기만 해도 한국 경제와 사회는 훨씬 더 역동적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 실업자인 잡 쇼크 시대를 살아가려면 개인과 기업,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하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모든 경직적인 것들은 충격에 약하다. 단순히 충격에 잘 버티거나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충격을 받으면 되레 강해질 수 있도록 경제구조와 기업체질, 교육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첨부파일 특집- 장경덕.pdf

e-Book

이달의 인기기사

  1. 1 구글은 검색, 페이스북은 SNS…기저 플랫폼 중심으로 디지털 변혁 주도
  2. 2 P2P금융 선두주자 8퍼센트, 세상에서 가장 쉬운 중수익 투자상품 만들 것
  3. 3 압도적 양적 비중 이면에 ‘과도함’, ‘질적 미흡’ 등 과제 산재
  4. 4 권한배분과 성과 공유로 종업원이 춤추게 만들어야
  5. 5 규제영향평가제도 집행력 높일 정책 대안 마련을

역대 인기기사

  1. 1 금연구역 확대
  2. 2 기축통화 패권의 폭력
  3. 3 애그플레이션, 진원지는 어디인가?
  4. 4 ‘산업의 허리’ 중견기업 3천개 키운다
  5. 5 부동산시장 정상화, 근본적인 해법은?

Column

  • 나라경제 페이스북
  • 단행본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