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살던 곳에서 활기차게 늙어가고 싶은 노인들을 위한 도시

안현찬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2017년 07월호

인쇄



고령친화도시 어떤 모습일까…노인 신체기능에 맞춘 주택 설계, 기존 주거복지·요양서비스 발전, 노인에 대한 존중과 포용
‘지역사회에서 늙어가기’ 개념 등장…정책의 초점을 주거에서 사회적 관계로 옮기고 지역공동체, 이웃들과의 교류와 협력 강조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노인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대를 맞고 있다. 2007년 선진국들은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었고, 세계 도시화율은 50%를 넘어섰다. 2050년이면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율은 22%, 도시화율은 66.4%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 2026년에 초고령국가가 되고 도시화율도 85%에 다다른다.


하지만 노인이 돼서도 살기 좋은 도시는 드물다. 신체기능과 사회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청장년층을 전제로 도시를 만들고 발전시켜온 까닭이다.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신체적·사회적 변화를 고려해 도시환경을 다각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삶의 질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2007년부터 국제보건기구(WHO) 주도 아래 세계 여러 도시가 동참하고 있는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 City)’의 목표다. 이 글은 고령친화도시 개념의 등장 앞뒤로 고령화에 대한 사회적 접근과 실천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노인 돌봄: 가족에서 사회복지, 다시 살던 곳으로

전근대사회에서 노인을 돌본 건 가족이었다. 평균수명이 짧고 식구가 많았던 때에는 가족이 노인을 부양하는 게 가능했다. 노인에게 가족은 일생을 함께 살아온 사람과 공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심리적으로 안락하고 맞춤한 돌봄 속에서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가족 돌봄의 전제조건이 통째로 흔들렸다. 영양, 위생, 의료가 발전하면서 평균 수명은 크게 늘었지만 노후의 많은 시간 동안 만성질환을 겪게 됐다. 돌봄 기간과 부담은 늘어난 반면 대가족은 해체됐고,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다. 가족의 공백을 메운 건 사회복지였다. 사회복지가 선택한 제도적 방법은 ‘시설요양’이었다. 요양병원과 양로원을 대거 설립하고 노인들을 이곳으로 재배치해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극빈층 노인 구휼 차원에서 시작한 시설요양은 공적 투자 확대, 시설과 서비스 개선, 중상류층을 위한 고급시설의 등장으로 오늘날 선진국에서 노인들을 체계적이고 적절하게 보호하는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요양원에 가길 원하는 노인은 드물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어도 그곳은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에게 오랜 시간 자기만의 생활방식과 신체 변화에 맞춰 최적화한 자신의 집은 아툴 가완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밝혔듯 “삶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편안함을 주는 유일한 장소”인 것이다. 하지만 공동생활 규칙과 의료인의 간섭이 존재하는 요양시설에선 자기주도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는 것만이 결코 노년의 목적일 순 없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독립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2014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74.2%는 자신의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노인들의 욕구를 개념화한 것이 WHO의 ‘살던 곳에서 활기차게 늙어가기(Active Aging in Place)’다. 신체기능이 약해졌다고 해서 시설에 입소해 수동적으로 보호받는 게 아니라 살던 곳에서 가능한 한 오래 건강하고 능동적으로 생활하는 노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노인들이 계속 살기를 원하는 자기 집과 동네라는 도시환경을 활기찬 생활이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고령친화도시는 이러한 과제를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자는 WHO의 선언과 다름없었다.


WHO는 고령친화도시를 만드는 방안으로 8가지 영역에 따른 70개 항목을 제시했다. 이 내용은 33개 도시에서 1,485명의 노인들, 거동이 힘든 노인을 대변할 740명의 서비스 제공자들이 직접 참여해 상향적으로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고령친화도시를 위한 8대 영역은 야외공간과 건물, 교통, 주거, 사회참여, 존중과 사회적 포용, 시민참여와 고용, 소통과 정보, 지역사회 지원과 보건서비스다. 이 영역들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고령친화도시가 과연 어떤 곳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WHO, 33개 도시의 노인 등이 직접 참여한 고령친화도시 방안 제시
첫째, 보건복지 중심의 기존 고령화 정책에는 부족했던 도시의 물리적 환경 개선을 중요하게 다뤘다. 야외공간과 건물, 교통, 주거를 8대 영역의 맨 앞에 세웠고, 해당 항목도 총 36개나 된다. 여기에는 무장애 디자인의 적용, 공공시설과 대중교통 접근성 향상, 노인의 신체기능에 맞춘 주택 설계와 수리 등 당시에는 혁신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둘째, 보건·복지 서비스도 고령친화도시에 맞춰 수정하고 발전시켰다. 예컨대 고령친화주택은 일반주택보다 당연히 비쌀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집이 좋아져도 요리, 목욕, 복약 등 생활 및 건강 관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공공임대 고령친화주택, 홈케어서비스 등은 이런 점을 고려해 기존 주거복지, 요양서비스를 발전시킨 항목들이다.


셋째, 노인에 대한 존중과 포용을 포함하고 있다. 좋은 도시환경을 완성하는 것은 노인과 함께 살아가는, 노인의 주도적 삶을 돕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인식과 태도일 것이다. 관련 항목으로 노인에 대한 적대, 배제, 동정을 지양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노인 고객과 운전자를 배려하자는 섬세한 것까지 제시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존중은 노인이 가족과 지역사회 안에서 잉여가 아닌 제 위치를 갖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고령친화도시에도 부족함은 있었다. 시설요양의 문제점에서 출발한 탓에 개별 주택 중심의 접근이 강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집보다는 크고 도시 전체보다는 작은, 노인들의 일상생활 범위인 ‘지역사회(neighborhood)’를 개선하는 구체적인 전략은 부재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시설요양에 비해 사회적 비용은 절감되지만, 노인 개개인의 서비스 구매 비용은 늘어나 형편에 따른 격차와 배제가 생길 우려가 있었다.


2009년 미국 노인학자인 윌리엄 토마스는 ‘지역사회에서 늙어가기(Aging in Community)’라는 개념과 함께 정책의 초점을 주거에서 사회적 관계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활기찬 노년은 지역공동체, 즉 다양한 이웃들과의 교류와 협력 속에서 진정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사회적 자본 측면에서 이전 정책들보다 지속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정부와 개인의 경제적 자본과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을 함께 활용하고 실천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을 늘리기도 해서 경제적 자본의 부족과 격차를 효과적으로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지역사회에서 늙어가기’ 개념이 고령친화도시의 실천에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국제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GNAFC)’에 가입한 도시 중 가장 앞서가는 뉴욕은 5개 구(borough)의 13개 지역사회가 자체 실천계획을 세워 이행하고 있다. 2013년 국내 최초로 회원 도시가 된 서울시는 지난해 수립한 ‘고령친화도시 2기 실행계획(서울어르신종합계획)’에 따라 지역사회 단위의 실행 모델인 ‘고령친화마을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시민들의 참여에 힘입어 노인을 위한 도시의 실현을 앞당기길 기대한다.

첨부파일 특집-안현찬.pdf

e-Book

이달의 인기기사

  1. 1 철가방 음식 주문은 옛말···배달의 민족이 만들어가는 ‘푸드테크’ 혁신
  2. 2 미친 집값의 시대와 초강력 부동산 대책
  3. 3 자아실현
  4. 4 분배·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는 사람 중심의 지속성장 경제 구현
  5. 5 나는 사실 욜로족이 아닙니다

역대 인기기사

  1. 1 금연구역 확대
  2. 2 기축통화 패권의 폭력
  3. 3 애그플레이션, 진원지는 어디인가?
  4. 4 ‘산업의 허리’ 중견기업 3천개 키운다
  5. 5 부동산시장 정상화, 근본적인 해법은?

Column

  • 나라경제 페이스북
  • 단행본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