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IMF의 재정긴축과 고금리 처방은 잘못…4차 산업혁명과 서비스업에서 성장동력 찾아야”

허경욱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2017년 11월호

인쇄



“당시엔 외환보유고와 단기외화차입비를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아.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위기였다.”
“단기에 끝냈어야 할 고금리 정책 4~5달 가까이 진행되면서 건실한 기업마저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부도 속출”
“규제자유화를 외치는데 몇 년째‘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회에 발이 묶여…혁신을 말하면서 기존의 틀을 바꾸는 것은 두려워해”


1997년 태국으로부터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가 어느덧 20년을 맞았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의 부도부터 1997년 12월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까지 긴박했던 순간들을 당시 재정경제원 특별대책반 반장이었던 허경욱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만나 들어봤다.


시아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을 짚어본다면?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외화차입을 너무 많이 했고 그 외화차입을 갚을 능력이 없었던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물론 자본이 고스란히 부동산에 투입된 태국과는 달리 우리는 자동차를 비롯한 제철, 석유화학 등에서 투자가 이뤄졌지만 문제는 과잉 중복투자였다. 1990년대 이후를 보면 재벌들의 생산성은 계속 떨어져 마이너스까지 간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사람들의 심리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결국 곪았던 환부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중복투자를 막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


‘대마불사’라고 불리던 재벌기업들이 1997년 연초부터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무너지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 당시 재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1월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3월부터 6월까지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등이 줄줄이 사라지면서 불안한 행보가 이어지더니 7월 15일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마저 그룹이 부도를 내고 부도유예협약(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대기업들이 금융기관들의 자금회수 공세로 연쇄부도가 발생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제도)에 들어갔다. 부도유예협약은 한보 사태로 놀란 재정경제원이 4월 금융기관들을 모아 체결한 일종의 안전판이다. 경쟁적 대출회수가 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자율규제 형태로 2개월 동안 채권상환 의무를 면제해 부도 시기를 뒤로 미룰 수 있게 했다. 기억이 날지 모르겠지만 당시 기아차는 특정 대주주가 없는 분산된 지분구조와 전문경영인 체제, 종업원지주제 등 겉보기에는 선진 경영제도를 시행하고 있었고, 국민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당시 신문을 보면 ‘국민기업 기아차는 절대 죽이면 안 된다’라는 자극적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국민정서와 대선을 앞두고 빚어진 정치적 이해타산, 동정여론 등이 맞물리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어정쩡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국가신인도가 크게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쯤인가?
기아차 처리가 너무 미숙했다. 9월 22일 홍콩에서 열린 IMF 총회에서 당시 엄낙용 재정경제원 차관이 대한민국 정부가 반드시 모든 걸 갚겠다고 외국투자가들에게 대외적으로 확약을 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법률적으로는 아니지만 일종의 보증을 선 것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 전격적으로 기아차가 주력 계열사 4개사에 대해 법원에 화의(和議)를 신청하면서 다시 분위기가 뒤집어졌다. 부도유예협약 조건으로 노조가 구조조정에 동의하고 김선홍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사항을 모두 뒤집었다.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외신들이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국가신인도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1997년 11월 우리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나?
11월 13일 관계기관 회의 직후 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경제수석이 IMF로부터의 금융지원 협의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11월 24일 IMF 실무협의단이 방한해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금융시장 불안이 종금사와 은행, 외환시장 등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1~12월 사이에만 신용등급을 3~4번 강등시켰다. 신용등급은 계속 나빠지고 외화는 채워지기가 무섭게 빠져나갔다. 그러다 보니 신용등급은 더 나빠지고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때만 해도 우리가 IMF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일부 경제부처 사람들 말고는 사실상 잘 몰랐다. 재벌들이 무너지고 은행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환율은 치솟고 주식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무엇인지 인식했다.


심각한 사태였는데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1996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6.7%였다. 그 전에는 보통 7~8% 정도를 유지했다. 외국투자가가 “혹시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성장률이 높고 재정수지가 건전한데 무슨 위기냐”고 반문했다.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녔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문제는 단기외화차입이 초과되면서 생긴 것인데 당시엔 외환보유고와 단기외화차입비를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위기였다.


1997년 12월 3일 당시 캉드쉬 IMF 총재와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했다. 사람들은 경제주권을 상실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흔히 IMF를 떠올리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IMF 외환위기’라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맞다. 분명히 IMF가 오기 전에 불이 났고, 그 불을 끄기 위해 IMF가 왔는데 욕도 먹고 심지어 위기의 원흉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물론 IMF가 내건 구제금융의 조건이 상당히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고금리 정책, 재벌체제 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시장 개방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가 양산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IMF가 타깃이 된 것이다. IMF로서는 사실 억울한 측면이 있다.


IMF와의 협상에 성공해 외환시장이 급속히 안정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오히려 위기가 더 커졌다. 한국이 IMF 관리체제에서 국가 부도가 나는 첫 케이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쏟아졌다.
IMF로부터 자금이 들어오자 모든 채권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돈을 빼가기 시작했다. 한국이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니 일단은 서로 먼저 자금을 회수하려는 런(run)이 발생한 거다. 12월 5일 고려증권, 12월 6일에는 한라그룹이 부도 처리됐다. 계속되는 기업 부도와 금융권 부도에 경제시스템이 마비됐다. 12월 18일에는 외환보유고가 40억달러도 안 남아 국가 부도가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반전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12월 18일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IMF 협약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면서 미국 재무부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월가의 주요 은행 회장들과 유럽의 주요 재무장관들에게 한국에서의 자금인출을 자제하고 만기를 연장해주도록 요청한 것이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뤄져 크리스마스 패키지(IMF 플러스 협상)라고 불린다. 일제히 자금회수를 멈추고 IMF가 100억달러 조기 자금지원까지 약속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성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IMF의 조치가 가혹했다는 평가도 많다.
지난 10월 17일 한국을 방문한 휴버트 나이스 전 IMF 아태국장을 세계지식포럼에서 만났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고금리 정책과 재정긴축,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정책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당시를 회고하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재정긴축과 고금리 정책에 대해선 잘못된 부분이었다고 인정하더라. 특히 재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었는데 재정긴축이라는 처방을 내린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고금리 역시 의도한 이점은 사라지고 불안심리만 자극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일대 혼란과 위기에 휩싸였다. 연 이율 20~30%의 금리를 감당하면서 살아남을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실기업이 파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충분히 살 수 있는 기업들마저 고금리와 높은 차입비용에 따른 유동성 부족으로 부도가 났다. 건실한 기업이 일시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더구나 고금리 정책은 단기에 그쳐야 했는데 4~5달 가까이 진행되면서 기업 부도가 속출했다.


한국은 20년 전 외환위기를 겪은 뒤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어왔다. 최근에는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에도 성공했다.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은 현재 미국, 일본과의 통화스와프가 모두 종료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다행스럽다. 물론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현재 굉장히 건전하고, 문제가 되는 이른바 단기외화차입의 전체 외환보유고 비중도 30% 이하다. 1차 방어선인 외환보유고와 단기외화차입은 전혀 문제가 없다. 2차 방어선으로 최근 중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와 체결한 통화스와프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기금(CMIM)이 있고 마지막 3차 방어선이 IMF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사시 엄격한 구조조정 없이 빌릴 수 있는 통화스와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지금의 한국경제 상황은 어떤가?
경쟁력이 꾸준히 저하되고 있어 걱정이다. 특히 인구감소가 치명적이다. 노동인구의 감소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자본은 이미 많이 축적된 상황이라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이제는 노동마저 계속 떨어지게 생겼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상황이 반도체 호황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반도체 호경기가 꺾이면서 문제가 터졌다. 위기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 흐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4차 산업혁명이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에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이 둘은 별개가 아니고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룰 것이다. 관건은 혁신과 규제 자유화가 얼마나 빨리 진행될 수 있느냐다. 규제자유화를 외치는데 몇 년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고 혁신을 말하면서 기존의 틀을 바꾸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개방은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그 과정에서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경제에 주어진 기본속성이다. 절대 국내에 안주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개방했다고 모두 성공하진 않지만 개방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 권기대 나라경제 기자

첨부파일 특집-허경욱.pdf

e-Book

이달의 인기기사

  1. 1 주당 68→52시간 되는 데 20년 가까이 걸려
  2. 2 여심 훔치는 모바일 동대문시장 ‘지그재그’
  3. 3 ‘면제’, 그러나…반덤핑· 상계관세 강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4. 4 2018년, 글로벌 무역전쟁의 원년 될까?
  5. 5 자발적 초과근무도 위법…휴일 근로수당은 현행 유지
  6. 6 지금, 당신이 사려는 제품의 가격이 바뀌었습니다
  7. 7 밑그림은 그려졌다 속도가 문제일 뿐
  8. 8 개인 중심의 건강관리 시대 열린다
  9. 9 제소 기업의 요구 거의 그대로 수용···다툼 여지 남겨
  10. 10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 단축…정시퇴근, 유연근무 등 고용문화도 혁신

Column

  • 나라경제 페이스북
  • 단행본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