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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명의 시작은 시험혁명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장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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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넣는 지식만 측정하는 것을 넘어 꺼내는 역량을 길러야 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전문가의 활동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활동을 강요한다. 한국의 학생들은 옥스퍼드 영문과생도 알 수 없는 영어시험을 공부하고, 서울대의 관련 전공 교수도 제한된 시간 내에 절반도 풀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수학시험을 본다.
그런데도 아무도 교육 ‘내용의 방향’은 말하지 않는다. 알파고가 더 이상 인간과의 바둑 대결이 의미 없음을 선언한 마당에, 인공지능에 백전백패할 공부에만 전력 질주하는 우리 교육에 대해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등 여러 정책이 나와도 누구 하나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수능과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어도, 고교학점제가 다 이뤄져도, 평가되는 시험문제가 동일하면 아이들은 같은 종류의 문제집을 풀 것이고 기존과 같은 능력만 기를 것이며, 결국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우리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 교육재건→인재재건→경제재건 전략···공교육에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일 때도 모두가 국정교과서는 악이고 검인정교과서는 선인 것처럼 부르짖었다. 마치 국정교과서는 획일적 주입식 교육의 표상이고 검인정교과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의 상징처럼 프레임화됐다. 그때도 아무도 교육 ‘내용의 방향’을 말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가 문제였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검인정교과서로 배운들, 학생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여러 개의 검인정교과서를 동시에 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선택한 하나의 교과서만 배울 뿐이고, 어느 교과서를 선택하든 그저 교과서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게 암기하고 시험을 본다. 검인정이라 한들 획일화된 주입식은 마찬가지다.
일본은 구한말 근대화의 물결을 먼저 읽고 발 빠르게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지난 한 세기 이상 아시아를 선점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간파하고 또다시 발 빠르게 ‘신메이지 유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교육혁명이 핵심이다. 2013년에 2020년 수능폐지를 선언했고 국제바칼로레아(IB) 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기로 선언했다. 이 결정이 교육부(문부과학성) 차원이 아닌 국무회의(각의) 결정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문부과학성이 어떻게 그리 발 빠르게 움직였나 보니 사실은 아베의 의지였단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두 번째 집권을 한 직후인 2013년에 문부과학성 장관인 시모무라 대신을 통해 교육재건으로 인재를 재건하고 이를 통해 경제를 재건해 궁극적으로 일본을 재건하겠다는 교육혁명을 선언했다. 요즘 일자리가 넘치고 잃어버린 20년의 무기력증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일본에 대한 뉴스들을 보면서 집권 직후부터 4차 산업혁명을 향해 추진해온 ‘교육재건→인재재건→경제재건’ 전략 프레임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일본의 문부과학성 관계자들은 연간 수천만원의 학비를 내야 하는 국제학교에서나 받을 수 있었던 이 우수한 교육과정을 국가가 나서서 공립학교 학생들이 무료로 교육받게 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경제격차가 교육격차로 귀결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신념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나라의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절박함이 교육혁명의 서막을 올리게 했다 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방향에는 공감해도 회의적인 한국
세상이 이럴진대, 우리나라의 교육정책 관련 토론회에 가보면 참으로 놀랍다. 아무도 ‘교육’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종류의 능력을 기르고 있는지, 어떤 종류의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지, 그런 능력의 인재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절한지, 이러한 교육의 진짜 ‘방향’에 대한 논의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무슨 종류의 교육이 되든 간에 그걸 얼마나 싸게 하는지(무상, 반값 등), 얼마나 공평하게 하는지만 관심이 있거나, 교육부와 교육청의 권한과 업무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방향 자체가 틀리면 누가 하든 얼마나 싸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토론자들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거의 동의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회의적이라고 주저한다.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채점의 객관성, 공평성이라는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에 맞물린 정유라 부정입학 사태에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가 닥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시점의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능력을 기를지에 관한 근본적인 논의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객관적이고 공평한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대입 시험문제만 살펴봐도 그 나라가 추구하는 인재상이 보인다. 교육정책 결정자들은 IB를 비롯해 영국의 에이레벨, 독일의 아비투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등의 시험문제를 펼쳐놓고 비교해보기 바란다. 각 시험문제가 무슨 능력을 측정하고 있는지 비교해보고, 우리나라 시험(수능·내신)이 얼마나 시대에 뒤처진 능력에 점수를 주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기 바란다. 시대의 변화를 먼저 정확히 읽고, 그에 대비하려면 무슨 종류의 시험으로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하는지 방향을 정하고, 그 다음에 그에 맞는 평가제도를 정하는 게 순서다. 
사람은 평가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시험이 바뀌면 공부법, 교수법, 교육과정, 교육제도가 모두 바뀐다. 시험혁명은 하나를 건드려 다른 모든 것을 도미노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 킹핀이다. 그래서 우리 교육혁명의 시작은 시험혁명부터다. 집어넣는 교육이 아닌 꺼내는 교육을 해야만 진학에 유리하도록 평가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수업과 각종 제도, 교육청과 교육부의 관리감독 구조까지 다 변해야 한다. 현 정부의 공약인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2015 교육과정을 제대로 구현하려 해도 평가혁명이 불가피하다. 수많은 포럼, 학회 등에서 국내외 저명인사들이 전하는 일관된 메시지도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교육당국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구한말처럼 개혁을 또 실기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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