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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소 기업의 요구 거의 그대로 수용···다툼 여지 남겨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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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통상압박의 파고가 나날이 높아지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의 대미 수출 역시 다양한 무역장벽에 막혀 고전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승인한 세탁기와 태양광 관련 긴급수입제한, 이른바 세이프가드(safeguard) 조치는 그동안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높여온 한국 제품에 상당한 부담을 줄 전망이다. 다만 그 영향의 크기는 미국 기업들과의 경쟁관계, 현지 생산설비 보유 여부, 현지 가격동향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美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회복을 목표로 통상압력 · 세제개편 이용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산업이나 기업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될 때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발동하는 잠정적인 수입제한 조치다. 대부분의 나라가 국내법에 관련 조항을 갖고 있으며, 대개 해당 제품 수입에 추가 관세나 할당량(quota)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각국의 경제주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세계무역기구(WTO)도 허용하고 있다. 단, 무역장벽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동 조건은 엄격히 제한한다.
세이프가드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합법적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난 1월 미국의 결정은 몇 가지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를 남겼다. 먼저, 미국 무역대표부가 제소 기업의 요구와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무역법 201조의 ‘불리한 가용 정보(AFA; Adverse Facts Available)’ 규정에 근거해 피소 기업들이 관련 주장이 틀렸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하면 당국의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즉 세탁기나 태양광 관련 제품 수입 증가가 해당 기업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켰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 수입 증가와의 인과관계 등이 객관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대상국에 대한 피해 보상 노력도 부족했다. 세이프가드는 ‘공정한 행위에 대한 긴급한 처방’이므로 해당 조치로 피해를 입은 국가의 무고한 피해를 보상한다는 차원에서 다른 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를 요구하거나 시행국 수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등의 구제조치를 허용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철회 및 보상 요구를 거부한 데 이어 EU가 태양광 세이프가드의 피해 보상을 위해 제안한 쿼터 할당, 최소 수입가격 등도 모두 거부했다. EU의 보복관세 언급에는 ‘호혜세’ 도입 거론으로 맞섰다.
미 정부는 세이프가드 외에도 국가안보를 앞세운 철강 및 알루미늄 고율관세 부과(무역확장법 232조),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를 이유로 선언한 대중 600억달러 관세 부과(무역법 301조)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통상압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무역제재 조치들을 서둘러 쏟아내는 이면에는 경제 논리 외에 11월 중간선거 패배를 막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3월 공화당 텃밭이라 할 수 있는 피츠버그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 패배가 백악관과 공화당의 위기의식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세이프가드를 비롯한 미국 통상정책의 향방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정부가 미국 유권자들에게 어떤 모습의 미국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무역·통상 관련 결정들과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년간 추진해온 환율조작국 지정 압박, 세제개편 등의 정책들은 일관되게 미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회복을 목표로 한다. 즉 기술력과 생산성 등에서 크게 앞서는 미국 기업들이 외환시장이나 무역·통상, 세제 등의 ‘왜곡’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지고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만큼 통상압력이나 세제개편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면 미국경제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선거 승리를 목표로 하는 만큼 달성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에 관한 논란은 부차적인 문제다.
세탁기 및 태양광 사업이 미국경제에서 갖는 의미도 중요하다. 이 두 부문의 국내외 가치사슬이나 다른 나라들과의 생산분업 구조, 전후방산업 연관효과 등을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세탁기는 그 제품 자체의 시장규모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모터, 센서 등 관련 기술의 집합체라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태양광 패널의 경우 관련 표준이나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미중 간 갈등 봉합돼도 세계경제 성장엔 ‘부정적’
미국의 대외전략 방향도 중요한 변수다. 대중관계가 대표적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에 비춰보면 목표는 분명하다. 미국이 직면한 대규모 무역불균형, 특히 경쟁질서 왜곡으로 발생한 ‘불공정한 적자’를 더는 묵인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이를 위해 미국 무역적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을 ‘손봐주는’ 중이다.
미중 간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등 다양한 측면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이번 무역충돌 역시 트럼프 정부 출범 직후였던 지난해 초의 힘겨루기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전면 맞대응하기보다는 ‘명분과 체면’을 살리는 수준에서 미국이 만족할 만한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율적인 지식재산권 준수, 공급과잉 해소 등을 비롯해 1천억달러 규모의 무역적자 개선 패키지, 미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업종 제한 면제 등 중국이 제공할 수 있는 카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간 갈등이 봉합된다 해도 이 같은 인위적인 무역장벽과 시장 개입은 글로벌 교역의 위축과 미국 외 지역으로의 공급과잉 악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세계경제 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과 긴밀한 생산분업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만일 양국 간 합의가 이행됐음에도 무역불균형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한동안 미국은 중국을 향한 통상압력을 재개하고, 중국은 더 많은 양보안을 제시하는 과정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 중국 지도부의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오면 전면적인 무역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첨부파일 특집-김형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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