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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리스크로 전락한 재벌 3세…반복되는 갑질로 기업 이미지 훼손

최민영 경향신문 산업부 차장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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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에서 ‘재벌 3세’는 ‘오너 리스크’와 사실상 동의어로 통한다. 책임감이 결여된 특권의식과 탈법적인 안하무인의 행각이 사회 문제가 되며 기업에 곧장 타격을 입히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오너의 후손들이 오로지 혈연을 이유로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기업 경영을 도맡는 관행도 더 이상 인정되기 어려운 시대다. 이 같은 총수 일가의 ‘기업 사유화’ 악습은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물론 주주의 이익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긴 시간 경험 쌓지 않고 임원 승진, 조직 생활의 이해· 성숙도 떨어져
한진그룹은 3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지난 4월 알려진 것을 계기로 현재 쓰나미를 맞고 있다.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일가가 검경 및 관세청·국토교통부 등 여러 부처의 전방위 조사를 받고 있으며 각종 혐의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을의 반란’으로 불리는 대한항공 직원들의 내부고발을 통해 조현아·조현민 자매의 탈세·밀수 혐의 등도 폭로됐다. 업계 관계자는 “품성도 능력인데 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치명상을 입었다”면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 관련 집행유예가 끝나기도 전에 칼호텔 사장으로 경영복귀를 한 것으로 볼 때 3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나 문제의식이 부재하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재벌 3세들의 갑질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동선 한화건설 전 팀장은 2010년 서울 용산구 한 주점에서 종업원을 폭행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난해 9월에도 만취상태에서 또다시 폭행사건을 벌여 물의를 빚었다.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장남인 장선익 이사는 지난 2016년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폭행·폭언을 해 사회 문제가 되자 사죄한 바 있다. 현대가 3세인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의 경우 2016년 수행기사에게 A4 140장에 달하는 매뉴얼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실수할 경우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이 같은 일이 왜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오너 3세의 경우 현장에서 긴 시간 경험을 쌓지 않고 임원으로 승진하기 때문에 조직 생활에 대한 이해나 성숙도가 떨어진다”며 “부모에게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도 문제행동의 한 원인일 것”이라고 이유를 짚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 차원에서 평소 사회공헌사업에 힘을 쏟고 브랜드 이미지를 가꾼다고 해도 ‘3세 사건’ 한 방에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진정성도 의심받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갑질 논란은 기업 가치 추락으로도 이어진다. 2010년 이윤재 회장이 청부폭행 사건을 일으킨 피죤은 2009년 1,600억원대였던 매출액이 2014년 700억원대로 추락한 이래 예전의 시장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김만식 회장의 갑질 논란을 겪은 몽고간장은 이듬해 매출부진이 이어지며 점유율 10%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때 토종 업체로 국내 피자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미스터피자는 2016년 정우현 MP그룹 회장의 경비원 폭행 사건에 이어 치즈통행세 등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업에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가맹점 수는 전년 대비 11.85% 감소하며 업계 1위 자리를 내줬고 결국 정 회장은 올해 국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는 갑질 파문이 발생한 기업에 대해 소비자들이 대체재를 선택하며 불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보편화로 소비자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신념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를 지향하고 있는데, 갑질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특히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며 과거에는 기업 내부에서 쉬쉬하며 묻힐 뻔한 사건들이 생생하게 고발되고 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직원에게 막말을 퍼붓는 현장을 녹취한 오디오파일,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호텔 공사장에서 여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파일 등은 모두 스마트폰이 있었기에 보도될 수 있었다. 요즘 같은 투명사회에서는 부패나 권력남용은 숨기기 어렵고, 일단 드러나면 모바일을 통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간 오너 일가의 갑질을 숨죽여 참던 대한항공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조씨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오프라인 집회를 지속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것도 모바일의 힘으로 볼 수 있다.


기업 소유와 경영 분리되지 않는 한국 기업문화…‘갑질’, 앞으로도 발생 가능성 상존
물론 모든 재벌 3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20일 작고한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창업주의 손자로 ‘인화(人和)경영’을 바탕으로 23년간 LG그룹을 이끌면서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사업을 육성했다는 세간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 봉건적인 한국 기업문화에서는 갑질 문제가 앞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 같은 문제를 안은 기업들은 대체로 외부에서 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좀처럼 ‘제 머리를 깎지’ 못한다. 한진그룹의 경우 1999년 잇따른 인명사고 책임론이 고조되고 탈루소득이 적발되면서 조씨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적이 있었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늘어난 것이라곤 갑질의 역사뿐이다.
이에 기업들을 견제할 수 있는 외부장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가 기업집단의 재무구조를 평가할 때 경영진의 사회적 물의 야기, 시장질서 문란 행위 같은 정성평가를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총수일가든 전문경영인이든 기업 경영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업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3세 경영인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요 의사결정자가 됐다고 보는 일반적 시각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특히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첨부파일 특집-최민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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