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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수업보다 ‘사람 만드는’ 전인교육이 먼저다

이기준 중앙일보플러스 포브스코리아 기자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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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家業)은 마라톤이다. 일반 기업에 비해 매년 치러지는 실적평가나 주주의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그만큼 먼 곳을 바라보며 뛸 수 있지만,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뛰기도 십상이다. 이를 방지해주는 것이 가족 사이에 공유된 가치와 문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문화가 축적되면 멀리 보며 오래 뛴다는 가족기업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다.
이 같은 가족기업에서 후계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뛰어난 판단력과 경영능력을 꼽을 수도 있겠지만 세계 굴지의 가족기업들이 후계자 교육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원만하고 안정된 심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가족의 문화와 가치를 이해하고 온전히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 이들 기업에서 후계자 교육의 첫째 과제였다.


창업 153년 맞이한 카길, 안정된 심성 기르고 미래의 지도자 가려내기 위해 전인교육 실시
미국 식료품 전문업체 카길(Cargill)은 2017년 매출 1,100억달러(11조6,820억원)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족기업이다. 카길 가문이 지분의 90%를 쥐고 있다. 올해로 창업 153주년을 맞이한 카길은 2003년부터 가족관계·교육사업부를 신설하고 가족 구성원의 교육제도를 체계화했다. 가족 구성원 8명과 가족자산관리사인 웨이크로스의 CEO로 구성된 이 부서는 후계 경영인을 육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부서는 다음 세대에 전인교육(holistic education)을 실시하고 가족 구성원 간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카길 측이 공개한 이 사업부의 목표는 크게 다섯 가지다. 원만하고 안정된 심성을 기르는 것, 각자가 추구하는 바를 이루도록 지원하는 것, 효과적인 주주가 되도록 돕는 것, 미래의 지도자를 가려내는 것, 그리고 카길 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카길의 후대교육은 집단교육과 개인교육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집단교육 프로그램으로는 하계 가족모임, 공장 견학, 주주총회 참석, 가족 태스크포스 참여, 스터디그룹 등이 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하계 가족모임에서 교육생은 카길의 각종 사업부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공장 시설을 방문하는 등의 경험을 쌓는다. 18세부터는 2년마다 개최되는 주주총회에 참석할 자격을 얻는다. 개인교육 프로그램엔 심리검사, 인생상담, 인턴십, 외부강연 참여, 비영리 이사직, 봉사활동 등이 포함된다. 
웨이크로스에서 카길의 교육사업을 담당하는 조앤 켐프마이어는 “카길의 가족 구성원들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를 더 친숙하게 여기게 되는 동시에 서로 간에 친분도 두터워지는 효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켐프마이어는 차세대 지도자를 교육하려는 가족기업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설명했다.
첫째로 지금 당장 시작할 것, 둘째로 전인교육을 실시할 것,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자 수업에 앞서 먼저 성격이 원만하고 정서가 안정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원칙이다.


어린 자녀 세대 교육에 중점, 여름캠프로 가문의 역사와 문화 익히는 레어드노튼
7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 투자사 레어드노튼(Laird Norton)도 교육을 통한 가족 가치의 공유와 가족 구성원 간의 연결고리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레어드노튼은 후대교육을 위해 레어드노튼 대학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선대 경영진은 후대에게 직접 재무재표 읽기, 매출과 비용 계산하기 같은 경영과 경제의 기본을 가르친다. 과학 연구나 기타 연주 같은 특기 개발도 아낌없이 지원한다. 이 역시 전인교육이다. 레어드 콜다이크 전 레어드노튼 회장은“젊은 세대에게 우리 가문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었다. 역사는 우리 가족의 아이들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콜다이크가 말하는 레어드노튼의 교육방식을 살펴보면 참여와 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어린 자녀 세대를 교육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1991년부터 시행해온 여름캠프로 매년 가문의 10대 청소년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가문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고 있다. 또한 아이들을 위해 가문의 역사를 담은 색칠놀이 책을 만들고, 기본적인 경영관리 게임이나 리더십 놀이를 만들어 아이들이 즐길 수 있게 한다.
켐프마이어도 가족기업에서 교육의 주된 목적은 참여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가족기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의 가족기업 관계자를 만나 교육과 관련된 얘기를 들었다. 켐프마이어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걱정은 가족을 보다 끈끈하게 만들 방법이었다”며 “특히 가족의 수가 많아지고 친척들까지 기업에 참여해 일종의 가족 연합체(consortium) 단계에 이를 경우엔 서로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카길은 젊은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직접 사회봉사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하거나 웹사이트 운영을 맡기기도 한다. 켐프마이어는 “교육은 최대한 즐겁게 이뤄져야 하고 능동적 참여가 중요하다. 내가 아는 한 가족기업은 다음 세대 가족 구성원에게 일정 금액을 매년 쥐어준 뒤 원하는 단체에 기부하도록 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1년 뒤에 돌아와서 그 돈을 어디에 기부했으며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됐는지 보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가족기업컨설팅그룹의 에이미 슈먼 대표는 “가족기업에서 교육은 ‘팀 빌딩(team building)’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의 가족을 이해하고 서로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며 “가족기업에 최고의 교육은 가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족 구성원들이 해묵은 갈등을 봉합하고 새로운 우정을 쌓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첨부파일 특집-이기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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