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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4가 된 반수생들에게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KDI 겸임연구위원 2017년 09월호


중요한 것은 도전의 방향이다.
뒤늦게 발견한 자신의 적성이나 새로운 탐구욕으로 입문자가 거쳐야 할 고단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은 도전 목표의 달성을 떠나 그 과정에서 이미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도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뤄왔던 자아탐구다.


몇 차례 상담 끝에 학부 1학년 지도학생 두 명이 결국 2학기 휴학원을 냈다. 그들의 휴학 동기는 다른 대학 진학을 위한 수능 재응시, 이른바 ‘반수’다.


필자는 대학에 갓 들어온 학생들에게 좌절금지와 건강한 모험정신을 강조해왔다. 반수도 실패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모험이자 도전일 수 있다. 그런데 학생들과 상담을 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이 처한 어려움과 사고의 한계가 고스란히 느껴져 안타까웠다. 그들이 반수의 목표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내적인 성장이 없다면 방황과 부적응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韓 고학력 청년의 창업 1순위는 학원 개업 등의 교육서비스업 vs 美, 과학기술 및 전문서비스업
국제비교로도 우리나라 청년들의 직업관은 과도할 정도로 안정성에 치중돼 있다. 여기엔 1997년 외환위기 때 사회안전망 없이 실직을 경험한 부모세대의 염려가 투영됐을 수 있다.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었다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최근 본격화된 교원 임용절벽에 대한 당사자들의 분노에도 교·사대 진학자들이 기대했던 고용안정에 대한 배신감이 있다.


창업에 뛰어든 청년들은 모험을 감수한 것 같지만 그 분야를 보면 많이 아쉽다. 고학력 청년의 창업 분야는 학원 개업 등의 교육서비스업(대학원졸의 경우 40%)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도소매·음식숙박업처럼 50대 명퇴자들과 겹치는 업종이다. 미국에서 고학력 청년들의 창업 1순위가 과학기술 및 전문서비스업인 것과 대조된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의 기업 생태계와 노동시장 구조가 괜찮은 중견기업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수 있다. 더욱이 고령화에 따른 부양부담 증가, 경제성장률 둔화, 기술변화와 세계화에 기인한 일자리 소멸, 사회 전반적인 고학력화 속에 청년세대에게는 예전의 자수성가세대가 가질 수 있었던 방식의 성공 기회는 상당히 줄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부모와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과거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를 듣지 못했다. 오직 사회통념상의 대학서열의 상층부 진입이 지상의 목표였다. 청소년기의 성장은 그 피라미드 구조상의 상향이동 전망과 등치됐다. 자기만의 다른 꿈은 생각할 시간도 갖지 못하거나, 가졌다 하더라도 기성세대의 통념과 다를 경우 포기하거나 단념하도록 설득돼왔다.


이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때 시간을 잊고 몰입하며 뿌듯한 성장의 기쁨을 느끼는가?”라는 중요한 자아발견의 질문과 진정한 진로탐색은 계속 유예됐다. 물론 이 질문의 답은 대학 졸업 때까지, 직장에 들어가서까지 모르기도 한다. 부모와 세인들, 때로는 교사가 주입한 목표, 즉 더 높은 서열의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특별히 잘못 설정된 것 같지 않은 목표였다. 단일한 목표의 입시경쟁을 위해 공부하고 문제 푸는 기계로 살아가는 생활은 단조롭고 힘들긴 해도 다른 고민은 없었다. 이것이 대학에 와서 뭘 해야 할지 방황하다 다시 대학입시의 동굴로 돌아가 고4가 되고자 하는 반수생들의 공통적인 고백이다.


하지만 반수에 성공해서 한두 칸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다니게 된다 하더라도 기대했던 행복감이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실증분석연구에 따르면, 노동시장에서 고임금을 받는 대졸자는 학벌(대학서열)과 본인의 능력(성적)이 모두 높은 그룹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낮으면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든 것이 수많은 대졸자가 대기업과 공기업 등의 좁은 문에 쏠려 있는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이었다. 또한 수재와 천재가 서식하는 최고 명문대에서 상대적으로 평범한 학생들은 열등감으로 인해 많은 수가 정신상담을 받고 자살률도 또래 평균보다 높다. 능력이 정규분포 모양을 갖는다고 하면, 가령 오른쪽 맨 끝부터 0.4%를 선발했을 때 학생들의 능력 편차는 평균 근처에서 0.4%를 선발했을 때 학생들의 능력 편차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지속적 기쁨을 주는 자아의 성장을 가슴속 목표로 삼아야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여유 있게 입학한 학생들도 대학에 와서 방황하는 경우가 흔하다. 점수가 아까워 무조건 상위 서열의 학과에 진학했거나 주변의 바람에 따라 전공을 선택했다가 적성 문제로 고민하다 학교생활이 불안정해지고 성적도 떨어진다.


안주하는 것보다 도전하는 것이 청년의 모습이라 하고, 나이가 많아도 도전하는 사람을 청년이라 부르곤 한다. 중요한 것은 도전의 방향이다. 부모의 기대나 세인의 이목을 의식해서 방향을 정했다면 도전 목표의 달성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짙다. 반면 뒤늦게 발견한 자신의 적성이나 새로운 탐구욕으로 입문자가 거쳐야 할 고단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은 도전 목표의 달성을 떠나 그 과정에서 이미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행복한 도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뤄왔던 자아탐구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대학에 와서 지켜보니 행복한 학생은 공통적으로 자기가 요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바쁘게 살아도 표정이 밝았고,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있었고, 지금 잘하지 못해도 쫓기지 않았다. 반면 불행한 학생은 현재 자신의 결핍된 욕구에 집착하고 있었고, 그 결핍은 다양한 것에서 존재하며 불행한 이유를 제공했다. 결핍이 꿈의 먹이가 돼 행복을 향해 나가려면, 부모의 기대나 타인의 인정을 위한 목표가 꿈이 돼서는 안 된다.


반수에 도전한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보고 나서 내년 봄에 다른 학교에 가든 머리를 긁적이며 연구실에 복학 인사를 하러 오든 필자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욕구의 충족과 달리 지속적인 기쁨을 주는 자아의 성장을 가슴속에 목표로 품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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