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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육이 사람을 만들까?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KDI 겸임연구위원 2017년 10월호



사회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교육 영역에서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고 이를 추방하기보다는 경쟁의 내용과 방식에 교육적인 가치를 담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출발선상의 불공평을 시정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공정한 경쟁, 선행반복학습을 유발하는 소모적 투입경쟁이 아닌 내용적 부가가치가 높은 경쟁, 지더라도 결과를 승복하고 자기발전의 자극제가 되도록 하는 경쟁이라면 그 자체로 교육적이다.


높고 파란 하늘. 가을운동회의 계절이다.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 가을운동회를 하면 전교생이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하루 종일 다채로운 종목으로 경쟁을 벌였다. 잘 보이는 높은 교실 유리창에 실시간으로 점수판이 게시됐다. 전체 청백전과 동시에 바깥 트랙에서는 전교생이 조별로 달리기 경주를 했다. 1, 2, 3등은 작은 상품을 타기도 했는데, 등위에 들었음 을 입증하는 손등 도장은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아이들을 남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시민으로 기르기 위해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경쟁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따라 운동회에서 달리기 경주를 없애거나 달리기를 하더라도 등수를 매기지 않는 학교가 있었다. 일본의 교육학자와 경제학자가 공동 집필한「숨겨진 교육과정과 사회적 선호」(Ito, Kubota, Ohtake, “The Hidden Curriculum and Social Preferences,” 2015)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러한 반경쟁(anti-competition) 문화를 가진 초등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가진 성인이 됐는지를 실증적으로 탐구했다.


반경쟁 교육, 기대와 달리 반사회적 가치관 형성으로 나타나
증연구가 거쳐야 할 일련의 계량경제학적 검증 절차를 마친 후 내놓은 연구결론은 반경쟁 교육문화의 지지자들이 기대했을 긍정적 효과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달리기 경주가 없었거나 있더라도 등수를 매기지 않았던 학교에 다녔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오히려 낮은 사회성을 보인 것이다. 이들은 성인이 돼 이타심, 타인과의 협력정신, 신세를 갚는 호혜성, 국민으로서의 자긍심 등의 설문에서 낮은 점수를 나타냈다. 또한 정부에 의한 빈민구제와 사회보장 등 재분배정책에 대해서도 낮은 지지도를 보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논문 저자들은 평등을 강조하는 반경쟁 교육에서 학생 간 성적 차이는 학생의 천부적 능력 차이보다는 교사의 수업 능력의 차이로 간주돼 성적이 공개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선행연구의 지적을 환기시킨다. 이런 반경쟁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학교나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성과 차이는 타고난 재능의 차이보다는 게으름이나 노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반경쟁 교육이 자기 책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과가 나쁜 타인에게 연민을 덜 느끼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초등학교에서 폐지되고 전수평가에서 표본평가로 환원되는 것을 양가감정(두 가지의 상호 대립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으로 바라본다. 지나친 시험 위주의 수업과 성적 경쟁 및 학교 간 서열화를 지양한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정부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높은 학교에 대한 지원(채찍보다는 당근)을 통해 이 비율을 낮추도록 독려하고 실제로 성과를 냈던 것은 전수평가의 장점이었다. 따라서 점수 경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학교 책무성 정책 대신 반경쟁 교육체제를 도입할 때는 그로 인해 놓치게 될 것도 살펴봐야 한다. 특히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증가를 방지하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의 발견은 이에 더해 학생들이 성인이 됐을 때 갖게 될 가치관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할 필요성을 알려준다.


반경쟁 교육이 반사회적 가치관의 형성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은 자존감을 살려주는 교육이 초래한 부작용과 관련된 것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면 학업 및 사회화 과정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한 이런 교육방침이 동아시아까지 확산됐다. 그러나 관찰을 통한 실증연구 결과들은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우열을 가리지 않고 참가 자체를 높이 평가했던 반경쟁 교육관행이 학생들의 자기우월감을 과도하게 부풀려 오히려 비협력적이고 비호혜적인 개인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자기 아이를 위하거나 기를 살리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몰상식한 행동을 하거나 방치하는 것도 사회적인 지탄과 갈등을 유발하는 측면 외에 아이가 어떤 성인이 될 것인지에 영향을 주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한편 좌파적인 정치사상을 교육(국기 게양 및 국가 제창 반대, 교사 파업으로 인한 휴강 경험)하거나 인권과 평화를 교육(반차별 수업, 원폭지역 수학여행 및 원폭일 교내 의회 개최)하는 것은 학생들의 장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일본 학자들의 연구결과, 초등학교 때 받았던 이러한 ‘내용’ 측면의 진보적 교육은 성인기의 이타심, 협동심, 호혜성 등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진보적 가치도, 인권도, 평화도 여러 수업 중 하나의 내용이었을 뿐 학생들의 가치관으로 내면화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반대로 노력과 근검을 강조했던 발전주의 국가 교육도 학생들의 성인기 사회적 선호에 별다른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예컨대 구소련 집단농장 관련 수업, 학생저축통장, 상대평가제를 실시하고 교정에 면학 상징의 동상이 설치된 초등학교를 다녔던 경험이 성인기의 이타심, 협동심, 호혜성, 국민적 자긍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수평적 교육 통해 사회적 신뢰, 협동에 대한 믿음 등 사회자본 높아져
그렇다면 어떤 교육이 성인기의 가치관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었을까? 그것은 바로 ‘방식’ 측면의 진보적 교육, 즉 ‘수평적·참여적·협동적 교육방식’의 체험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조별 과제, 수업 전 독서시간, 긴급단체대피훈련, 성취평가제(교과뿐 아니라 봉사와 협동 등 인성도 평가대상) 등이었다. 이처럼 참여와 협동을 지향하는 방식의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성인이 보다 이타적이고 협력적이고 호혜적이며 국민적 자긍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발견은 국제비교 및 국가 단위의 학교 간 비교, 교실 간 비교가 가능한 자료를 동원해 교수학습방식에 따른 사회자본의 차이를 분석한 앨건 등의 연구(Algan et al., “Teaching Practices and Social Capital,” 2013) 결과와도 상통하는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이 그룹을 이뤄 활동하는 수평적 교육을 많이 할수록 사회적 신뢰, 공동체 활동 참여, 협동에 대한 믿음 등 사회자본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반면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학생들은 받아쓰는 수직적 교육은 낮은 사회자본으로 귀결됐다.


앨건 등의 연구에서 수학이나 과학 과목의 수업방식에 대해 분석한 결과도 그러하니, 사회자본의 형성에 있어선 무엇을 가르치는가의 내용적(교육과정) 측면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같은 내용이라도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도록 하는가의 방식적(교수학습법) 측면이다. 가령 인권교육이라 할지라도 인권 과목 교재를 이용한 일방적 강의보다는 학생들의 그룹 활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체득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욱이 앞서 소개한 일본 학자들의 발견은 초등학교 때의 교육관행이 성인기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상과 같은 연구들로부터 우리 교육은 어떤 실천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경쟁의 내용과 방식에 교육적 가치 담는 노력을…교사·교수, ‘강단 위의 현자’에서 ‘옆에 선 조력자’ 돼야


첫째, 사회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교육 영역에서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고 이를 추방하기보다는 경쟁의 내용과 방식에 교육적인 가치를 담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출발선상의 불공평을 시정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공정한 경쟁, 선행반복학습을 유발하는 소모적 투입경쟁이 아닌 내용적 부가가치가 높은 경쟁, 지더라도 결과를 승복하고 자기발전의 자극제가 되도록 하는 경쟁이라면 그 자체로 교육적이다. 또한 팀 내에서 협력하며 팀 간에는 경쟁하는 스포츠가 인성과 사회성 함양에 도움이 되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학생들을 주입식 교육의 대상으로 보고 어떤 이념과 가치를 담은 교과서를 가르친다고 바라는 인간상으로 자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국정 역사교과서든 인권교과서든 마찬가지다.


셋째, 학생들을 교육의 수평적 주체로 보고 참여적이고 협동적인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 사회성 함양과 사회자본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더라도, 구체적인 실행의 문제가 남는다. 가령 대학 수업에서 조별 과제는 조원 중 무임승차자에 대한 우려와 인간관계의 피곤함,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 수업을 학생에게 맡기는 것 같은 교수의 본심에 대한 의심 등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을 ‘참여적인 민주시민’과 ‘협력하는 괴짜’로 키우기 위해서는 교사나 교수가 새로 공부하고 준비하며 수업을 해가면서 계속 다듬어야 할 것이 많다. 또한 익숙했던 수업방식에서 ‘강단 위의 현자’로 잡을 수 있었던 폼과 권위를 내려놓고 ‘옆에 선 조력자’로서 학생들을 그룹별로 개인별로 살펴보는 정성도 필요하다.


끝으로, 어쨌든 교육은 사람의 지식은 물론 가치관과 사회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박약해져온 우리 사회의 신뢰와 협동, 연대와 공공심 등 사회자본을 제고하는 데도 지금의 교육, 특히 교육의 방식이 중요하다. 좋은 교육은 여전히 어렵지만, 다른 무엇보다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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