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정보센터

16개 경제부처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경제 정책 정보지

나라경제

발행물

특집

원스톱 바이오 생태계에서 제2의 제넨텍 꿈꾼다
류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 2019년 07월호



미국 제약바이오업계가 ‘트럼프 효과’로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약은 모두 46건으로 1996년(53건) 이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전년(22건)과 비교해서는 2배 이상 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후 의약품 관련 각종 규제를 철폐하면서 신약 개발 속도가 빨라진 결과다. 올해 초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와 희귀난치병 전문 신약개발사 세엘진(Celgene)의 740억달러(약 86조원) 규모 M&A나 일라이릴리(Eli Lilly)가 80억달러(약 9조원)를 들여 표적항암제 개발업체 록소온콜로지(Loxo Oncology)를 인수한 ‘빅딜’의 배경에도 트럼프 정부의 세제 개혁에 따른 현금 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뭘까. 의약품·의료기기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ICT 기술과 융합되는 바이오헬스케어 시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파급력 있는 혁신성장의 핵심 분야로 꼽힌다. 글로벌 정밀의료 시장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15.2%, AI 헬스케어는 2022년까지 연 52.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기업의 적극적인 기술개발 노력에 정부의 제도적인 지원과 탄탄한 투자 시스템, 대학 등 연구기관과의 활발한 교류 등이 더해지면서 세계 최고의 바이오헬스산업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수조원대 블록버스터 신약 쏟아낸 제넨텍…성공신화에 몰려든 바이오기업들이 클러스터 형성
자율주행차, 비행택시, 블록체인 등 신기술이 쏟아지는 실리콘밸리에서 최근 혁신 열기가 가장 뜨거운 분야는 놀랍게도 바이오다. 전통적인 제약사들이 차지하고 있던 바이오헬스산업의 앞자리를 IT기업이 하나둘 차지하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클라우드 기술은 더 이상 바이오와 함께 언급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세계 최대의 IT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와 바이오 클러스터를 지척에 두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바이오테크 기업들의 격전지라 불린다. 실리콘밸리의 따끈따끈한 최신 IT 기술이 그대로 바이오 클러스터로 날아가 적용된다. 노바티스(Novartis),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바이엘(Bayer)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앞다퉈 이노베이션센터를 두고 바이오 스타트업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도 ‘IBT(IT+BT)’ 융합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제넨텍(Genentech)은 미국 바이오 클러스터의 토대를 닦은 기업이다. 이곳에 터를 잡고 세계 최초의 유방암 치료용 바이오 신약 허셉틴을 비롯해 리툭산, 아바스틴 등 매년 수조원씩 팔리는 블록버스터 신약을 쏟아냈다. 제넨텍의 성공신화를 목격한 바이오기업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바이오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이른바 ‘제넨텍 효과’다.
제넨텍은 혁신적인 연구자와 안목 있는 투자자가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벤처투자자의 원조 격인 밥 스완슨이 UC샌프란시스코(UCSF)에서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연구하던 허버트 보이어 교수와 자주 만나 맥주를 마시다 의기투합해 제넨텍을 창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제넨텍 본사에는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을 찾아볼 수 있다. 똑똑한 돈과 혁신 기술의 시너지를 기억하자는 취지다.


탄탄한 정부 지원과 투자 환경…전문인력 5만명, 투자액 2조원
202만㎡ 규모(축구장 283개)의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연매출 20조원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바이오기업 제넨텍을 비롯해 암젠(Amgen), 써모피셔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등 200여개가 넘는 바이오기업과 R&D센터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바이오 전문인력만 5만여명, 연간 바이오벤처로 투자되는 금액은 2조원이 넘는다.
이미 세계 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지만 우수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사우스 샌프란시스코 시정부의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매년 수천억원을 투자해 교통, 정수시설 등 인프라 개선에 힘을 쏟는 한편 수시로 해외 바이오 관계자들을 초청해 바이오 클러스터 입주를 독려한다. 휴일에도 시장이나 정부 관계자가 직접 행사장에 나와 투자설명회를 진행하는 것은 이곳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뛰어난 입지와 연구 인프라가 뒷받침되면 우수한 인재는 자연스럽게 모인다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제2의 제넨텍’이 탄생할 수 있는 바이오 생태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가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연구기관)스타트업벤처캐피털’로 구성된 바이오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UC버클리, UC샌프란시스코, 스탠퍼드 등 인근 명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생명공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진다. 연구실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대학병원의 풍부한 임상 환경을 통해 구체화되고, 구글 등 대기업이나 벤처캐피털과 만나 곧바로 사업화로 이어진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바이오 클러스터에 위치한 20여개 벤처캐피털의 투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바이오 분야로 유입될 만큼 투자 환경도 바이오헬스산업에 최적화돼 있다.
될성부른 떡잎을 먼저 발견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노바티스의 바이오미(Biome), 존슨앤드존슨의 제이랩스(JLabs) 등 여러 글로벌 빅파마들이 바이오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제이랩스에는 100여개가 넘는 바이오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선발된 기업은 모든 공간을 2년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구입하기 어려운 비싼 장비도 무상으로 지원받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존슨앤드존슨과 사업화를 논의할 수 있다.
자연의 생태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 산업 생태계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믿음이 필요하다. 미국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사례를 본받아 우수한 인력 확보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정부의 맞춤형 지원을 하나씩 쌓아나간다면 바이오헬스산업은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이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KDI 경제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