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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를 발전의 주체로 세우고 시장 창출 환경 만들어줘야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2019년 07월호



6월 3일부터 6일까지 나흘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산업 행사인 ‘2019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은 한국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를 주최한 미국바이오협회에 의하면 700명을 넘어선 한국 참가자 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었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수행하고 있는 국내 바이오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바이오산업의 생산 규모는 전년 대비 9.3% 증가해 10조원을 돌파했으며 수출은 11.2% 증가해 5조원을 달성했고 내수시장은 8.7% 증가해 6조6천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기업들이 바이오 행사에 적극 참여해 해외 마케팅을 펼치고 비즈니스 교류를 하는 모습과 수출 성장이 견인하고 있는 생산 규모의 빠른 증가는 국내 바이오산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바이오산업의 특성과 환경에 대한 이해가 급선무
이번 행사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육성방안에 대한 시사점 또한 보여줬다. 필라델피아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첫 생체 내 유전자치료제인 룩스투나(Luxturna; 희귀 유전 망막질환 치료제)를 개발한 스파크 테라퓨틱스(Spark Therapeutics)가 있는 곳이자 1999년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의 첫 사망자가 발생한 펜실베니아대의 소재지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안전을 위한 조치와 가이드라인 마련 등 안전관리 체계가 수립됐다. 동시에 연구계와 산업계의 끊임없는 연구개발(R&D) 노력으로 성공적인 임상시험 사례들이 축적됐다. 그 결과 2018년 미국 FDA는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이 더 이상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재조합 DNA 자문위원회의 사전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유전자치료제의 위험성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이 분야가 더 이상 완전히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분야가 아닌, 위험성을 관리하면서 R&D를 추진할 수 있는 분야가 됐다는 의미였다. 미국의 바이오산업이 어떻게 문제를 통해 발전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5월 정부는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을 통해 바이오헬스 분야를 5대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할 것과 이를 위해 이 분야의 국가 연구개발비를 연 4조원으로 확대하고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한편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중점 분야 선정부터 R&D 지원 확대, 인프라 구축, ‘규제 샌드박스’와 같은 규제개혁 드라이브까지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 의지를 표명해왔고 이는 국내 바이오산업계에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적극적 의지는 잘 실현되지 않고 있다. 현 정부가 일찌감치 표명해온 규제개혁 의지가 무색하게 바이오산업, 특히 한국이 ‘선도’해야 할 신산업 분야와 관련해 경직된 제도의 합리화나 선도적 대응방안 마련은 지지부진하다. 디지털 헬스케어나 유전체 등 정부가 중점적으로 R&D를 지원한 분야들의 사업화와 산업 육성이 잘 되지 않고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이오산업의 특성과 환경에 대한 이해다. 바이오산업은 정부가 직접 산업을 기획하고 일으킬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몇몇 대기업을 키워 육성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신기술이 신속하게 제품화·사업화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기업들이 필요하다. 즉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은 산업계가 주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이오헬스산업계를 성장시킬 것인가? 바이오헬스산업은 R&D 역량만 향상되면 자연히 우수한 기업이 나오는 게 아니다. 우수한 기업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시장이 있을 때 나온다.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산업이 발달할 수 없다. 국가 정책과 제도는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통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현재 국내의 바이오헬스산업 환경은 기업들이 맘껏 시장을 창출할 수 없는 환경이다. 바이오헬스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산업계를 발전의 주체로 확실히 세우고 그 니즈를 반영해야 한다. 또한 정책과 제도의 개혁은 시장의 창출을 촉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사례를 살펴보자. 국내에서는 정부의 R&D 투자와 국내 IT 역량을 바탕으로 웹·모바일 기반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일찍이 등장했지만 이들은 규제의 모호성으로 인해 특성에 맞지 않는 규제심사를 받거나 건강·의료 데이터의 활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비즈니스가 확장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즉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방수가 등 이들 제품과 서비스의 발달을 촉진할 유인이 없고 공공 프로그램의 개발과 이용으로 오히려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미국의 상황은 이와 대조적이다. 우선 규제 측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과 서비스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규제 방안에 대한 연구와 개선된 방침의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보험수가화를 통해 공공의료 부문에서부터 민간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의 활용을 촉진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런 보험수가화가 규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국가 차원의 당뇨병 예방과 관련해 온라인·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를 수가화해 만성질환 예방에 대한 정부 자금이 산업 육성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한편 수가지급을 받기 위해 이들 서비스는 질병관리예방센터의 공식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제품의 허가·인증제도와 함께 의료보험제도를 통합적으로 고려하고 연계하는 방안은 미국 바이오산업 규제와 보험제도가 산업 육성과 시장 창출을 염두에 두고 고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규제와 산업발전, ‘대립’ 아니라 함께 발달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무엇보다 국내 바이오헬스산업 규제에 대한 접근의 전환이 시급하다. 규제와 산업발전이 대립되는 현 구조에서 산업발전을 통해 규제도 함께 발달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국내의 규제는 기존에 허용이 명시되지 않은 새로운 산업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술과 신제품·서비스가 빠르게 등장하는 바이오산업은 글로벌 환경에 놓여 있고 이런 식의 규제는 국내 산업의 경쟁력 확보 측면뿐만 아니라 안전성 관리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개인 유전체 분석서비스의 경우 국내법 테두리에 묶여 국내 기업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가운데 오히려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국내 유전체 정보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규제도 발달할 수 없다. 산업발전을 지속시키면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가며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에 필요한 것은 산업계를 주체로 세우고 산업계가 발달할 수 있는 시장 창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이해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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