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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수출규제에 핵심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로 대응
유영호 머니투데이 경제부 기자 2019년 09월호


일본의 경제보복은 은밀하고 치밀했다. 주력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급소를 겨냥해 핵심 소재 3종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한국 제조업은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경쟁우위를 가진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완제품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집중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 이익이 되는 국제분업체제였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무기화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을 이루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단순히 효율성 측면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술 자립’을 통해 위기를 산업강국 도약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韓 제조업, 국제분업체제하에서 완제품 경쟁력 제고에 집중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기습적으로 강화했다. 목표는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사용하는 불화수소(불산·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종을 수출 때마다 허가받아야 하는 개별수출허가로 돌렸는데, 이는 일본이 세계시장의 70~90%를 독점한 필수 소재다.
규제는 정밀했다. 예를 들어 포토레지스트는 ‘1나노미터(㎚) 초과 193㎚ 미만 파장의 빛에서 사용하기 최적화된 소재’로 규제 범위를 정했다. 현재 일본에서 수입 중인 포토레지스트 가운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등에 사용하는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13.5㎚)다. 한국의 주력품목인 D램(193㎚), 낸드플래시(248㎚) 메모리 공정에 사용하는 포토레지스트는 규제에서 벗어났다. 한국의 미래산업에 경고를 날리면서도 국제 여론 등을 고려해 글로벌 반도체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핀셋규제다. 업계는 “당장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보다는 경고성 조치로 읽힌다”며 “정확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한국 산업의 ‘초크 포인트(choke point)’를 틀어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나아가 한국을 ‘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도 제외했다. 비록 핵심소재 3종 이외에 추가 규제품목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백색국가에서 제외된 이상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대량파괴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의심만 돼도 ‘상황허가(catch-all, 캐치올)’ 규제가 가능하다. 언제든 일본 정부 입맛에 맞는 수출규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부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한일 양자 압박과 국제사회를 통해 우회 압박하는 투트랙 대응에 나섰다. 양자 차원에서는 일본 수출규제에 맞대응해 일본을 우리나라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은 9월 중 시행 예정인데, 시행되면 기존 ‘가 지역’에 포함됐던 일본은 신설되는 ‘가의2 지역’으로 독립 분류돼 전략물자 포괄수출허가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비(非)전략물자도 상황허가 규제가 가능해져 일본의 추가 수출규제에 대응할 정책카드를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는 또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하고 시기를 고민 중이다. 다자 차원에서는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적극 설명하며 여론을 환기하고 있다. 7월 8일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열린 상품·무역이사회와 2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일반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 강화에 대해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됐다”라거나 “부적절한 사례가 복수 발견돼 안보상 수출규제는 필요한 조치”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해결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한 정치적 보복이 근본 이유라는 것이 한일 양측 전문가의 공통적인 평가다.

소재·부품 무역흑자 51배 늘었지만…질적 성장이 관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일본 수입 의존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세계화 바람을 타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분업체제가 고착화됐다.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해온 한국은 외부에서 소재·부품을 조달해 완제품을 생산·공급하는 가공무역에서 경쟁우위를 가졌다. 자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경쟁우위를 가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분야를 수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정부는 뒤늦게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중요성을 알고 공격적인 산업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 소재·부품 수출은 3,162억달러로 총수출(6,055억달러)의 52.2%를 차지했다. 무역수지는 1,391억달러 흑자를 냈는데 전체 무역흑자(705억달러)의 약 2배를 기록했다. 2001년 소재·부품 수출액이 620억달러, 무역흑자가 27억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17년 만에 수출은 5배, 무역흑자는 51배 늘었다.
하지만 양적 팽창과 달리 질적 향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는 2001년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4차례 소재·부품발전 기본계획을 내놓으며 ‘소재·부품 세계 4강 도약’을 목표로 R&D 투자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고질적인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그 결과 2010년 243억달러였던 소재·부품 산업 대일본 무역적자는 지난해 151억달러로 꾸준히 줄었다. 대일본 수입의존도 역시 2001년 28.1%에서 지난해 16.3%까지 하락했다.
문제는 초격차 기술을 앞세운 핵심 소재 분야다. 범용 소재·부품의 경우 한국, 중국 등 후발주자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상승했지만 핵심 소재 분야는 오히려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더 커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첨단산업 관련 소재·부품 산업 경쟁력이 취약한데, 평균 기술력이 독일, 일본 등 선진국 대비 66%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7년 기준 세계 2천대 기업 중 소재 기업 수는 미국 40개, 일본 29개지만 한국은 단 7개에 그친다.
무엇보다 핵심 소재 분야는 초격차 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수출규제를 진입장벽 삼아 해당 산업 가치사슬 진입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서로 얽혀 있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국가 산업계도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외교·안보를 이유로 강행할 경우 상대국이 마땅히 대응할 카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과 국민들에겐 그 어려움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과 완성이다. 소재·부품·장비 기술 자립을 위한 정부와 민간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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