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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절대 규모 확대하고 스마일 커브형 투자전략 도입을
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 2019년 09월호


기술 사업화, 인력양성, 국제협력 등 개발된 기술의 활용에도 투자 확대…R&D 성과 확산을 위해선 실증·인증· 표준화가 필수
미래형 신산업 육성은 정부 주도로, 주력산업 고도화는 민간 주도로 가는 투트랙 전략 필요


최근 한일 무역분쟁의 배경은 산업경쟁이고 본질은 기술전쟁이다. 우리가 취약했던 소재·부품·장비의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의 숙명적 기회다. 연구개발(R&D)은 인수합병(M&A), 기술도입(O/S)과 더불어 국산화의 유력한 방법이지만, 투자 효율성에 의문 제기가 많다. 만성적인 기술무역수지 적자, 낮은 사업화 성공률, 부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연구비 부정 사용, 불공정한 과제선정 절차,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투자 대비 매우 낮은 기술이전료, 해외 기술유출과 인재유출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문제의 주범인 정부 R&D를 동결하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투자효율이 높은 민간 R&D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은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해 정부 주도의 R&D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안전, 보건, 환경, 복지 등 R&D 공공성 중요
먼저, 기술무역수지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기술도입액 대비 기술수출액 비율은 2010년 33%였지만 2017년에는 72%가 됐다. 이 추세면 2022년에 기술무역수지 흑자국이 된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특허출원 수는 세계 4위이며 국내총생산(GDP)이나 인구 대비로는 세계 1위다. 지금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재·부품 수출액은 꾸준히 커져 2017년 일본의 83%로 좁혀졌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R&D에 투자한 지는 40여년밖에 안 된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민간 R&D는 정부 R&D의 3배 이상으로 이미 민간 주도로 가고 있다. 연구과제 선정과정이나 연구비 사용, 연구결과 보고서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정부·국회·언론·시민들로부터 감시를 받는 정부 R&D에 비해 민간 R&D는 비공개라 얼마나 효율적인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설사 민간 R&D 효율이 높다고 해도 정부 R&D를 대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R&D의 공공성을 무시한 것이다. 공공의 안전, 보건, 환경, 복지 등을 민간 R&D에 의존할 수는 없다.
선진국이든 저개발국이든 관계없이 국가 산업발전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정부는 기술변화와 시장변화에 따라 제도개선과 법률제정, 재정투자와 금융지원 등을 통해 산업 구조조정과 신산업 육성을 할 수 있다. 특히 정부 R&D를 통해 새로운 기술개발과 유망 분야 인력양성을 주도할 수 있다. 이 결과를 갖고 기업들이 민간 R&D와 설비투자·마케팅을 통해 사업화에 나서고 산업도 육성된다. 정부는 국제협력과 수출진흥, 세제지원 등 후속지원도 한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정보통신·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이 모두 이러한 정부의 선제적 R&D·교육·금융 지원으로 육성됐다.
그러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정부 R&D 방식과 규모이면 충분할까? 지난 20여년간 정부 R&D는 대기업 위주의 민간 R&D를 보조하는 성격으로서 축소 운영돼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결과 대기업의 사업개척과 신규투자가 미진한데 정부까지 신산업 투자에 소극적이어서 민관 쌍두마차가 모두 멈춘 형국이다.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미중 분쟁 격화와 이로 인한 세계 경기침체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한일 기술전쟁은 국제 기술패권전쟁의 일부일 뿐이다. 이러한 글로벌 산업경쟁 구도에서 우리의 선택은 신자유주의를 탈피해 정부 R&D를 과감히 확대하고 공공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어야 한다. 구체적 대안은 다음과 같다.

바이오·의료, 에너지·환경 등 5대 신산업 정부 주도로 육성해야
첫째, R&D 투자효율 혁신을 위한 제도개선이다. 이를 위해 스마일 커브형 R&D 투자전략을 도입하자. R&D 초기의 아이디어, 개념설계와 R&D 말기의 기술 사업화, 마케팅 단계가 고부가가치 영역이다. 중간 단계인 제조기술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정부 R&D가 중점을 둘 분야는 아니다. 세계 최초(the first)인 원천기술과 세계 최고(the best)인 상용화기술에 집중하는 양극화 R&D 전략이 필요하다.
수십 개 과제를 모아놓은 사업 단위의 기획역량을 강화하자. 사업구상과 아이디어 검증, 예비타당성 검토는 물론 필요 시 체계나 기술의 개념설계까지를 포함해 사업기획의 범주에 넣고 전체 R&D비의 3% 정도를 투자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잘못된 R&D로 인한 예산 낭비를 대폭 줄일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이게 더 효율적이다. 또 사업·과제 기획은 연구개발자의 수요보다는 시장의 수요에 기반해 이뤄지도록 마케팅과 특허 전문가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공정한 과제선정과 평가관리를 위해 온라인 메타순환평가제도를 도입하자. 이를 통해 제안자와 평가자 간 암맹(블라인드)평가가 이뤄지고 평가위원과 전담기관도 평가받는다. 과제계획서 양식도 표준화가 필요하다. 중복연구의 일종인 복수지원 허용과 연차발표마저 생략하기로 한 산업통상자원부의 방침을 전 부처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안전, 환경, 사회적 가치 등 R&D 공공성은 강화하자.
기술 사업화, 인력양성, 국제협력 등 개발된 기술의 활용에도 투자를 확대하자. R&D 성과 확산을 위해서는 실증·인증·표준화가 필수다. 수출을 위한 국내 운영실적 확보와 신규 제품의 공공기관 우선 구매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스타트업·스케일업을 위한 투자금융 활성화도 필요하다.
둘째, R&D 생태계 개선이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상생생태계가 중요하다. 대기업의 브랜드와 글로벌 마케팅 역량, 그리고 중소기업의 유연한 적응력과 혁신역량이 잘 결합돼야 한다. R&D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중심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기업의 사업화를 위한 R&D 전달체계가 약화된 것은 문제다. 민관협력체계를 새롭게 강화해야 한다.
이를 타개할 한 방안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달리 특정 시장·기술에 편중돼 있지 않아 객관적으로 분석해 전략을 수립하고 신산업 육성 R&D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소재·부품 분야처럼 장기적으로 기초·원천연구를 해야 하는 일에도 적합하다. 정부 R&D 과제는 중소기업에 집중 지원하더라도 사업기획 과정에는 대기업을 적극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정부 주도의 5대 신산업 분야(BEST-I) 육성이다. 웰빙·고령화에 따른 바이오·의료(Bio·Medical), 삶의 질 중시에 따른 에너지·환경(Energy·Environment), 선진국 수준의 공공 안전(Safety industry), 국제교류 증가에 따른 항공·전기교통(Transportation), 지식경제시대 도래에 따른 지식서비스(Intellectual service) 산업 분야가 고려 대상이다. 아직은 선진국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은 세계 10~20위권에 불과하다. 향후 20년 내 5위권 진입을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5대 신산업 분야는 공공·안전이 중시되고 선진국의 높은 규제·통상 장벽을 국제 표준화 활동과 외교로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예컨대 디지털헬스·자율주행차·공유서비스는 정부가 규제를 조정해주지 않으면 산업형성 자체가 안 된다. 반면 기존 주력산업은 경쟁력 강화가 숙제인데, 이는 민간 주도 전략이 유효하다. 미래형 신산업 육성은 정부 주도로, 주력산업 고도화는 민간 주도로 가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정보·지식산업(IT), 바이오·의료산업(BT), 에너지·환경산업(ET) 육성을 주도할 혁신성장 전담부처를 신설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정부 R&D 절대 규모의 확대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4% 수준으로 낮아지는 가운데 주력산업의 미래는 불확실해졌고 신산업 육성에는 시간이 걸린다. 다시는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R&D를 축소하고 연구인력을 퇴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부 R&D 규모를 확대하고 민간 R&D도 위축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 R&D비는 2017년 GDP의 4.55%로 세계 1위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정부 R&D 누적투자액 규모로 보면 미국의 8분의 1, 일본의 2분의 1 수준이다. 정부 R&D는 투자하면 확실한 성과로 되돌아오는 유일한 혁신성장 예산이다. 앞서 언급한 대책을 통해 투자효율을 대폭 개선하면서 R&D 투자비를 매년 10%씩 확대하자. 해외로 유출되는 고급인력도 국내로 되돌아오게 하고 해외 우수인력도 적극 유인하자. 기초과학은 장기적으로 적극 지원하고 방사광가속기 같은 거대시설도 설치하자.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한 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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