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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사업화-수익 창출-R&D 투자의 선순환 구조 형성돼야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 2019년 09월호


기획 단계부터 성과목표와 평가지표를 구체화하고 정량화하며 사업화 및 시장성 평가를 강화해야
R&D 부문에서는 52시간 근무제가유연하게 적용돼야


한국경제의 성장판이 빠른 속도로 닫히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초 7%대였지만 대내외 위기를 겪으면서 하락해 2016~2020년에는 2% 중반까지, 그리고 향후 5년 뒤에는 1%대까지 추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경제의 성장판이 닫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영양분이 공급돼도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 중 노동과 자본의 투입 강도 저하는 거스르기 힘든 대세다. 기댈 곳은 기술밖에 없다. 첨단기술로 무장해 생산성을 높이는 길만이 닫히고 있는 한국경제의 성장판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그래서 연구개발(R&D)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민간의 R&D가 중요하다. 민간 R&D 투자는 2000년대 초 공공 부문을 추월한 이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R&D 투자액 78조8천억원 중에서 민간 R&D 투자액은 60조원으로 민간 비중은 76%다. 민간의 R&D 성과에 국가 전체적인 R&D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 R&D 투자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2017년 민간 R&D 투자액 60조원, 전체의 76%
정부도 최근 세법개정안을 발표해 민간 R&D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피력했다. 요지는 신성장·원천기술 R&D 비용의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외부위탁 R&D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원책이 없는 것보다는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인 경제활력 회복에 우선순위를 둔 조치라는 성격이 강하고 한시적·부분적 감면이 주를 이뤄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R&D 투자 활성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신성장 부문의 R&D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기술 범위가 현재 허용되는 항목을 열거하는 포지티브 리스트이거나 최근 이슈인 소재·부품에 한정돼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원칙적으로 기술 범위 대상을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제외되는 항목을 제시하는 네거티브 리스트로 바꿔야 한다. 혹은 신규기술 편입을 쉽게 허용하는 유연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연구자 개개인은 신성장 부문과 기존 부문 모두에서 골고루 연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R&D 활성화를 위해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R&D의 결과물이 실제로 시장에서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 R&D와 달리 민간 R&D는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 베이스로 수행돼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민간 R&D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 R&D를 지원하더라도 기술의 사업화를 통해 수익이 창출되고 다시 R&D 투자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선순환 구조 형성의 시작점인 사업화 성공을 위해서는 R&D를 통해 얻어지는 신기술과 신제품이 시장에서 환영받아야 한다. R&D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장을 잘 아는 마케팅 부서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지원 대상이 되는 R&D 기술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간의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성과목표와 평가지표를 구체화하고 정량화하며 사업화 및 시장성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시장 겨냥한 R&D 기획,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해야
민간 부문에서는 글로벌시장을 겨냥한 R&D 기획을 더 많이 하면 유리할 것이다. 그 이유는 국내 경기 부침에 따라 투자액이 변동하는 R&D의 속성상 글로벌시장을 염두에 두면 국내 경기 흐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시장은 산업 내에서 대기업의 영향이 크고 고유의 원·하청 구조로 인해 신기술 R&D 사업화에 성공해도 투자 대비 수익 확보가 어렵다. 이것 역시 기술 기반 사업 고안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 목표를 전제로 추진하는 방향을 제언한다.
공공 분야도 그렇지만 민간 R&D 투자 부문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분야는 지식재산권, 즉 특허에 대한 보호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에 대한 보호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우수기술에 대해 특허권을 내도 사업화를 위한 자금 조달이 어렵고 기술 탈취에 취약해 특허를 매개로 한 성장사다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원천 핵심 특허를 확보하면 경쟁사의 진입을 차단하고 기술 이전과 사업화 과정에서 기술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즉 기술 자립과 기술 수출이 가능하다. 기업의 경쟁력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특허를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 독일의 질레트사는 7개의 핵심 아이디어를 특허화하고, 회피 가능한 기술에 대한 수십 건의 특허를 확보해 강력한 특허망을 구축했다. 이로 인해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는데, 이와 같은 특허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술 및 시장 분석을 통한 핵심·경쟁기술 식별 등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역량이 미치지 못할 경우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마지막으로 근무시간 규제는 민간과 공공 부문을 통틀어 R&D 분야에서 재고해야 할 사항이다. 오랜 시간 동안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실험 결과에 바탕을 둔 연구 업적이 R&D의 결과물 아닌가? 그렇다면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는 R&D 분야에서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 제도다. 연구는 개개인의 능력이 발휘되는 분야임과 동시에 집단 지성의 힘이 나타나는 영역이기도 하다. 회의에서 오가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연구자 개인의 지식과 주장들이 공유되면서 좋은 연구 결과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회의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각자 책상으로 돌아가 야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마다 추가 근무 신청을 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회의 시간이 줄게 되고 집단 지성의 파워는 연구 보고서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R&D 부문에서는 52시간 근무제가 유연하게 적용돼야 한다.
최근 소재·부품의 교역규제 사태를 돌아보며 기술 자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완벽한 자립은 힘들겠지만,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때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R&D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시장이 필요한 기술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민간 R&D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그리고 미래 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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