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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지정학적 혼란 지속…2020년 세계경제 ‘위태로운 회복’ 전망
장보형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2019년 12월호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에 휘청대던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부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령 IMF는 지난 10월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을 지난 4월의 3.3%에서 3.0%로 하향조정했다. 2018년 실적치 3.6%에 비해 대폭 둔화된 것인데, 2009년 –0.1%의 침체를 보인 이래 가장 낮다. 미중 무역분쟁의 재격화 등 국제적으로 각종 지정학적 긴장이 확산된 결과다. 특히 올해의 성장둔화는 세계적으로 동조화된 현상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하고 세계 거의 모든 경제권에서 성장률이 현저히 둔화된 것이다.
그나마 2020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올해보다 나은 3.4%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역시 기존 3.6% 전망에서 인하된 수치며, 더욱이 IMF는 “내년 경제회복 역시 그 기반이 넓지 않고 전반적으로 여전히 신중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내년 경제회복의 절반 정도는 지속적인 위기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나 터키와 같은 불안국들과 올해 성장률이 상당히 저조했던 브라질과 인도 등의 일부 경기반등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세계경제의 주축인 미국과 중국은 성장이 더욱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IMF는 내년 세계경제 전망을 ‘위태로운 회복(precarious recovery)’이라고 진단하며, 거듭 하향조정될 리스크가 크다고 경고한다.

미중 협상 진전, 브렉시트 재연기 등으로 다소 숨통 트여
2020년 세계경제 여건이 지금보다 개선되기를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경제 향방과 관련해 이른바 ‘비경제적 요인’, 즉 정치적·지정학적 요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올해 세계경제의 화두는 무엇보다 미중 무역분쟁이었다. 미국의 이익을 약탈해가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에 구현된 결과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세계경제의 패권을 둘러싼 신구 열강의 대립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무역을 둘러싼 대립만이 아니라 지식재산권이나 기술 표준, 나아가 지정학적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헤게모니’를 둘러싼 경합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20세기 초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세계 대공황의 악몽이 연상된다. 당시에도 신구 열강의 분쟁이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헤게모니를 지탱할 능력이 없는 구열강 영국과, 이를 대신해 헤게모니를 인수할 의사가 없는 신열강 미국 간의 대립이 헤게모니의 공백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정치적·경제적 대참사를 초래했다. 아마도 지금은 헤게모니를 유지할 의사가 없는 미국과 아직은 헤게모니를 떠안을 능력이 없는 중국 간의 갈등이 쟁점일 것이다.
이처럼 지정학적 세력균형의 진공상태로 인해 국제적으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브렉시트를 비롯해 유럽 내 분리주의 움직임은 물론 21세기에도 해법이 요원한 중동 갈등이나 남미의 정치적 혼란에서 보듯 민족이나 종교, 나아가 젠더나 세대 갈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정체성을 둘러싸고 혼전이 거듭되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의 홍콩사태는 차세대 헤게모니를 꿈꾸는 중국의 응집력을 시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정치컨설팅 회사 유라시아그룹은 ‘G0 시대의 지정학적 불황(geopolitical depression)’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헤게모니의 공백(G0), 또 그에 따른 국제적 지배구조의 붕괴로 인해 세계교역 침체와 투자 부진 등의 경제적 부작용이 전면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행이랄까, 최근 미중 간 협상이 다시 진전되면서 안도감을 낳고 있다. 양국의 뿌리 깊은 이해 갈등을 감안할 때 근본적인 해법은 요원하지만, 2020년이라는 시기적 특성이 양국의 대립을 다소나마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선이 있는 해이자 중국이 사회발전 2단계인 ‘전면적 소강(小康)사회’ 달성을 목표로 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대내적으로 정치 스캔들에 휘말린 도널드 트럼프, 또 장기 집권을 꿈꾸는 시진핑 모두 신경이 곤두서는 때가 아닐 수 없다.
자칫 세계경제의 또 다른 핵폭탄이 될 수도 있는 브렉시트도 일정 재연기와 조기총선으로 ‘노딜(no-deal)’의 대혼란 위험을 줄이고 있다. 내년 세계경제가 다소나마 숨통을 틀 수 있다면, 이처럼 글로벌 정치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휴지기에 들어선 덕분일 것이다.

통화정책의 ‘외끌이’ 지원 수혜만 기대하기 힘들어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연이은 통화부양책 역시 세계경제 안정화에 일조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2015~2018년에 걸친 통화정책 정상화를 마무리하고 다시 금리인하와 자산 확대에 나섰다. 그 외에도 유로존은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차원에서 통화완화 공조가 재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하강위험을 억제하고 내년 상반기 중에는 순환적으로 저점을 통과할 것이라는 기대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러한 통화부양책의 ‘약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세계 시장금리가 떨어지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초저금리에 따른 금융중개 기능의 저하와 금융시장의 과도한 위험 감수에 대한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의 중추신경계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단기자금시장의 불안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 재개에도 정작 금융권 대차거래의 핵심인 단기자금시장이 경색 징후를 보이면서 초단기금리가 요동쳤던 것이다.
미국 정부의 국채발행 증가나 계절적·기술적 요인이 겹친 면도 있지만, 그간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을 지탱해온 미국 중앙은행의 안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실로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통화부양책이 수확 체감의 경지를 넘어서 점차 그 한계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2020년 세계경제 전망은 여전히 위태롭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미중 갈등을 필두로 국제적으로 정치적·지정학적 혼란은 지속될 공산이 크다. 글로벌 차원에서 과감한 재정지출 공조 없이 더 이상 통화정책의 ‘외끌이’ 지원 수혜만 기대하기는 힘들다. 경제성장률 1%대 시대의 조기진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우리로서도 노심초사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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