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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반도체는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서비스산업,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추
임지선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2019년 07월호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이 ‘반도체 강국’인 줄 알고 지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라는 호황 덕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공 실적을 이어갔고 두 회사에 기댄 한국경제 역시 호조를 보여왔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50%대를 기록했다는 점만 봐도 ‘반도체 호황’을 누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정확히 말해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여기저기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메모리반도체는 가격 변동이 심한 제품이다. 가격이 떨어지는 기류가 보이면 이를 사려는 회사들도 구매를 중단하고 가격 흐름을 지켜본다. 그러면 가격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을 한참 겪는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메모리반도체는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가장 비쌌던 지난해 9월보다 가격이 약 절반가량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고, 한국경제도 덩달아 휘청이고 있다. 한국이 수출하는 품목 가운데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다. 정부는 6월 14일 발간한 「2019년 6월 최근 경제동향」에서 “시장 예상보다 빠른 반도체 가격 조정, 중국 등 세계경제 둔화 영향 등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메모리반도체에만 쏠려 있는 산업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비메모리반도체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가 35% 수준이라면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은 65% 수준이다. 규모나 부가가치 면에서 훨씬 큰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 부품
그러나 우리가 시스템반도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단순히 시장 규모 차원이 아니다. 시스템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산업의 중추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총칼 없는 전쟁인 국가 간 기술력 대결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게 바로 시스템반도체다.
우선 메모리반도체 외의 모든 반도체를 일컫는 비메모리반도체 관련 용어부터 알아보자.
일단 비즈니스 방식에 따라 나눠보면 반도체를 설계만 하는 건 팹리스(fabless), 설계된 반도체를 위탁생산만 하는 건 파운드리(foundry)라고 부른다. 제품으로 따지면 시스템반도체, 소자반도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시스템반도체로 모두 통칭해서 부르기도 한다. 시스템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하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제품으로 그 종류만 해도 8천여개가 넘는다.
시스템반도체는 쉽게 말해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을 하는 ‘두뇌’에 해당하는 제품이다. 자율주행차, 모든 기기들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핵심 부품에는 모두 시스템반도체가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의 이미지 센서, 스마트폰의 통신 기능을 하는 칩 등이 가장 쉬운 예다. 국내 자동차회사가 자율주행차를 만들더라도 여기에 들어가는 핵심 시스템반도체인 ‘눈’에 해당하는 이미지 센서를 외국 제품으로 쓴다면 국내에서 개발하는 의미가 퇴색된다. 시스템반도체, 특히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30일 자동차, 바이오, 에너지, IoT가전, 기계·로봇 등 수요가 많은 5대 분야를 선정해 수요 창출을 돕고 팹리스 업체와 파운드리를 연계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역시 정부 발표보다 한 주 앞서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5천명을 채용해 시스템반도체 1위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팹리스 글로벌 50대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단 1곳
사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발전 전략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과 2011년 이미 추진했다. 문제는 근본 체질을 바꾸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절대적 강자들이 자리를 공고히 해나갔다. 컴퓨터 CPU는 인텔(Intel), 이미지 센서는 소니(SONY), 통신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퀄컴(Qualcomm), 그래픽 카드는 엔비디아(NVIDIA) 등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생산만 해주는 파운드리는 대만 TSMC가 강자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의 경우 글로벌 50대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단 1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가 본격화되고 AI를 활용한 자율주행차, 증강현실(AR), IoT, 드론 등 새로운 산업이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다. 지금까지 시스템반도체는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으로만 인식돼왔는데 AI를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서비스산업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설계만 잘한다면 팹리스 분야에서 후발주자여도 새로운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지 수요를 발굴해내는 일이다.
일례로 AI를 구동케 하는 AI 전용 반도체 시장은 아직 절대적 강자가 없다. AI를 위한 빠른 기계학습(머신러닝)과 인간의 두뇌처럼 스스로 추론할 수 있는 심층학습(딥러닝) 등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망처리장치(NPU; Neural Processing Unit) 시장이 열려 있다. 현재 CPU의 강자인 인텔과 그래픽 카드의 강자인 엔비디아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이 나서고 있지만 아직 완벽한 제품이 개발되지 않았다.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낼수록 AI 연산능력과 관계된 NPU의 비중과 역할도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팹리스 분야가 발돋움하려면 체계적 지원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쥐어짜내는 방식으로 시간을 들여 성공할 수 있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전문인력이 머리를 쓰고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 분야”라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 하기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지원 대책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은 따지고 보면 5G 기술을 놓고 패권 다툼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오듯이 세계 각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전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 중심에 시스템반도체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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