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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확보에서 규제정비까지…배터리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는 EU
박성준 주벨기에·유럽연합대사관 상무관 2019년 02월호



배터리가 없는 전기자동차와 휴대폰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배터리는 우리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술로 반도체와 함께 배터리를 꼽고 있다.
유럽의 배터리시장도 2025년에 약 200GWh, 연간 2,500억유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배터리의 전방산업인 화학산업과 후방산업인 자동차·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들을 보유한 EU지만 유독 배터리 셀 분야에서는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게 현실이다. 이에 2017년 10월 마로스 셰프코빅(Maros Sefcovic)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80개 이상의 기업·연구소 등이 대거 참여하는 EU 배터리연합(EU Battery Alliance)의 출범을 선언하고 배터리산업 육성을 위해 EU 차원의 산업정책을 수립할 계획임을 천명했다.


‘배터리산업 발전전략 실행계획’ 마련…역내 배터리 관련 전체 공급사슬 구축이 목표
28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는 통상·경쟁 정책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회원국별로 정책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회원국별 산업발전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EU 차원에서의 산업정책은 우주항공, R&D, 중소기업 등 일부 분야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동맹(Energy Union)을 총괄하는 셰프코빅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EU 배터리연합을 주도하기로 한 것은 성장·에너지·연구혁신 총국 등 관련 부처와 회원국들의 역량을 총동원해 배터리산업을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EU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017년 10월과 2018년 2월에 셰프코빅 부위원장 주재로 EU 배터리연합 고위급 회의가 열렸고, 2018년 5월에 EU 집행위원회는 ‘배터리산업 발전전략 실행계획(Strategic Action Plan for Batteries)’을 발표했다.
EU는 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역내에 원료-핵심소재-셀 제조-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재활용 등 배터리와 관련된 전체 공급사슬(value chain)을 구축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료확보, 투자지원, R&D, 인력양성, 지속가능성, 통상·규제 등 6개 분야별로 향후 추진할 핵심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첫째, 안정적인 원료 확보다. 배터리 제조를 위해서는 리튬·코발트 등 핵심원료의 안정적인 확보가 필수적이다. EU는 2011년부터 3년마다 ‘EU 핵심원료 목록(EU list of Critical Raw Materials)’을 발표해 역내 희소금속 현황 등을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고 있다. 또한 원료 보유 회원국들로 구성된 ‘원료에 대한 유럽 혁신 파트너십(European Innovation Partnership on Raw Materials)’을 통해 역내에서 생산되는 원료가 가급적 EU 배터리산업 육성을 위해 사용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EU는 급증하는 원료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핵심원료 보유국들과의 FTA 네트워크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최근 EU는 호주·뉴질랜드 등 자원부국들과 FTA 협상을 개시했고,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 등으로도 FTA 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둘째, 배터리 분야 투자 프로젝트 지원이다. EU가 해당 정책을 발표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EU 역내에서 배터리 셀 제조업체를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EU는 유럽투자은행(EIB; European Investment Bank), 호라이즌 2020(Horizon 2020), 유럽지역발전기금(ERDF; European Regional Development Fund) 등 가용한 펀드들을 통해 배터리 셀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2월 EIB는 스웨덴 노스볼트(Northvolt)사의 리튬이온 배터리 데모플랜트 건설 프로젝트에 5,250만유로의 대출을 승인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노스볼트는 EU의 배터리산업 육성 기조를 적극 활용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기업으로, 이미 배터리연합에 함께 참여한 BMW, 스카니아(Scania), 베스타스(Vestas), 지멘스(Siemens) 등 유럽 주요 기업들과도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유럽 현지에 생산거점을 구축한 우리 배터리 기업들이 앞으로 예의주시할 기업이라 하겠다.
셋째, 핵심기술 개발이다. 유럽은 산업혁명이 태동한 지역으로 산업정책의 핵심이 ‘기술 확보’에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번 정책의 경우에도 다양한 기술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기초-원천-응용-상용화 등 배터리 기술 전 주기를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EU는 대표적인 기술개발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2020을 통해 2018~2020년에 약 2억유로를 배터리 분야에 투자할 것이며, 전고체 배터리(solid state battery) 등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해 10년간 10억유로가 투자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미래기술 주력사업(Future Emerging Technologies Flagships)’에 착수할 계획이다. 또한 유럽표준화위원회(CEN; Comite Europeen de Normalisation), 유럽전기표준화위원회(CENELEC; Comite Europeen de Normalisation electrotechnique) 등 EU의 대표적인 표준기구들은 배터리 분야의 표준을 새롭게 구축해나갈 예정이다.
넷째, 인력양성이다. 유럽에는 고급인력이 많지만 배터리 분야에 특화된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그래서 EU는 우선 공급사슬 단계별로 부족한 기술인력의 수준과 규모를 추산하고 이를 토대로 인력양성 로드맵을 수립하기로 했다. 아울러 EU 집행위원회가 지역별로 구축한 공동연구개발센터(Joint Research Center)의 배터리 테스팅랩을 지역인력 양성의 거점으로 육성하고, 중단기 기술인력 양성 프로그램인 ‘직업능력개발 협력을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Sectoral Cooperation on Skills)’에 배터리를 중점 투자 분야로 포함시킬 계획이다.
다섯째, 지속가능성 확보다. 최근 EU가 발표하는 정책들의 특징은 환경·노동 등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번 배터리 정책에서도 환경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폐배터리에 대한 수집 및 재활용 부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EU는 배터리지침(Batteries Directive)을 개정해 EU 역내에서의 폐배터리 수집과 재활용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윤리적인 원료확보 방안도 마련해 역내 기업들에 권고할 예정이다. 이러한 규제 강화 움직임에 우리 기업들도 미리 대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여섯째, 통상정책과의 연계 및 규제 정비다. 이번 정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연계에 있다. EU는 원료나 배터리 제조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3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해 반덤핑 등 무역구제제도를 적극 활용할 계획임을 밝혔으며, FTA 협상 시에도 전기차·배터리 분야 원산지 규정에 역내 공급사슬을 적극 고려하기로 했다.
한편 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의회에 청정자동차지침(CED; Clean Vehicles Directive), 재생에너지지침(RED; Renewable Energy Directive), 이산화탄소 배출기준 등의 환경 관련 규제를 배터리산업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비해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유럽의회는 2018년 2월에 배터리연합을 입법 차원에서 지원해줄 우호의원들을 중심으로 ‘EU 배터리연합 지지자들(Friends of the EU Battery Alliance)’을 발족해 정책을 의회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韓 기업, 현지 네트워크 강화 및 지속적 기술혁신으로 유럽 배터리 생태계서 입지 공고히 해야
삼성SDI(헝가리), LG화학(폴란드), SK이노베이션(헝가리) 등 우리 기업들이 현지투자를 통해 유럽 전기차·배터리 공급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한 상황에서 EU 역내 배터리 셀 제조업체 육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채택한 EU의 이와 같은 정책 추진방향을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한·EU 산업정책대화, 에너지·기후변화·환경 작업반 등 한·EU 간 정부 대화채널을 통해 양측의 배터리 관련 정책 현황을 공유하고 협력해나갈 계획이다. 특히 EU의 원료확보, R&D, 인력양성, 배터리 재활용제도 등은 국내 정책에도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정책을 통해 유럽의 배터리 업체들이 약진하면 글로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EU의 배터리산업 육성정책을 우리 업체가 활용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친환경차·신재생에너지 등 관련 규제가 배터리 수요를 더욱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유럽 현지 자동차 기업들과 구축한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하고,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유럽 배터리 산업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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