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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 홍콩경제에 독일까 약일까
박준석 주홍콩총영사관 선임연구원 2019년 08월호

2019년 6월 홍콩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는 중국 본토와 홍콩특별행정구 사이의 ‘1국 2체제’ 공존 실험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그 향배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번 시위의 표면적 원인은 홍콩 정부가 추진하는 ‘범죄인 인도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대였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 본토의 지속적인 영향력 확대 시도와 이를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 합의정신의 침해로 받아들인 홍콩 시민들 사이에 만연한 ‘반중 정서’의 폭발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1984년 12월 19일 중국은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반환받는 대신 일국양제와 고도자치, 항인치항의 3가지 원칙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이 중에서도 일국양제는 홍콩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가치로 여겨왔지만, 홍콩경제의 측면에서는 일국양제 시행 이후 오히려 대중국 의존도가 크게 확대되는 구조로 변모해갔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를 포함해 홍콩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 중국화 현상은 시민사회 내 반중 정서의 확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 글에서는 일국양제 시행 전후 홍콩경제의 구조적 변화상과 홍콩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 상승이 일국양제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상호보완적 관계로 시작한 중국·홍콩 경제
1978년 말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중국은 이후 40년간 GDP와 1인당 GDP가 각각 약 91배(1,495억달러→13조6천억달러), 약 63배(156달러→9,771달러)씩 증가했고, 같은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9.6%에 달하는 등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은 경제적 발전성과를 바탕으로 외교력과 국방력도 크게 향상시켜 국제사회에서 G2 국가의 지위도 획득했다.
특이한 점은 개혁개방 초기 중국경제 발전의 단초를 홍콩이 제공했다는 점이다. 당시 홍콩의 기업가들은 중국 남부 해안에 설치된 네 곳의 경제특구(선전, 주하이, 산터우, 샤먼)를 비롯해 광둥성 일대의 이른바 화교의 고향, 즉 교향을 중심으로 각종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를 구축해 중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을 견인했다. 또한 외자유치의 측면에서도 당시 동아시아 여러 국가(지역)에서 상업에 종사하며 부를 축적한 화교들은 홍콩의 발달된 금융환경과 중국과의 특수성을 활용해 홍콩을 대중국 투자기지로 삼았고, 결과적으로 홍콩은 개혁개방 초기 중국이 유치한 외자의 70%를 담당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출처: 중국 남방일보). 따라서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경제발전을 이끈 투자와 수출은 홍콩에서 건너간 기술과 자본의 기여도가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홍콩에 있던 제조업 기반 역시 대부분 중국 본토(주로 광둥성)로 이전됐고, 이후 홍콩경제는 서비스업에 극도로 편중된 구조로 변화하게 된다(2018년 말 기준 홍콩의 서비스업 비중 92.4%, 제조업 비중은 1.1%, 홍콩통계처 자료).
정리하면, 중국은 홍콩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해 개혁개방 초기 경제발전을 이끌었고, 홍콩의 기업가들도 중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정책적 혜택(예: 산업용 토지 무상임대, 저금리 대출, 세금 감면 등)을 제공받아 이익을 취한 호혜적 관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국양제 이후 대중국 의존도 확대되는 구조로 변화… 경제 활력 떨어지고 구조적 취약성 커져
제조업 기반이 사라진 홍콩경제의 주축은 무역/물류(GDP 기여도 21.5%), 금융(18.9%), 전문서비스업(12.2%), 관광(4.5%) 등 서비스산업에 한정됐고, 중국 본토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구조로 변화하게 된다(출처: 홍콩통계처, 2018년 기준). 특히 관광산업의 경우 GDP 기여도는 5% 정도지만 산업의 특성상 숙박, 교통, 요식, 소매판매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간접적 영향까지 더하면 홍콩 내수경기 부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홍콩의 인바운드 관광객 수는 2018년 기준 6,515만명인데 이 중 78%(5,104만명)가 중국 본토인이다. 즉 매년 외래 관광객의 3분의 2 이상이 중국 본토 출신이고, 이들의 구매력은 홍콩의 내수소비에 상당한 수준으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홍콩통계처 자료에 따르면 중국 본토 관광객의 증가율과 홍콩의 소매판매 증가율이 거의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1〉 참조).

 

 

구조적으로 보면 일국양제가 시행된 1997년 이후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둔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연간 GDP 증가율의 경우 1997년을 기준으로 전후 각 20년 기간을 비교하면 1977년부터 1997년까지가 평균 6.9%, 1997년부터 2017년까지가 평균 3.4%를 기록했다. 후반 20년 기간에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전반 20년 기간에도 두 차례(1982년 6.4%p↓, 1985년 9.2%p↓) 큰 폭의 성장률 하락기가 있어서 양측의 특수시기를 상쇄하면, 일국양제 시행 이후 홍콩경제는 시행 이전에 비해 활력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그림 2〉 참조).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주된 원인은 제조 기반이 중국 본토로 이전돼 홍콩경제가 외부 요인, 특히 중국 요인에 영향을 크게 받는 개방형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홍콩의 수출입 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간 1조1,400억달러(상품수출 기준 세계 8위)인데, 전체 수출량의 57%, 수입량의 55%가 중국 본토를 각각 출발지와 목적지로 할 만큼 홍콩 수출입 물동량의 절반 이상은 중국 본토와 직접 관련이 있다. 또한 세계 3대 금융 중심지인 홍콩의 주식시장에서도 전체 상장사 2,315개 중 중국계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이 전체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후강퉁, 선강퉁, 채권퉁 등 중국 본토와의 주식·채권 시장 연계를 강화하는 등 이미 중국의 자본과 물동량, 기업을 빼고는 홍콩경제를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고 그 정도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즉 홍콩경제는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인한 제조업 기반 이전으로 한 번, 1997년 일국양제 시행 이후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인해 한 번 대중국 노출도가 크게 확대되면서 구조적 취약성도 함께 커진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본토와의 통합에 속도 내는 中…홍콩 사회의 중국화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져
일국양제는 매우 중국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다. 당대 지도자의 임기 내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후대의 리더들이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장기적 전략, 그리고 긴 안목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점진적으로 해나가는 방식이다. 이는 임기 내 최대한의 성과를 추구하는 구조를 가진 우리의 문화와는 차이가 큰 부분이다.
일국양제의 측면에서 홍콩경제는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정책적 배려를 우선적으로 받음과 동시에, 구조적으로는 중국경제에 깊이 결속돼 중국발 리스크 전이가 가장 먼저 이뤄지는 양면성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 요인의 영향력 확대 현상은 경제 부문에 한정되지 않고 홍콩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온 것이 오늘날 홍콩 시민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2017년 7월 1일은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중국 본토에서는 ‘회귀’로 표현)된 지 20주년이 되는 날로 시진핑 주석이 직접 홍콩을 방문해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어느 해보다 성대한 규모로 행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시 주석이 홍콩 방문일정 동안 일국(One Country)을 강조한 반면 홍콩 시민들은 양제(Two System)의 보장을 요구해 베이징과 홍콩 간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시각차가 있음을 드러냈다.
홍콩이 고도의 자치권한을 약속받은 시한은 2049년까지이고, 산술적으로는 이미 절반 가까이 지나고 있다. 이는 홍콩 시민들이나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일국양제의 종료시점을 대비해야 하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 과정에서 ‘범죄인 인도법’이 트리거(trigger)가 돼 이번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최근 수년간 후강퉁·선강퉁, 웨강아오 대만구(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경제적으로 통합) 등의 경제정책을 통해 중국 본토와 홍콩을 더욱 긴밀히 연계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강주아오 대교와 광저우-홍콩 고속철과 같은 대형 교통 인프라도 속속 개통되고 있어 홍콩과 중국 본토의 통합작업은 속도를 더하고 있다. 통합의 속도가 더해지는 만큼 홍콩 사회의 중국화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어 앞으로 전대미문의 ‘일국양제 실험’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일국양제는 서로 다른 체제(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도록 제3의 공간을 허락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비핵화 조치를 통해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경제의 전면적 협력으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면밀히 관찰해야 할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중국과 홍콩의 사례에서 보듯 정책을 추진하는 힘과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부작용을 고려해 실제 ‘한국식 일국양제’의 도입이 논의될 때에는 이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이들의 사례를 미리 분석해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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